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스물일곱 번째 편지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오늘은 사람 사이에서 가장 흔하게,
그리고 가장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히는 감정인
'서운함'과 '미안함'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내 마음 같지 않아 야속함을 느낄 때가 있지.
그런데 아빠가 살아보니,
이 서운함이라는 녀석은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아주 다르게 다루어야 하더구나.
가족에게 느끼는 서운함과 사회에서 느끼는 서운함은 그 처방전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일러주마.
가장 가까운 가족끼리도,
아니 오히려 가깝기 때문에 더 자주 서운함을 느끼곤 한단다.
부모 자식 간에, 형제자매 간에, 혹은 부부 사이에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하지만 얘들아, 가족 사이에서 느끼는 서운함은 참 묘한 성질이 있단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섭섭해서 화가 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이해가 되면 오히려
'그때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구나' 하는 미안함으로 변할 때가 많아.
그 사람이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왜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게 되면,
섣불리 서운해했던 내 좁은 속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러니 가족에게 서운한 마음이 불쑥 올라올 때는
바로 내뱉지 말고 딱 한 템포만 쉬어가라.
입 밖으로 서운함을 쏟아내기 전에
하루만, 아니 한 시간만이라도 침묵해 보렴.
그 잠깐의 멈춤이
서운함을 미안함과 이해로 바꾸는
마법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단다.
가족은 감정을 쏟아내는 쓰레기통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덮어주는 이불 같은 존재여야 하니까.
반면에 사회에서 만난 친구나 지인 관계는 조금 다르단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유독 너희를 자주 서운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거야.
약속을 가볍게 어긴다거나, 너희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긴다거나, 묘하게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 말이다.
사회에서의 서운함은 가족과는 달리,
묵혀둔다고 해서 이해나 미안함으로 바뀌는 경우가 드물더구나.
오히려 잦은 서운함은 결국 큰 싸움이나 결별로 이어지는 예고편일 때가 많아.
옛말에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지?
끼리끼리 모인다는 뜻인데, 이는 감정에도 적용된단다.
우울한 사람은 우울한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아보고,
부정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과 엮이게 돼 있어.
만약 너희가 어떤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리고 그 감정이 너희를 우울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너희의 탓'이 아니라 그저 '맞지 않는 관계'일뿐이란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라며 자신을 탓하지 마라.
대신 냉정하게 생각해라. 나에게 자꾸만 서운함을 선물하는 사람과 굳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내 마음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붙잡아야 할 인연은 없단다.
지속적인 서운함은 관계를 정리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과감하게 끊어내는 용기도 필요하단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아.
가족에게 느끼는 서운함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으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고,
사회에서 느끼는 반복되는 서운함은 '나를 지키라는 경고'일 수 있으니 단호하게 대처하렴.
이 두 가지 감정의 온도 차이를 잘 구별한다면, 너희의 마음밭은 훨씬 평화롭고 건강해질 거란다.
너희가 늘 편안한 관계 속에서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