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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Aug 13. 2019

쿵후 선생

-스핀오프 11: 주부의 하루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것일까? 시간만 나면 음식기행을 찾아서 본다. 아침에 일어나 중국 쓰촨 성 청두로 떠났다. 백종원을 따라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 곳이다. 이번에는 여경래를 따라갔다. 피시안 마을 두반장 공장에서 맛을 음미하다가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아내가 먹고 싶다고 했던 마파두부, 두반장은 어디엔가 있다고 했다. 그때는 해먹을 상황이 아니었고, 그 뒤로 해 줄 기회가 없었다.


냉장고를 뒤졌다. 그동안에는 보이지 않으면 편하게 사서 썼다. 필요한 책을 찾지 못하면 한 권 더 주문하는 습관처럼. 따지고 보면 집 앞 마트에 두반장이 판다는 보장도 없다. 여기저기 헤매고서야 겨우 샀는데 냉장고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얼마나 허탈할 것인가. 일을 만들려고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냉장고 위 두 칸에는 내가 모르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아내는 그것들을 넣어놓고 한 마디 설명 없이 세상을 떠나 버렸다. 두반장이 있다면 거기일 것이다. 하나하나 꺼내 냄새를 맡고 맛을 보았다. 된장 고추장이 많았다. 아주 오래 묵은 갓김치도 있었고, 무슨 짠지인지 모르는 것도 있었다. 어떡할까, 하다가 버리기로 했다. 아내가 투병을 시작하기 전에 넣어두었던 것들, 사 년쯤은 되었지만 손도 대지 않았다. 앞으로도 먹지 않을 것이다. 두반장을 찾자고 시작했는데 일이 커졌다.

 

냉장고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낸 다음 냉장고 칸을 닦았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좀 정리하자, 청소하자. 혼잣말을 되풀이하면서 닦았다. 그런 다음 버릴 것과 다시 냉장고에 넣어둘 것으로 나눴다. 된장과 고추장, 매실청과 산머루청은 깨끗이 닦아서 다시 넣었다. 오래된다고 문제 될 게 없으니까. 어쩌면 세월과 함께 더 좋은 것이 될지 모르니까.

 

두반장은 나오지 않았고, 버려야 할 음식물쓰레기만 잔뜩 쌓였다.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버리려면 커다란 음식물쓰레기 봉지가 필요했다. 두반장과 큰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사러 다녀오자. 손을 씻고 옷을 입었다. 나서기 전에 마파두부덮밥 레시피를 몇 개 찾아보았다. 이연복, 이경래, 중국 현지 레시피 등등.


마파두부를 위한 재료는 이런 정도였다. 갈아둔 소고기나 돼지고기, 대파, 마늘, 생강(조금), 산초가루, 완두콩, 달걀국에 넣을 부추 조금. 부추를 빼면 모두 집에 있는 것들이다.


집에 들어와서야 알았다. 가장 중요한 두부를 사 오지 않았다는 것...... 어쩔 수 없지 뭐. 다시 나갔다 와야지. 기왕 나가는 길이니 버릴 음식물을 정리해서 가지고 나가자. 용기들을 비우고 씻어서, 역시 버릴 것과 쓸 것으로 나누었다. 버릴 것을 들고 다시 집을 나섰다.  쓰레기를 버리고 두부를 한 모 샀다.

먼저 양념을 장만했다. 대파 흰 부분 한 대를 적당히 다져 썰고, 마늘도 열한 개를 다지고, 생강은 조금만, 뭉개서 다졌다. 모두 함께 그릇 하나에 담고 거기에 완두콩 서른네 알과 두반장 한 숟갈을 올려 두었다. 그리고 다른 그릇에 전분 한 스푼 정도에 대략 그만큼의 물을 부어두었다. 두부는 적당한 크기로 깍둑썰기 해 두었고.


사람들은 가끔 예능과 다큐를 구별하지 못한다. 내가 너무 다큐스러워서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예능감각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웃어야 하니까. 마늘 열한 개나, 완두콩 서른네 알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시라. 완벽주의는 건강에도 해롭다. 콕 찍어서 숫자를 들이대면 훨씬 그럴 듯하지 않은가. 그래도 적당히, 적당히.


