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평가와 인내심 평가: 가르치는 자에서 조력자로

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쉰다섯 번째 편지

by 하늘을 나는 백구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오늘은 아빠가 학교에서 아이들의 '수행평가'를 진행하며, 동시에 아빠 스스로의 '인내심 평가'를 치러야 했던 씁쓸하고도 의미 있는 경험을 이야기해 주려 한다.


1. 아빠의 야심 찬 기획: AI와 프롬프트, 그리고 개인의 경험


한 달 전부터 아이들에게 국어 수행평가를 공지했단다. 요즘은 아이들이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쓰기 때문에, 무조건 "쓰지 마라"라고 막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어. 그렇다고 단순한 단답형 시험으로 때우기는 싫었지.

그래서 아빠는 2단계로 이루어진 꽤 혁신적인(?) 과제를 내주었단다. 우선,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 EBS 수능특강 교재에 나온 독서 지문을 바탕으로 AI에게 명령을 내려 완전히 새로운 지문과 문제를 만들어 오라고 했어. 단, 새 지문에는 반드시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지.

과제를 제출할 때는 결과물만 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AI에게 입력한 '프롬프트(질문 명령어)'를 가장 앞에 제시하도록 했단다. 아빠는 완성된 글의 내용보다, 아이들이 AI에게 얼마나 논리적이고 정교하게 질문을 던졌는지를 평가하고 싶었거든. 그리고 최종 결과물에 담긴 아이들의 생생한 개인 경험을 잘 갈무리해서, 대학 입시에 중요한 '학생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세특)'에 정성껏 적어줄 참이었지.

2단계로는 수업 시간에 이 과제를 해결하며 느낀 점을 짧은 글로 쓰게 했어. 아이들의 부담을 줄여주려고 "1단계 과제를 기한 내에 제출하기만 하면 무조건 만점을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까지 내걸었단다.


2. 180명 중 60명의 미제출, 인내심의 한계를 마주하다


아빠는 내심 기대했어. 제출만 하면 만점이고, 수능특강 공부도 되며, 생기부까지 풍성해지는 1석 3조의 과제니까 아이들이 기쁘게 따라와 줄 거라고 말이야. 수행평가 2회의 비중이 무려 40%나 되기 때문에, 중간고사(30%)나 기말고사(30%)보다 내신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컸거든.

그런데 결과는 어땠을까? 마감일이 지나고 확인해 보니, 180명 가운데 무려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끝내 과제를 제출하지 않았더구나.

아무리 어르고 달래고, 성적이 깎인다고 경고를 해보아도 요지부동인 아이들을 보며 아빠는 큰 충격을 받았단다. 말로는 도저히 설득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결국 제출한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평가를 마무리 지어야 했어.


3. 이것이 현실이다: 미제출자는 '문제아'가 아니다


텅 빈 제출자 명단을 바라보며 아빠는 한숨을 쉬었지. "아, 이것이 지금 공교육의 현실이구나."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과제를 내지 않은 60명의 아이들이 무조건 게으르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 아이들에게는 국어 수행평가보다 당장 급한 수학 학원 숙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 수시보다는 정시(수능)에 올인하기로 마음먹었기에 내신 수행평가를 과감히 포기한 것일 수도 있어. 혹은 그저 무언가를 스스로 기획하고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너무 버거웠던 아이도 있었겠지.


4. 가르치는 자에서 '조력자'로 자리를 옮기며


그제야 아빠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단다. 내가 야심 차게 기획한 과제,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점수 따기 전략,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내 생각'일뿐, 아이들의 생각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야.

부모나 교사는 흔히 "이게 너에게 가장 좋은 길이야"라며 아이의 손목을 쥐고 억지로 끌고 가려한단다. 하지만 그 길이 아무리 좋더라도 본인이 걷기 싫다면 소용이 없지.

그래서 아빠는 억지로 쥐었던 손에 힘을 풀기로 했어. 아이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옳은 일'을 강요하지 않기로. 대신, 묵묵히 곁을 걷는 '조력자(페이스메이커)'가 되기로 마음먹었단다. 억지로 끌고 가는 대신, 아이들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낭떠러지 쪽으로 향할 때만 슬쩍 어깨를 부딪쳐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 스스로 걷다가 넘어지면 언제든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진짜 교사, 그리고 진짜 어른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사랑하는 아들과 딸아.


나이 들어 다시 시작한 기간제 교사이자, 질풍노도의 고3 담임으로 살아가는 아빠의 하루는 이렇게 매일매일 나의 한계를 깨고 생각을 뒤집는 '깨달음'으로 시작되고 있단다.

너희도 누군가를 돕고 싶을 때, 너희의 정답을 억지로 강요하기보다 그 사람이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주는 조력자의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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