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의 이별이 남긴 숙제
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스물여섯 번째 편지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오늘은 '효(孝)와 사랑’이라는, 조금은 무겁지만 꼭 해야 할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너희에게 할머니, 나에게는 어머니였던 분. 할머니는 아빠에게 참 많은 영감과 인생의 교훈을 주신 분이셨지. 물론 부모 자식 사이가 으레 그렇듯, 때로는 아빠에게 무거운 마음의 짐이나 부담을 주기도 하셨어.
그런데 할머니가 떠나시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작 내가 할머니에게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제대로 해본 적이 거의 없더구나. 마음속에는 늘 있었지만, 쑥스럽다는 핑계로, 혹은 '다 아시겠지' 하는 안일함으로 그 말들을 아껴두었던 거야.
할머니께서 고관절 골절로 세 번째 수술을 받으시던 날을 기억하니? 아빠는 그날 직감했단다.
'아, 이제 정말 이별의 시간이 머지않았구나'
하고 말이야.
수술 전, 병상에 누워계신 할머니의 다리에 약을 발라드리는데 갑자기 목이 메어왔어. 앙상하게 마른 그 다리가 평생 나를 지탱해 준 기둥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나는 약을 바르다 말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말했단다.
"어머니, 그동안 저 키워주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너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 말을 하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구나. 평생 아껴두었던 그 쉬운 말을, 왜 이별이 코앞에 닥쳐서야 겨우 꺼낼 수 있었는지. 그 늦은 고백이 참 죄송하고 또 죄송했단다.
수술 후 할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시기 전에, 할머니가 사시던 집을 정리해야 했어. 할머니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을 하나둘 치우고 전세를 놓기 위해 집을 비우는데, 텅 빈 방이 어찌나 넓고 허전해 보이던지... 그 공간에 서서 아빠는 참 많이도 울었단다. 집을 정리한다는 건, 단순히 물건을 치우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정리하는 일이라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지.
그 후 할머니는 요양병원에서 3개월을 보내시다 돌아가셨지. 너희도 병문안을 가서 기억하겠지만, 할머니는 섬망 증세로 정신이 오락가락하셨고 하루 종일 주무시는 시간이 많았어.
그때 아빠가 할머니 귀에 대고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뭔지 아니?
"엄마, 얼른 나아서 우리 집으로 가요. 곧 집에 갈 수 있어요."
사실 아빠는 알고 있었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던 할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구나. 지키지 못할 약속인 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할머니에게 희망을 드리고 싶었던 아빠의 슬픈 거짓말이었단다.
사랑하는 아들, 딸아. 너희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며 살고 있니? 사랑하는 연인이 생기면 그 말이 참 자연스럽게 나오지? 물론 연인에게는 아낌없이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너희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족들에게도 그 말을 자주 해주면 좋겠구나.
가족이라는 이유로,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는 착각 속에 표현을 미루지 마라. 사랑한다는 말은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꺼내 쓰는 비상금이 아니란다.
음... 물론 아빠도 안다. 갑자기 뜬금없이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쑥스러운지. (아빠도 할머니께 평생 못하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겨우 했으니 너희에게 강요할 자격은 없구나.)
그러니 이렇게 하자. 지금 당장 하기가 너무 쑥스럽다면, 아빠가 한 여든 살쯤 되었을 때... 그때까지 아빠가 건강하게 너희 곁에 있다면, 그때는 엄마랑 아빠에게 자주자주 말해주렴.
"키워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할 수 있을 때 누려야 하는 '축복'이란다. 나중에 후회 속에 내뱉는 고백이 되지 않도록, 우리 서로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자꾸나.
너희를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