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환자와 기싸움

해와 달 이야기

by 정신간호사 혜니

여러분들은 정신과병동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일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단연코 '환자와의 기싸움'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신규 정신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그만두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감정적으로 소모가 많아서다. 조금 더 속된 말로 표현하면 '환자와 기싸움에서 패배'해서다.

모든 간호사들이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간호사는 환자 앞에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척척박사여야 한다. 실제로 환자의 치료과정, 치료의 근거, 약물의 작용 및 부작용등을 모두 잘 안다면 완벽한 간호사겠지만 간혹 내가 모르는 것들이 있어도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신뢰를 잃는 순간, 간호사로서의 의미는 퇴색되어 버린다.

특히 정신과간호사에게 요구되는 것 중 하나, 환자에게 감정적으로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간혹 이 말을 오해하여 환자의 사연에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기도 하는데 포인트를 잘못짚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치료적 관계를 해치지 않도록 전문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과치료를 오래 받아왔던 환자들은 누가 신규고 경력자인지 말투, 눈빛으로 캐치한다.

그중 성격장애의 경향을 보이는 환자들은 '얼마나 잘하는지 보겠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부러 떠보기도 한다.

그 간호사 앞에서만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물의 이름이 뭔지, 부작용이 뭔지 물어보거나 일부러 간호사의 치료지시 또는 설명을 무시하고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간호사가 그들이 만들어낸 싸움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관되고 차분한 태도로 대응함으로써 그 상황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해와 바람」 이야기에서 바람이 힘으로 외투를 벗기려 할수록 상대가 더 움츠러들고, 해가 조용히 따뜻함으로 대응했을 때 자연스럽게 판이 끝났던 것과 닮아 있다. 상대가 만든 힘의 싸움에 들어가지 않고 그 구조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태도는, 전래동화가 말하는 지혜의 방식이기도 하다.

나도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아직 그들이 짜놓은 싸움에 들어가서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하기도 한다.
폭력성이 있는 망상환자에게 일명 ‘물싸대기’를 맞아보고, 나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쌍욕을 들을 때면 내 깊은 곳에 잠자던 맹수가 깨어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심호흡을 하며 ‘그래, 그들의 리그에 들어가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잡고, 환자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병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러면 단호하지만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고, 그 도발 역시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의 맥락 안에서 환자를 이해하는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대할 때 환자들 또한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처럼 경계를 풀고, 서서히 공격성을 내려놓는 순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시점이 치료의 시작이기도 하며 내가 정신과 간호사로서 가장 뿌듯하다고 느끼는 시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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