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여덟 번째 편지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오늘부터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금까지는 너희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들을 적어 보냈지만, 이제부터는 아빠가 지나온 시간의 앨범을 한 장씩 넘겨보며, 그 시절 내가 몸으로 겪어낸 삶의 기록을 들려주려 해.
그 첫 번째 페이지는 바로 '나의 20대'란다. 지금 너희가 겪고 있거나, 곧 마주하게 될 그 찬란하고도 아픈 계절에 대한 이야기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는 설렘보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먼저 배웠단다. 남들에게 대학 생활은 낭만이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매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었어. 강의실보다 아르바이트 현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늘 통장 잔고를 계산하며 가슴을 졸여야 했지.
하지만 그 팍팍한 삶 속에서도 빛은 있었단다. 운 좋게 좋은 선배들을 만나 외부 장학금을 추천받고, 밤잠 줄여가며 공부한 덕에 성적 장학금을 받았을 때의 그 짜릿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구나. 그 돈으로 너희 고모들에게 용돈을 쥐여 줄 때 느꼈던 뿌듯함, 그리고 나를 자랑스러워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빛. 그것이 나의 20대를 지탱해 준 가장 큰 힘이었어.
그 시절 대학가는 시위의 물결로 가득했단다. 친구들이 거리로 나갈 때, 도서관이나 일터로 향해야 했던 나는 늘 마음 한구석에 '부채감'을 안고 살았어. '나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시위에 앞장섰던 친구들 대부분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소위 '잘 사는 집' 아이들이 많았단다. 그들은 가난이 주는 뼈저린 공포를 머리로만 알았지, 몸으로는 알지 못했어. 어쩌면 그들이 그토록 뜨거울 수 있었던 건, 돌아갈 안전한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땐 다들 너무 어렸고 순수했으니 그럴 수 있었겠지.
나는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정의보다, 당장 내 등 뒤에 있는 가난한 가족을 건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무거웠단다. 내가 무너지면 우리 가족이 흔들린다는 그 압박감이 20대의 나를 철들게 했고, 동시에 외롭게 만들었지.
졸업이 다가오면서 느꼈던 그 먹먹함은 말로 다 할 수 없구나. 취업 문은 좁아 보였고, 내가 설 자리는 없는 것만 같았어. 한 자 한 자 자기소개서를 써 내려갈 때마다 '과연 누가 나를 필요로 할까?' 하는 자괴감과 싸워야 했지. 거기에 빨리 자리를 잡고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더해져 숨이 턱턱 막혀오곤 했단다.
하지만 얘들아, 지나고 보니 알게 된 진리가 하나 있단다. "모든 불안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것이야.
나는 운 좋게 한 회사에 취업해 연수를 받게 되었어. 그런데 연수 도중, 우연히 내가 꿈꾸던 학교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지. 이미 취업이 결정된 상태였지만, 가슴이 뛰더구나. 나는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기적처럼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단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지금의 너희 엄마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지.
내 20대는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어.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그 회사의 직원이 되어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았겠지. 하지만 내가 치열하게 준비하고 노력하며 버티던 그 시간들이 쌓여, 어느 순간 나를 '가장 올바른 자리'로 데려다 놓더구나.
사랑하는 아들과 딸아.
나의 20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불안 속에서의 버팀'이었다. 너희도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에 울고 싶은 날이 올 거야.
그때 내 이야기를 기억해 주렴. 모든 일은 내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희가 오늘 하루를 성실히 계획하고, 준비하고, 묵묵히 버티다 보면, 인생은 너희가 상상하지 못했던 가장 좋은 길로 너희를 인도해 줄 거야.
그러니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마라. 초조해하지 말고, 그저 오늘 너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며 그 시간을 견뎌내렴. 시간은 성실한 사람의 편이란다.
너희의 찬란한 20대를 응원하며, 너희를 가장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