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스물다섯 번째 편지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참으로 모순적인 사람들을 보게 된단다. 남의 사정은 기가 막히게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정작 자기 가족에게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 말이야.
밖에서는 세상 둘도 없는 인자한 사람처럼 굴면서, 현관문만 들어서면 왕처럼 군림하며 생색을 내는 사람. 직장 동료가 커피 한 잔만 타줘도 90도로 인사하며 "고맙습니다"라고 하면서, 매일 밥상을 차려주고 옷을 다려주는 아내(남편)나 부모에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하는 사람.
아빠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저 사람은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인생에서는 실패한 사람이다."라고.
오늘은 너희가 밖에서 남들에게 하는 예의 바른말들을, 집안에서도 할 수 있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에 대해 이야기해 주려 한다.
많은 사람이 밖에서는 "네, 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역시 대단하시네요"라며 맞장구를 잘 치면서도, 집에서는 "네 말이 맞아"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더구나. 가족의 의견은 무시하거나, 가르치려 들거나, 깎아내리기 일쑤지.
하지만 얘들아, 가족이야말로 가장 인정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대상이란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그 세련된 매너와 공감 능력을 왜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아끼는 거니?
진정한 역지사지는 멀리 있는 게 아니야. '내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듯, 내 배우자도, 내 아이도 집에서 인정받고 싶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행복한 가정의 시작이란다.
너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 기억나니? 어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상의를 드리면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
"우린 잘 모르니 네가 알아서 해라."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빠는 처음에 그 말이 참 무겁고 부담스러웠단다. '도와주시거나 조언을 주시지, 왜 나에게 다 떠넘기실까' 하고 야속하기도 했어.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깨닫게 되더구나. 그 말은 무관심이나 회피가 아니라, 자식에 대한 '무한한 신뢰'였다는 것을.
"네가 하는 생각과 판단이 옳을 것이다. 우리는 너를 믿는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투박한 표현 속에 "네 말이 맞아"라는 긍정을 담아 보내셨던 거야. 그 믿음 덕분에 아빠는 숱한 선택의 기로에서 주도적으로 내 인생을 꾸려올 수 있었단다.
그래서 아빠도 다짐했단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게 주셨던 그 믿음처럼, 나도 너희에게 "네 말이 맞아"라는 말을 자주 해주기로 말이야.
너희가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결정을 내리든, 설령 그것이 내 생각과 조금 다르더라도 일단은 너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 한다. '너라면 그럴 수 있겠구나', '네 입장에서는 그게 정답이겠구나' 하고 말이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아.
밖에서 남들에게 하는 친절한 말투,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덕분입니다", "당신 말이 맞아요"라는 그 아름다운 말들을 집으로 가져오렴.
가장 편한 사이일수록 가장 예의를 지켜야 하고,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역지사지가 필요하단다. 밖에서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 안에서 더 따뜻한 사람이 되거라.
너희의 모든 선택을 믿으며, 오늘도 "너희 말이 맞다"라고 응원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