마파두부의 맛은 두반장 양념이 잘 밴 두부와 고추기름에 익힌 고기의 감칠맛이 더해진 것이다. 산초가루처럼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가 들어가면 더욱 좋고. 산초를 싫어하면 넣지 않아도 된다.


만드는 방법과 순서는 이렇다. ①프라이팬에 고추기름을 두르고 센 불로 소고기를 익히다가 ②고기의 붉은색이 사라질 때쯤 ‘만들어둔 양념’을 들이붓고 다시 볶는다. ③마늘과 파향이 충분히 피어오르면 육수(없으면 맹물도 개아늠)를 자작하게 붓는다. ④거기에 굴쏘스 조금, 맛술 조금, 후추와 산초를 쫌 넣는다. ⑤잘 저어주다가 끓으면 썰어둔 두부를 넣는다. ⑥마지막으로 전분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걸쭉한 정도를 조절한다. 다 된 뒤에 그릇에 옮기고, 그 위로 참기름을 조금 뿌려주면 입맛을 돋우는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프라이팬을 불 위에 올린 다음부터는 대략 육칠 분이면 만 들 수 있다.


이 방법대로 만들어보라. 정말 맛있다. 아, 물론 맛이라는 게 취향과 깊은 관련이 있어서 맛을 내는 핵심을 잘 이해하고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만.


여기에 가벼운 달걀국을 만들어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육수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치킨스톡을 쓰는 것이다. 준비할 것은 달걀 하나를 깨뜨려서 휘저어놓고, 부추를 적당히 썰어 둔다. 부추를 넣지 않아도 괜찮지만 풍미의 차이가 크다.


순서와 방법은 이렇다. 물을 안친다. 거기에 치킨스톡 조금 그리고 진간장, 국간장, 굴쏘스는 아주 조금씩만 넣고 끓인다. 끓으면 섞어둔 달걀을 실처럼 흘리듯 돌리면서 풀어준 다음 부추를 넣고 곧(10초 정도?) 불을 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전자레인지에 접시를 일 분 정도 데우고, 거기에 밥을 조금 푸고 마파두부를 끼얹어 덮밥을 만든다. 달걀국과 함께 먹으면 아주 잘 어울린다.      


앞치마를 두르지 않고 음식을 만들었더니 빨아야 할 정도로 셔츠에 양념이 묻어 있었다. 어쩌다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나만 넣고 세탁기를 돌릴 수는 없으니 집안을 돌아다니며 빨래 거리를 몇 개 찾아 넣고 돌렸다. 며칠 전에 널어둔 빨래를 모두 걷어 개어 제 자리에 가져다 놓으면서 보니 진공청소기를 돌려야 했다.


다 하고 하니 좀 쉬고 싶었다. 침대방에 가서 누웠다. 아마 한 시간쯤 잤을 것이다. 세탁기로 가서 다 된 빨래를 꺼내 건조대에 널었다. 그런 다음 온 집안을 걸레로 닦았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걸레가 새카매졌다. 걸레를 두 번 빨아 썼다. 이제 더 이상은 아무것도 못하겠다.


영화나 보다가 잠이 들어야지. 진작부터 이안 감독의 삼부작을 보고 싶었다. 연대순으로 보면 <쿵후 선생>, <결혼 피로연>, <음식남녀>으로 이어진다. <쿵후 선생>을 보았다.

일흔 살이 되어 외아들 집에 살러 들어간 아버지 이야기다. 아버지는 주말 문화센터의 쿵후 선생이고 며느리는 미국인 여자였다. 평일에는 집이 좁아서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는데 서로 잘 맞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아들은 잘해 보려 했지만 결과는 엉망이었고, 마침내 쿵후 선생이 가출한다. 차이나타운 중국음식점에서 설거지하면서 하루하루 살아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아드님의 효심도 크긴 했지만 쿵후 선생의 쿵후 실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젊은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실력 덕분에 돈도 조금 벌 수 있게 되었으니. 드라마라면 으레 그런 것처럼 쿵후 선생에게 한 여인이 다가온다.


묘하게 감정 이입되어 감기는 눈을 비벼가며 끝까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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