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에 갔노라! 고시원을 보았노라! 공부를 하였노라!
나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노량진에 들어가게 되었다. 원래는 직장을 다니는 친누나에게 빌붙어 숙식을 해결했으나 누나가 결혼을 하면서 어찌저찌하여 혼자 살아가야 할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2000년대 중반)에 노량진은 크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경찰/소방 포함), 교사를 준비하는 사람, 대학을 준비하는 사람 등이 다 모이는 장소로 매우 활기차고 역동적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학원을 다녀야 했기에 학원과 가까운 고시원을 물색하였지만 경제학에서 배운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인해 노량진 학원가 근처 고시원은 상당한 비용 부담이 있었다. 결국 난 좀 멀어도 운동하는 셈 치고 걸어 다녀야겠다며 걸어서 20-30분 거리의 장승배기역 근처의 고시원으로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때가 내 나이 20대 중반었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철도 씹어먹을 나이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간 고시원은 놀라운 곳이었다. 내가 살았던 방은 키 2미터가 좀 안되는 170센티미터 초반의 내가 누우면 발이 벽에 닿을락 말락한 아담한 크기였고 방음은 옆방의 사람의 사생활을 다 알 수 있어 서로 인사는 하지 않지만 암묵적인 이웃사촌이 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처음 들어간 방에는 창문이 없었는데 나중에 성공하면 꼭 창문 있는 방으로 이사가야겠다는 도전의식을 부여시키는 방이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밥과 김치는 공용주방에서 무료로 제공해 주었기에 숙박과 더불어 식사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학원에서 수강생을 모으고자 노력하는 강사들이 매일 아침 7시30분에 시작하는 1시간짜리 아침 무료특강을 듣기 위해 부지런히 노량진을 오가며 하루를 시작하였고 학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자습실을 찾아 이곳에서 저곳으로 메뚜기처럼 날아다니며 공부를 계속하였다. 특히 나는 건설 관련 전공이었기 때문에 수요가 적어 학원비도 비쌌기에 가능한 지출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며 공부에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렇게 나는 약 2년간 노량진에서 주독야독하는 생활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