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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Sep 21. 2023

최고의 칭찬을 들었어.

작은 시도가 큰 감동으로

  너희들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단다. 너희들에게 어떤 수업이 도움이 될 지에 대해 늘 끊임없이 생각하지. 이번 선택 수업의 경우 많은 선생님들이 문제 풀이와 EBS 자료 정리 수업으로 진행할 때, 난 내게 주어진 '산문 문학'을 좀 색다르게 꾸미고 싶었어. 여러모로 생각한 끝에 소설을 함께 읽으면서 주요 장면을 중심으로 감상 포인트를 짚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오늘 첫 수업을 했어. '서울 1964년 겨울'을 서술자와 시점을 중심으로 감상하는 법을 고민했었지. 1인칭 주인공시점이지만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독자에게 말을 건네지 못하고 가식적인 모습을 찾아보게 했을 때 의아해하는 너희들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나. 하지만 역시 누구 제자라고 이내 적응하고 있는 너희 모습에서 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단다. 


여관에 들어서자 우리는 모든 프로가 끝나 버린 극장에서 나오는 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거북스럽기만 했다. 여관에 비한다면 거리가 우리에게 더 좋았던 셈이었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

"모두 같은 방에 들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내가 다시 말했다.

"난 아주 피곤합니다.." 안이 말했다.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안이 말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헤어져 사환이 지적해 준, 나란히 붙은 방 세 개에 각각 한 사람씩 들어갔다.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말했지만,

"난 아주 피곤합니다. 하시고 싶으면 두 분이나 하세요." 하고 안은 말하고 나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피곤해 죽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나는 아저씨에게 말하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쓰고 나서 사환이 가져다 놓은 자리끼를 마시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사였다.

"예?"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 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살이지요?"

"물론 그렇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멀어져 갔다.

"난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안이 말했다.

"난 짐작도 못했습니다."라고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 했는데……." 내 말했다.

"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씨팔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난 그 양반이 죽으리라는 짐작도 못 했으니까요. 씨팔것,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안은 눈을 맞고 있는 어느 앙상한 가로수 밑에서 멈췄다. 나도 그를 따라가서 멈췄다. 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김 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도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기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어다 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나'는 착하고 배려 깊은 인물인 척 하지만 결국 '안'과 다를 바 없는, 아니 '안'보다 더 가식적인 인물이지. 왜냐하면 '안'은 차라리 "난 이기적이오!"라고 말하기라도 하지. '나'는 "아저씨를 위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지만 결국 '안'처럼 이기적인 모습을 숨기고 있다는 점을 너희들이 찾아냈을 때, 그리고 '안'이 "난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할 때 '나'는 "몰랐다"라고 말하지만 곳곳에 '나' 또한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독자인 너희들과 심지어 등장인물인 '안'까지 속이려 한다는 점을 이해할 때 난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단다.

  지금 말한 내용이 학교 수업이었다면야 너무도 당연한 과정 중 하나겠지만, 적어도 재수종합반의 3학기 파이널 수업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너희들이 그렇게 많이 들어주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차분하게 소설을 감상했다는 점에서 나 또한 무척 고마움을 느꼈어. 

  다음에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시리즈를 읽기로 했지? 다음 수업은 좀더 알차게 준비해서 1시간을 기가 막히게 감동적인 순간으로 우리 함께 만들어보지 않을래? 

  마지막으로 수업 후 내게 와서 조용히, 수줍게 한 마디 하고 갔던 여자 아이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네. 

저 학원 공부하고 처음으로 힐링을 했어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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