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내 아이를 맡긴 자는 언제나 약자다.
아직 우리 병동은 코로나 감염 위험으로 직접 대면 면회가 금지되어 있다.
보호자들은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묻는다.
“우리 아이는 잘 지내나요?”
“어제 MRI 검사 결과는 어땠나요?”
“밥은 잘 먹고, 사람들과 트러블 없이 지내나요?”
“친구는 사귀었을까요?”
“퇴원은 언제쯤 할 수 있나요?”
집에서는 방 안에만 콕 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던,
그 가여운 아이가 이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들의 목소리에는 끝없는 걱정이 묻어 있다.
“애가 씻자고 말을 안 하면 안 씻어요. 꼭 챙겨주세요.”
“엉덩이 쪽에 습진이 있어서 연고를 발라야, 하는데,
손이 닿지 않아요. 씻고 나서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 애 같은 아이가 또 있나요? 그 아이들은 좋아졌나요?”
“제가 너무 유난이죠. 질문이 많았죠. 죄송해요.
아이를 맡긴 입장이라 늘 을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들의 유난은 그저 사랑일 뿐이다.
사실 너무 바쁠 때면 ‘이렇게까지 다 대답해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떨리는 손끝에서 전해지는 진심을 보면,
그 사랑이 전해져 결국 나도 그 아이를 함께 걱정하게 된다.
나는 매일 그 아이를 보지만, 그들은 면회를 마치고 잠금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엘리베이터까지 이어진 그 복도가 얼마나 공허하게 느껴질지를 안다.
병동의 하루는 언제나 분주하다.
약을 챙기고, 식사를 도와주고, 싸움을 말리고, 눈물을 닦는다. 일에 치여 감정이 메말라질 때면, 유리창 너머 그 눈빛이 다시 나를 멈춰 세운다.
'그래. 더 성의껏'
아이의 식사량이 조금만 늘어도 안도하고,
웃는 얼굴이 하루라도 더 많아지면 나도 덩달아 기쁘다.
그 변화의 미세한 결을 세밀히 들여다보는 것 같지는 않아도 매일 관찰하고 기록한다.
“오늘은 밥 한 공기 다 먹었어요.”
“어제보다 먼저 씻자고 말했어요.”
“오늘은 다른 아이랑 같이 웃었어요.”
유난의 다른 말은 사랑이다.
그리고 그 유난이 우리 병동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