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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Aug 07. 2019

한 번도 신지 않은 아기신발 팔아요*

-스핀오프 10: 믿거나 말거나, 헤밍웨이

북한산에 오르고 싶었다. 추억이 가득한 길. 아내와 함께 자주 오르던 계곡, 늘 반갑게 맞아주던 풀과 나무, 숲 향기를 머금은 산들바람이 그리웠다. 배낭도 등산 스틱도 없이 차에서 내렸다. 아내가 신던 신발을 신고. 계곡에 들어서는데 숲이 달려와 안아주었다.      

아내가 등산을 시작하자고 하기에 백화점에 가서 가장 비싼 것을 사다 주었다. 자기를 위해서는 비싼 것을 사지 못하는 사람이라 대뜸 얼마짜리냐고 물었다. 내가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비싼 것이긴 하지만 카드 포인트로 샀으니 마음 쓰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사은품 같은 것이지?” 

“그럼, 포인트로 결제한 거니까.” 

아마 오 년 정도 모은 포인트였을 것이다. ‘얼마’냐고는 묻지 않았다. 

“이렇게 비싼 건 처음이야.” 

세월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서였을까.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였다. 나는 한숨을 쉬었고. 그래야 겨우 몇 개월 신었을 것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신발장을 보니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언젠가...... 언젠가 정리하겠지. 아내는 발이 컸고 나는 발이 작았다. 오 밀리미터라는 작은 차이였다. 아내의 등산화를 신어 보았다. 신을 만했다.      


아마 서암사쯤이었을 것이다. 산을 올라 보니 등산화는 오 밀리미터도 작은 차이가 아니었다. 발이 아파서 벗어 들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어싱earthing을 자주 했기 때문에 익숙했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고 갇혀 있다가 풀려난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아플지 모르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삼거리에 있는 보리사 앞 나무데크에서 잠깐 누웠다가 내려왔다. 


목이 마르고 배도 출출해서 토성에 들렀다. 아내와 함께 자주 들렀던 음식점이다. 늘 먹던 해물파전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여기 해물파전은 정말 정성스럽게 만든다. 옆에서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신선한 재료를 넓게 펴고, 두 겹으로 만들었다. 그 두꺼운 것을 어디 하나 태우지 않고 잘 익혀서 동그란 모양 그대로 접시에 담아 준다. 


막걸리를 먼저 달라고 했다. 목이 말랐으므로, 이젠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므로, 좀 취해도 상관없으므로. 시간도 공간도 나를 놓아버렸으므로. 취하면 자고 가면 된다. 아무리 늦어도 괜찮다. 두어 잔을 달게 마셨다. 아직 파전이 오기 전이었고, 얼굴은 붉다 못해 타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

고개를 들었다. 파티마였다. 

“여기 웬일이세요?”

“모임 사람들과 트래킹 나왔어요. 선생님은 혼자 오셨어요?”

“예.” 

“술을 많이 드신 것 같아요.”

“아닙니다. 한두 잔만 마셔도 얼굴이 발개져요. 게다가 빈속에 마신 거라.”

해물파전이 왔다. 서 있는 파티마에게 말했다.

“괜찮으면 잠깐 앉으셔요.”

잠깐 머뭇거리더니 앉았다.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켜고 입을 닦더니 말했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세요?”

“글쎄요,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살아오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셨을 것 아니에요. 어떤 사람을 좋아하셨는지 생각해 보시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저는 저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다 어느 정도 그럴걸요.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셔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다 좋은가요?”

“아니군요. 좋아해 줘서 고맙지만 저는 그 사람을 좋아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미안한 경우도 있었어요.”

“부담스러운 경우는 없었고요?”

“그런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딱히 예쁜 얼굴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에요. 예쁜데 싫은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도 너무 못생기면 싫죠?”

“생각해 보니 그건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그렇지만 그건 어느 정도 주관적인 것이니까.” 

“여자들도 그래요. 생김새를 안 본다고 말해도 보기가 너무 괴로우면 안 되겠죠.”

“생각해 보니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따로 있긴 한 것 같아요. 최근 배우로 치면 샤롤리즈 테론인데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와 같은 모습이에요.”

“터프한 스타일을 좋아하시는군요.”

“상당히 그래요. 그렇지만 제가 좋아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미모 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이도 있었어요.”

“선생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아는 게 많지 않군요.”

“머리 회전이 빠르고 문화적으로 탁 트인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씀 같아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어쩌면 함께한 세월이 가장 중요한지도 모르겠어요. 함께 지내면서 받은 작은 감동이 모여 좋아하는 감정으로 변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원나잇 스탠드 같은 건 생각지도 못해요. 그건 확실해요. 사람을 좋아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달까.”

“참 하나마나한 말씀이셔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 저도 그래요. 안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예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너무 미운 건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예쁘고 밉고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안 그런 사람이 어딨겠어요? 자기 취향과 비슷했으면 좋겠다. 그것도 대개는 그렇죠. 자주 보고 정이 들면 익숙해질 테니까 좋을 것 같다. 그것도 다 그래요.”

“어쨌든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을 거예요. 늘 그랬으니까. 좋은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

“아, 선생님은 지금까지 친구 이야기를 한 거였어요?”

“그럼 무슨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그러면 얼굴이 예쁘다거나, 원나잇 스탠드 같은 말은 뭐예요?”

“아니, 보기만 해도 좋은 친구가 좋잖아요. 예쁘고 밉고가 아니라 내 스타일이라서. 글고 뭐가 어찌 되었든 친구가 안 되면 다른 건 아무 소용없어요. 저는 그래요. 원나잇 스탠드는 극단적인 예를 든 거고요.”

