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쉰네 번째 편지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오늘은 아빠가 학교에서 겪은, 진땀을 쏙 뺐지만 돌이켜보면 웃음이 나오는 황당하고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려 한다. 오늘의 제목은 명작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잃어버린 공문을 찾아서'란다.
1. 원드라이브의 배신, 그리고 증발해 버린 서류들
학교에서 지급받은 노트북을 사용 중인데, 자꾸만 용량이 부족하다는 경고 창이 뜨더구나. 컴퓨터와 연동된 '원드라이브(클라우드 저장소)' 용량이 꽉 찼다는 거였지. 그래서 아빠는 별생각 없이 원드라이브에 있는 파일들을 휴지통으로 보내 시원하게 삭제해 버렸단다.
그런데 세상에나! 노트북 바탕화면에 고이 모셔두었던 학교 공문서와 내가 애써 작성해 둔 결재 서류들이 흔적도 없이 다 날아가 버린 거야. 연동된 클라우드를 지웠더니 내 PC의 원본까지 싹 지워져 버린 거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더구나. 이것저것 다 해보며 복구하려 애썼지만 살릴 길이 없었어. 결국 직속 상관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주고받았던 서류를 다시 보내주실 수 있냐"고 부탁했지. 다행히 걱정하지 말라는 따뜻한 대답을 들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결재 시스템에 제출했던 공문들을 이 잡듯이 싹 뒤진 끝에 간신히 마지막에 올린 서류들을 찾아낼 수 있었단다.
2. '월리를 찾아서'인가,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인가
세상이 참 좋아져서 모든 행정이 '온라인'으로 바뀌었다고들 하지? 그런데 막상 한 번 완전히 삭제된 데이터를 사이버 바다에서 다시 건져내는 건 '월리를 찾아서'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만큼이나 아득하고 힘든 일이더구나.
이 아찔한 경험을 한 뒤, 아빠는 결재가 끝난 서류들을 모조리 다운받아 '종이'로 싹 다 출력해 두었단다. 혹시 모를 전산 마비나 데이터 증발 사태를 대비한, 나만의 아날로그 생존법인 셈이지.
3. 온라인 시대의 아이러니: 2중, 3중의 쳇바퀴
서류를 출력하며 학교 행정 시스템의 참 아이러니한 민낯을 보게 되었어.
예를 들어, 결석하는 아이가 있으면 증빙 사진까지 첨부해서 '온라인 결재'를 받는단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야. 그 내용을 종이로 된 '출석부(오프라인)'에 다시 펜으로 기록해야 하고, 나중에는 온라인에 있는 내용을 다시 '출력'해서 출석부와 대조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둬야 한단다.
모든 걸 결국 종이 출력물로 확인해야만 끝이 나니, 이게 도대체 무슨 '온라인' 행정인지 헛웃음이 나더구나. 일이 2중, 3중으로 중복되는 거지.
4. 공무원의 책임 회피와 교사의 자기방어
이런 비효율이 왜 생기는 걸까 가만히 지켜보니,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나 중간 관리자들은 "나는 시스템으로 전달했으니 내 책임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더구나. 결국 그 시스템의 맨 마지막 단에서 직접 아이들을 부대끼며 일하는 교사들은, 훗날 책임 추궁을 당하지 않기 위해 겹겹이 서류를 쌓아두며 '자기 방어'에 급급해지는 구조였어.
아빠는 그제야 무릎을 쳤단다. "아! 일반 교사들이 늘 '잡무가 많다'고 한탄하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구나."
5.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얘들아, 아빠가 이런 행정적인 촌극 때문에 징징대거나 일이 많아서 수업이 힘들다고 투덜거렸을 것 같니?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잡무의 늪 속에서도 아빠의 본업인 '수업'은 아주 신나게 날개를 달고 있단다. 방과 후 수업은 마감 인원을 훌쩍 넘겨 학생들로 꽉 찼고, 남들은 한 과목 수업하기도 벅차다는 방과 후 수업을 아빠는 오히려 과목을 추가해 '수능 수업'과 '인문 논술' 수업까지 두루 소화하며 종횡무진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복잡한 행정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아빠에게는 '학교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돌아가는 방식'을 엿보는 아주 당황스럽고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단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아.
어느 조직에 가든 불합리해 보이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시스템을 탓하느라 너희의 진짜 실력(본업)을 펼칠 에너지를 낭비하지는 마라.
시스템의 맹점은 지혜롭게 대비(출력물)해 두고,
희가 진짜 빛나야 할 무대(수업)에서는 아낌없이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
그것이 진정한 프로의 자세란다.
내일은 또 어떤 에피소드가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까?
잃어버린 서류 대신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듬뿍 주워 담고 올게.
오늘도 교단 위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