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 접속의 날
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쉰한 번째 편지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오늘은 아빠가 드디어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나이스(NEIS)' 아이디를 발급받고 공식적인 인증서를 등록한 날이란다. 지난 이틀 동안은 시스템 접속이 안 되어서 결재 라인에도 이름 하나 올리지 못한 채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하고 아이들과 상담을 했었는데, 오늘부터는 내 이름으로 기안도 올리고 결재도 할 수 있는 진짜 '정식 근무'를 하게 된 셈이지.
1. 나이스에 적힌 나의 자리, 그리고 담담함
나이스에 접속해서 이것저것 메뉴를 둘러보다 보니, 학교의 행정과 살림살이 등 참 많은 정보가 담겨 있더구나. 그중에는 아빠가 이곳에 '왜 채용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사유도 적혀 있었어.
'누군가의 휴직으로 인한 대체 채용.'
즉, 그 누군가가 휴직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게 되면, 아빠와 그리고 비슷한 처지로 들어온 동료들은 또 다른 곳으로 짐을 싸서 옮길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지.
보통 이런 활자화된 현실을 직면하면 서운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올 법도 한데, 아빠는 참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담담했단다. 어차피 다른 어느 학교를 가더라도 기간제 교사의 삶이라는 게 크게 다를 일이 없지 않겠니?
2. 두려운 것은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흩어짐이다
아빠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내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니란다. 내가 어느 학교에 있든, 언제 짐을 싸야 하든 그건 그저 외부의 조건일 뿐이야.
아빠가 진짜 두려운 건, 교단에 다시 서며 가졌던 그 벅찬 설렘과 '아이들을 위해 후회 없이 다 쏟아붓겠다'는 처음의 마음가짐이 익숙함이나 피로에 깎여 흩어지는 것이지. 내 마음의 중심만 단단하게 잡혀 있다면, 내일 당장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해도 전혀 섭섭하거나 불안할 이유가 없단다.
3.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꿈같은 시간
오늘도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과 수업을 하며 함께 소리 내어 웃고, 때로는 진지하게 인생과 진로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어.
물론 학원에서도 아이들과 비슷한 시간을 보냈지만, 이곳은 학원이 아니라 오롯이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존재하는 '학교'잖니. 지식의 전달을 넘어 삶의 태도를 나누는 이 교감의 순간들이, 아빠에게는 더 말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꿈같은 시간이었단다.
4. 내일을 위해, 오늘은 조금만 당황하기로
학교생활은 정말이지 매일이 새로운 에피소드의 연속이구나. 아이들 청소 당번을 정하며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 봉사활동을 지도하는 이야기, 복도에서 왁자지껄 인사를 나누는 풍경, 그리고 각종 부서별 활동에 얽힌 이야기 등등... 앞으로 너희에게 들려주고 아빠가 써 내려가야 할 무한한 이야기들이 잔뜩 쌓여 있어.
그러니 오늘은 낯선 시스템과 기간제 교사로서의 현실 앞에서 아주 조금만 당황해하고, 이내 툭 털어버리려 한다. 내일 또 만나게 될 반짝이는 아이들과의 새로운 하루를 위해, 오늘은 기분 좋게 안녕이다.
언제나 흔들림 없는 처음의 마음으로 교단에 서고 싶은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