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었지만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소식을 들었을 때 숨이 턱 막혔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있던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그의 말투는 이전보다 한결 차분했고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었다. 식사도 규칙적으로 했고, 복용도 잘 따랐지만,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
마치 모든 걸 정리하고 난 사람처럼 담담했다.
그런 차분함이 불안했다.
그 모든 걸 알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무책임한 간호사가 맞다.
"저는 내일 드디어 퇴원해요.
여기에 온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네요.
처음에 술에 취해 끌려 왔을 때 선생님을 제일 먼저 봤던 것 같은데요. 그때도 동그란 안경을 쓰고 계셨죠.
나갈 때도 마지막으로 보게 되네요.
기억하시죠?
그때 *금단 떠서 새벽마다 배가 고파 울던 날,
선생님이 제게 초코파이와 바나나를 건네주셨죠.
섬망으로 흐릿했던 기억 속에서 이제야 그 장면이 또렷해집니다.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그날의 바나나는 제게 단순한 과일이 아니었어요.
오래 굶주렸던 제 마음을 처음으로 사람의 온기로 채워준 순간이었거든요.
노인네가 부끄럽게도 눈물이 납니다.
퇴원하면 일자리를 찾아봐야겠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지만, 그래도 나가봐야죠.
같은 방 김용구(가명) 씨는 벌써 10년 넘게 여기 계십니다.
보호자 한 번 오지 않은 채로요.
그분 생각을 하면 참 마음이 짠합니다.
제가 또 괜한 소리를 다 하네요.
지난 1년 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이건 제가 가진 것 중 제일 좋은 거예요.
경동시장에서 제일 좋은 바나나라길래 외출 나간 김에 사 왔어요.
받아주세요.
선생님은 제가 본 간호사님 중 제일 훌륭하십니다."
바나나는 노랗게 잘 익어 있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평범한 바나나 한 송이. 바나나엔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정이 담겨있었다.
몇 달 후, 그는 고시원 샤워실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호자 없는 장기입원 환자.
우리는 그가 떠날 것을 알고도 막지 못했다.
퇴원은 그의 권리였고,
그 권리 안에는 우리들이 들어갈 수 없었던 외로움이 있었다.
그의 손에서 내 손으로 옮겨지던 그 짧은 순간,
나는 분명 느꼈다.
살아있는 사람은 아주 작은 친절 하나로도
누군가의 절망을 하루쯤 늦출 수 있다는 걸.
나는 오늘도 병동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으며 생각한다.
우리는 치료를 하는 걸까,
아니면 단지 끝까지 함께 있어주는 일을 배우는 걸까.
*금단증상: 오랜 기간 알코올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던 사람이 갑자기 음주를 중단하거나 줄였을 때 나타나는 자율신경 항진, 손떨림, 불안, 불면, 환각, 경련, 섬망 등의 신체적·정신적 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