“아유, 참. 그러면 샘한테 그런 친구가 있어요?”

“글쎄, 퍼뜩 떠오르지는 않는군요.”

“한번 찾아보지 그러세요.”

“어디서요?”

“주변에서요.”

“생각해 볼게요. 근데 요즘 너무 바빠서요.”

“평생 바빠서 못 찾으셨어요?”

“글쎄요. 좋은 친구도 인연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그런 인연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봐야죠. 그러면 실현 가능성도 높아지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역시 할 일이 많아서 쉽지 않겠어요. 그리고 이야기하면서 곰곰 생각해 보니까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마음을 써주는.”

잠깐 말이 끊겼다. 

“그런데 왜 신발은 벗고 계세요?”

“아, 이 등산화가 좀 작아요. 아내가 신던 것이었거든요. 겨우 오 밀리미터 차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괜찮치 않네요. 산을 오르다가 발이 아파서 벗어버렸어요. 전에 한 번 말씀드렸죠? 저는 맨발로 다니는 것도 익숙해요.”

“신발 사이즈가 얼마인가요?”

“이백오십이예요.”

“새 신발 같은데......”

“예, 아내가 얼마 신지 못했죠.”

“그래서 안 신을 건가요?”

“못 신을 것 같아요.”

“그럼 저를 주세요.”

“예?”

“고이 간직하려는 건 아니시죠? 버리거나 벼룩시장에서 팔 생각도 아니시죠?”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잠깐만요. 금방 돌아올게요.”

파티마는 돌아와 탁자 위에 두 개를 올려놓았다.

“꽃장과 꽃차예요. 이거 받으시고 신발은 저를 주세요.”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파티마가 설명했다.

“꽃장은 십 년 넘게 숙성시킨 조선간장이에요. 얼마 전에 조선간장 명인 집에 견학을 갔더랬는데, 거기에서 샀어요. 아주 향기로워요. 그리고 이건 진달래 꽃차예요.”

나는 금방 꽃장에 마음이 빼앗겼다. 조선간장은 대개 청장, 중장, 진장으로 나눈다. 청장은 일 년, 중장은 삼 년, 진장은 오 년을 넘긴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십 년 넘게 숙성시킨 조선간장이라, 맛과 향이 궁금했다. 간장은 해를 넘길수록 양도 줄어든다. 그래서 아주 오래된 간장이라고 해도 매년 청장을 더해서 묵힌다. 그렇게 10년을 넘긴 장을 꽃장이라고 부른다는 말인가?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맛과 향이 어떨까? 꽃장 병에 붙어 있는 설명서를 읽어보고 있는데 파티마가 말했다.

“선생님이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그럼 이제 저는 가야 해요.”

파티마는 그렇게 말하고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멍한 채로 잠깐 앉아 있다가 깨달았다. 신발을 건네주었다. 그제야 웃으며 일어나 갔다. 

‘이게 무슨 일이람?’

맨발로 주차장으로 가면서, 운전석을 뒤로 눕히고 눈을 감으면서, 잠이 들면서, 잠에서 깨어나면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와 내 주변의 모습은 점점 더 낯설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물건을 챙기다 말고 꽃장을 검색해 보았다. 재미있는 결과가 세 개 있었다. 하나는 꽃장이 소매치기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장례 방법 가운데 하나다. 수목장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화장한 가루를 땅에 묻고 그 위로 꽃을 심는다. 수목장은 잘 자란 나무 밑에 가루를 통에 담아 묻는다. 꽃장다리라는 말도 있었다. 진달래꽃을 이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진달래꽃의 꽃말은 사랑의 기쁨이고. 꽃장이 10년 넘은 간장이라는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이름을 붙였나 보다. 그 이름이 여러 개의 의미를 아슬아슬하게 이어주고 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아기신발 팝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오늘 일을 되새기는데 헤밍웨이가 썼다는 이 여섯 단어 소설이 떠올랐다.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다 쓴 지금도 잘 모르겠다. 산길을 다니다가 얼굴에 걸린 가느다란 거미줄 정도의 관계인 것 같기도 하고. 그 거미줄은 잘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다. 떼어내려고 해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정말 헤밍웨이가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짧은 소설에는 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기 물건은 대개 낳기 전에 준비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아기가 신발을 신어 보기도 전에 죽은 모양이다. 부모는 그 신발을 보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기는 싫었을 것이고. 벼룩시장에 내놓았다. 가난한 부모였을까? 이 소설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자기 이야기를 채워 넣게 만든다. 이 짧은 소설이 재미있고 깊은 의미가 생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또 하나, 공자가 했던 말 가운데 ‘술이부작’이 있다. 자기가 한 말은 지어낸 말이 하나도 없고, 그저 성인들 말씀만 옮길 뿐이라고 했던 것이다. 최근 고고학이 그게 거짓말임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공자의 말은 거의 모두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 어디 공자의 말만 그럴까? 아닐 것이다. 

현대인들이 주장하는 대부분의 ‘진리’ 역시 논거가 완전치 않다. 유발 하라리는 현대의 과학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믿음 역시 종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상당 부분 진실이다. 진리나 진실은 누군가,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뼈대일 뿐이다.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저 여섯 단어 소설을 만들었을 것이다. 의미는 독자가 만드는 것이다. 같은 음식을 먹고도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듯이.

우연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필연이라는 것도 캐 들어가 보면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을 배경으로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우리는 모두가 가느다란 우연으로 뒤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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