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서른 번째 편지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오랜만에 펜을 든다. 그동안 아빠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참으로 길고 추운 겨울 같은 시간이 지나갔지. 오늘은 그 시간 동안 아빠가 겪었던 불안과 절망,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희망에 대해 고백하듯 이야기해 보려 한다.
모든 것은 우연한 건강검진에서 시작되었지. 아무런 예고도, 자각 증상도 없었기에 엄마의 몸에서 이상 증상이 발견되었다는 의사의 말은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평온했던 우리 일상에 날아든 돌멩이 하나가 온 세상을 뒤흔드는 것 같았단다. '왜 하필 우리에게, 왜 하필 엄마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원망과 당혹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빠는 무척이나 무서웠다. 너희 앞에서는 태연한 척했지만, 혼자 있을 때면 손발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쿵쿵거려 견딜 수가 없었어.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끝없는 불안과 우울함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만 같았지.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버티기에는 너무나 벅찬 두려움이었단다.
그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던 건 역설적이게도 너희와 함께 흘린 눈물이었어. 엄마의 소식을 듣고 딸아이와 둘이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던 날을 기억하니?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울음을 토해내던 그 순간, 아빠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꼈단다. 그리고 평소 감정 표현이 없던 덤덤한 아들, 네가 살짝 눈물을 보이던 그 순간도 잊을 수가 없구나. 너의 그 눈물이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슬픔을 확인하며 더 단단해지고 있었던 거야.
엄마가 입원하고 각종 정밀 검사가 진행되던 시간들은 또 다른 불안의 연속이었지. 검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혹여나 더 나쁜 소식이 들려올까 봐 전전긍긍했단다. 하얀 병원 복도에 서서 아빠는 수없이 기도하고 또 기도했어.
그 폭풍 같은 시간을 지나며 아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이 아픔은 "좀 더 겸손하게 살라"는 신의 엄중한 명령이 아닐까 하고.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건강과 행복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려는 뜻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이 시련은 우리 가족을 무너뜨리는 형벌이 아니라, 우리가 힘을 합쳐 "반드시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놀랍게도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요동치던 마음이 점차 가라앉더구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아주 작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어. "잘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 스멀스멀 솟아나기 시작했단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이번 일은 아빠가 인생에서 경험했던 그 어떤 일보다도 떨리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어. 하지만 살면서 숱한 파도를 넘었듯, 이것 역시 우리 삶의 긴 여정에서 마주한 하나의 문제일 뿐이란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이 문제를 함께 풀어나갈 거야.
엄마는 강한 사람이니 반드시 털고 일어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서로의 손을 놓지 말고,
지금처럼 서로를 안아주며 버텨보자꾸나.
이 시련 끝에 더 찬란한 봄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며.
너희와 엄마를 지키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