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 부재의 의미)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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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4. 16
어어어어 어 안 되는데……………
귀에서 이명이 들렸고 그대로 모든 게 멈췄다.
“진도 가야 되니까 짐 싸자… 선우작가 가야지”
“가야죠”
어떻게 하루가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방송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뉴스와 나는 한 몸처럼 움직였다.
눈물은 사치였고, 내가 왜 수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체 하나하나 해결을 해 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차가운 바다 어딘가에 계신
故 양승진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교직 생활을 하셨던 분과 취재를 위해 통화를 하다가 수화기 너머 선생님과 나는 오래도록 침묵을 해야만 했다.
‘그저 선생님을 찾을 수만 있게 해 주세요’
일주일 정도 방송국 시계로 시간이 흘러갔다.
취재를 하고 편집을 하고 영상에 어울릴 만한 음악을 찾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누구도 울지 않았다.
아니 울 시간이 없었다.
나에게 4월 16일은 그렇게 남아 있었다.
방송국에서 조금 멀어지고 난 후 여러 곳에서 들리는 세월호에 관한 기사와 언론의 보도 여론 등을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고 마주하기가 꺼려졌다.
‘왜 피하고 싶은 거지? 왜 그런 거지?’
이유를 모른 체 몇 해가 지나갔고
영화 ‘생일’을 보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애도를 놓쳤구나..’
서울에 있었다면 덜 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하고 있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짐작으로나마 한동안
마주 볼 수 없었던 죄스러운 마음의 자책이
놓쳐버린 애도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외면한 시간만큼 많이 아팠다.
“엄마 내가 만약에 저 바다에 있다고 하면
엄마는 어떻게 할 거야..? “
“바다를 다 마셔버려야지”
“저 부모님들도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그러니까
이제 그만하라는 말은 하지 말자… 우리만이라도
그렇게 말하지 말자…“
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바다를 다 퍼 마셔버리고 싶은 심정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좋으니
끝까지 모두 다 돌아올 때까지
절대 멈추어서는 안 되는 일
“아이들에게 너무 좋은 선생님이셨어요..”
아이들을 지키느라 끝내 본인을 지키지 못한
한 선생님을 매년 기억하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할 수 있는 한 아주 오래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