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수용에 대하여
"하나님 저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세요. 저에게 기회를 주시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할 자신이 있으니 제게 제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신을 찾았다. 가난하고 온전치 않은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내 성장을 믿어주지 않았던 어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신은 있어야만 했다.
대학생이 되자 신이 원망스러워졌다.
내게 닥친 고난과 시련을, 신이 더 큰 선물을 주기 위해 미리 내린 과제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시련은 그냥 시련이었고, 가난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밝고 순수해서 스스로 빛나던 친구들에 비해 내가 가진 현실은 너무 후지고 볼품없어 보였다.
나의 끈기, 열정이라고 생각해 왔던 그것은 객기가 되어있었고, 남들은 미처 도달하지 못하는 깊은 사유라고 믿어왔던 이것은 사실 우울과 불안일 뿐이었다. 난 우울하고 가난한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 영웅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하늘을 날 수 없고, 마법사로 변신을 못하며 이 나라의 공주가 아니라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첫 우울감을 겪는다. 영웅신화에서 벗어나 평범한 현실의 나로 살아가는 것은 우울하지만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내 고난과 시련은 '내가 영웅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저 현실의 '운 없게 발생된 불편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깨닫는 과정은 정말 많이 힘겨웠지만 영웅서사에서 벗어나 현실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성숙해지는 과정이었다.
내 가난, 시련, 고난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발생된 불편한 일일 뿐이다.
내 우울의 근본적인 이유는 '수용의 부재'였다.
'수용'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다. 포기, 체념과 같은 허무주의가 아닌 능동적이고 현실적인 자세다.
포기/체념: 희망 자체를 끊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음. “변할 수 없다”라고 결론 내리고 행동을 멈춤.
수용: “지금은 이렇다”라고 인정한 뒤, 현실을 바탕으로 가능한 선택들을 탐색함. 희망을 없애지 않지만 환상에 기반한 비현실적 기대는 정리한다.
수용의 기본적인 원칙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이미 발생한 불우한 사건은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우울한 감정은 통제할 수 있다. 병원을 가고 밥을 먹고 햇볕을 쐰다.
가난한 부모의 딸이라는 것은 통제할 수 없지만, 나의 현재 주머니 속 사정은 통제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을 수 있는 정부지원금과 장학금을 찾는다.
이미 떠나간 인연은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를 가꾸는 일은 통제할 수 있다. 관계를 힘들게 만들었던 나의 패턴을 돌아보고, 나와 더 잘 맞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고민해 본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힘든 사건은, 인간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수용’이라 한다. 그 과정은 분명 고되고 아프지만, 결국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당신의 고난과 시련은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