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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Sep 14. 2022

23 눈앞의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집중력이 떨어진 것을 현저히 느낀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간에 옆에 영상이라도 틀어두지 않으면 일순,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고 만다. 이런 짓은 사실 효율의 면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내가 정말로 집중할 때는 머리에 쓴 헤드폰에서 무슨 노래가 나오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때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 더 이상 하나만 하는 것에 시간을 오롯이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도.




알고리즘이 많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건 결국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해지는 무수한 추천 속을 헤매고 동시에 나의 경향을 파악한 기계의 추천 속을 뒤적이면서. 취향과 선택의 문제는 함께 가지 않는 것 같다. 내 취향임이 분명하지만 도저히 오늘은 볼 자신이 없는 영화들. 좋아할 것이 분명하지만 오늘은 집어 들지 못하는 책들. 그런 것들은 계속 길어져만 가는 위시리스트에 담겨있기만 하다. 나는 또 선택하지 못하고 이미 세 번은 본 짧은 영화를 한 편 틀고 만다. 번번이 같은 걸 반복해서 보는 건, 새로운 걸 선택하는 모험을 하기에는 시간의 가치가 너무 높아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점점 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아주 어릴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원하는 걸 원할 때 했고, 무언가 그를 막아선다면 최대한 수동적인 방식으로 반항했다. 자라면서 나는 계속 누군가가 되고 뭔가를 해내야 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를 위해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것을 강요받았다. 나 또한 늘어나는 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잠시 쉬는 것조차 쉽게 선택하기 어려울 정도로 해내야만 할 것들이 많아졌다. 이미 목표가 정해진 사람들, 목표를 달성하고 다음 목표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나보다도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남는 이 시간을 휴식에 사용할지 자기 계발에 사용할지에 따라 내 미래 가치가 결정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말이다. 노는 것도, 일하는 것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진 결과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이제 최대한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즐기고 싶어 한다. 텔레비전을 틀어두고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행복, 즐거움, 휴식 같은 단어들도 이제 효율의 개념에 묶인 것이다. 넷플릭스의 홈 화면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이 현상의 연장선이다. 어떤 것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이 영화를 틀었을 때 나의 행복도와 영화의 길이를 보며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너무 길어. 이건 너무 우울해 보여. 이건 재미는 있다고 들었는데 왠지 보고 싶지 않아. 한 번에 여러 미디어를 소비하는 것은 어떤 것에도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되기에 부담을 줄여주는지 모르겠다. 길이가 긴 하나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보다 같은 시간에 짧은 걸 많이 보고 읽는 게 과연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행복이나 만족감을 잴 방법은 없으니 어쩌면 우리는 숫자로 이걸 재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창작과 동시에 뭔가를 소비하고자 하는 충동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어쩌면 그건 내가 끊임없이 소비하고 싶은 사람이 되었음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창작 욕구와 별개로 재미있는 것을 보고 흥미로운 것을 듣고 싶어 하는 욕구가 함께 돌아가고 있다. 나는 왠지 끊임없이 남의 창작물을 찾아다닌다. 감동할만한 다음 작품이 무엇인지 물색하고 있다. 책에 집착하던 초등학생 시절 매일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빌려 갔던 습관이 남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지금을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처럼 소비자의 역할에 충실한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눈앞에 창작물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심심해지는 마음의 원인은 당최 알기 어렵다.




잠이 들기 전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패배감이 짙은 날들이 대부분이다. 그건 단순히 내가 ‘의미 있는’ 어떤 것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만족스럽게 하루의 시간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온다. 나는 충분히 즐기지도 충분히 생산적이지도 못했고, 그러므로 오늘을 낭비한 셈이 되는 것이다. 내 시간은 점점 중요해지는데 나는 점점 선택하는 힘마저 빼앗기고 있다. 한 화면의 그림을 보고 한 화면의 영상을 보고 한 화면의 SNS 피드를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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