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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Sep 05. 2023

2개의 수업

수업과 수업 사이

  재수 종합반은 3학기에 접어들고 있다. 대부분 9월 중순부터 마지막 학기인 3학기 수업을 진행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원에서는 3학기에 오전 본수업 진행과 더불어 오후 선택형 수업을 진행한다. 국어과의 경우 운문 문학, 비문학 독서, 문법 등을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기도 하고 선생님들도 선호하는 편이다. 급여를 받는 강사라도 아이들이 선호하는 강의를 잘해야 평가를 잘 받을 수 있으니 나름 맘 속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강의를 정하고 회의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치열한 눈치 작전이 펼쳐진다. 

저는 화법과 작문만 수업했으니 이번에는 '문법' 좀 할게요.
그럼 제가 이과 상위반 비문학을 하지요.
저는 고전시갑니다. 

이런 식으로 수업을 나누다 보니 '산문 문학'만 남았다. 결국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던 내게 '산문 문학'이 배정되었다. 

  '산문'은 현대소설, 고전소설, 수필, 극 등의 장르를 포함한다. 선생님들이 수업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거니와 자료 준비도 어려워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을 한다. 

문제 풀이 등에 지친 아이들이 1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소설 원문이나 극 등을 읽고 갈 수 있다만 얼마나 좋은 일일 거냐.


  수업 시작은 아직 보름 넘어 남았지만 벌써부터 맘이 급해진다. 어떤 소설과 수필을 골라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어떤 감상평을 가지고 설명을 할지 생각하면 가슴부터 뛴다. 그래서 수업의 콘셉트를 아래와 같이 만들어 봤다. 



강좌명 [산문문학] 산문에 기대어


 숨쉬기도 힘들 때

 치열하게 부딪치고 지칠 때

 누군가는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겐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깐의 여유, 놀라운 결과!

  /산문에 기대어/



  다음은 종합반에서 시행하는 마지막 특강 수업이다. 본수업 외에 특별하게 수업을 만들어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듣는 수업이다. 올해 총 6회 차 수업을 진행하며 그 마지막 수업이 다가오는 특강이다. 많은 강사들이 외부 모의고사를 사게 하여 해설하는 수업을 진행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 모의고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저자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수능형 출제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특정 배경지식이나 과도한 추론을 요구하는 지문과 문제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유행이라고 수많은 학원과 강사들이 그 모의고사를 사서 풀리고 해설을 한다. 

  한 학생이 물었다. 

샘은 왜 ** 모의고사를 안 풀어요?

  난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내가 낸 문제가 아니잖아. 다른 샘들이야 문제를 전체적으로 출제하기 어려우니, 남이 낸 문제를 아이들에게 사라고 하고 풀리는 거지.

  그리고 덧붙인다.

  내가 수능출제를 2년 동안 담당했던 사람이고,
전국연합학력평가와 EBS 강의 및 교재 집필을 한 사람인데
뭐 다른 사람이 낸 문제가 눈에 차겠어?

  그래서 아이들에게 소개할 광고 내용을 다음과 같이 만들어 보았다. 참고로 광고는 정해진 표 안에 어떤 내용을 넣어도 된다고 약속한 상태이다. 


3월 :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려다가 늦잠을 자기 일쑤였습니다. 

4월 : 비염과 장염으로 시달리면서도 변기 위에서 영단어를 외웠습니다. 

5월 : 학원 급식에 서서히 적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6월 : 모의고사를 본 후 좌절하며 괴로웠습니다.

7월 : 더위보다 친구들의 땀냄새와 발냄새가 힘들었습니다.

8월 :  여행지에서 찍은 친구 인스타 사진을 보면서 그래도 장마가 길어지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9월 : 급한 마음에 남들 다 한다는 사설 모의고사를 풀다 좌절감만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른 곳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출제위원이 직접 만든 모의고사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유명한 걸로 유명한 '강병길 모의고사'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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