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 마음의 지근거리)
몸의 한 부분이 주기적으로 떨리는 증상을 가진
어떤 사람이 내 옆에 앉았다. 지하철 옆 자리라
그분의 떨림이 온전히 전해졌다. 다른 자리도
사람들로 꽉 찼고, 박차고 일어나자니
그런 내가 무례한 것 같아서 그냥 있었다.
“죄송합니다..” (떨림)
“아.. 아니에요..”
피하지 않고 팔을 더 바짝 붙였다.
괜찮다는 말 대신이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고
그때 기억이 났다.
그날 너무 힘들어서 일어서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고, 박차고 일어날 타이밍을 놓쳤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럴 만한 용기가 없었을 수도 있고
이유를 찾자면 더 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억지로 어떻게든 몸의 떨림을 참아보려
안간힘을 쓰면서도 옆 사람이 느낄 불편함까지
눈치 보고 신경 써야 한다는 걸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날이었다.
지근거리 딱 그 정도의 거리면 되는 거였다.
누군가의 아픔을 알아보고 이해해 보려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의 거리
너무 가까워서 부담스럽지 않고 너무 멀어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적당한 거리.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자는지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보고 있는지
아주 재미있는 무언가를 보고 못 참겠어서
웃게 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별일 없어서 다행이다 말해주는
사람이 고픈 요즘 필요한 드라마였다.
내가 아니라고 다 되는데 나는 안 된다는 거절을
오랜 시간 겪고 있을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힘들었을 그동안의 시간을 헤아려준 한마디가
그 어떤 말보다 크게 다가왔다.
“밥은.. 너 밥은 먹었어?”
그날 이후로 아픔은 어제까지만이 되었고
오늘부터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이따금씩 물어봐 주는 밥 먹었냐는
친구의 말을 먹고 나는 조금씩 차츰
괜찮아질 수 있었다.
나의 불편함과 너의 불안함 사이에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 서로의 삶에 환기가 되어 주면 좋겠다.
조금 가깝고 아주 멀지 않은 지근거리에서
그렇게 , 우리
내 아픔만 별거인 오늘 밤에도 아침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희망을 품고 마법 같은 주문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