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울증

내 이름은 엄마가 아닌데

by 정신간호사 혜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강희선(가명)이요.”
“네, 강희선 님. 환자 팔찌 한 번만 확인하겠습니다.”

투약 시간이 되면 싱글벙글 웃던 그녀가 의아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병원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게 그렇게나 기뻤다고 한다. 집에서는 늘 ‘누구의 엄마’로만 불렸는데,
이곳에서는 ‘희선’으로 존재했다.

나답지 못한 것들이 가슴에 쌓이면 독이 된다.
그 독이 마음속에 갇히면 점점 무거워져 숨조차 쉬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가슴 한편엔 작은 틈이라도 내야 한다.
그 틈으로 나로서 살아가는 감각을 채워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엄마들의 가슴엔 그 숨구멍이 있을까.
아이 도시락 반찬 걱정,
학원비와 카드값 결제일,
남편의 무심한 한마디,
며느리로서의 예의와 딸로서의 도리,
냉장고 속 텅 빈칸과 다음 달 공과금 고지서까지.
작은 여인의 가슴에 이 모든 걸 담기엔 너무 벅차다.

죽을 것처럼 답답해져 그저 소리쳤을 뿐인데,
남편은 “갱년기 왔냐”라고 묻는다.
연애 시절엔 외국 배우 같아 멋져 보이던 그의 수염도 이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때 그녀는 꽤 잘 나갔다.
절세미인은 아니었지만,
웃을 때마다 눈가의 애교 살이 반짝였고,
그 미소 하나에 마음을 빼앗긴 남정네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녀의 고운 피부와 사랑스러운 웃음은
이제 세월의 흔적 아래 깊은 주름으로 남았다.
거울 속의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그 소녀가 아닌 듯하다.

그래도 강동원과 원빈을 보면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연보라색의 수국을 보면 소녀가 되어버린다.
그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데..

그녀의 소원은 단 하나,
엄마가 아닌 ‘나’로 살아보는 것.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나’로 존재하고 싶다.

나는 이것을 엄마 우울증이라 부른다.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술이 웬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