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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Aug 20. 2019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냄새

-스핀오프 12 : 프루스트 현상

밤 열 시쯤 배가 고팠다. 밤늦게는 웬만해서 먹지 않지만 고통스러울 만큼 배가 고플 때가 있다. 그럴 때 스파게티를 먹는다. 만들기 쉽고 소화도 잘 된다. 올리브 오일은 건강에도 좋다. 가장 간단한 알리오 올리오를 조금 맵게 만들었다.


스파게티를 끓는 물에 넣고 8분 삶았다. 올리브유를 두른 프라이팬이 뜨거워졌을 때 편으로 썬 마늘은 듬뿍, 페페론치노는 세 개 부셔 넣었다. 향이 올라오면 건져둔 스파게티를 넣고 볶는다. 이때 면수도 조금 넣어준다. 국물이 졸아들면 다 된 것이다. 쟁반에 담았다.


조금 먹다가 빠뜨린 것이 떠올랐다. 트러플 오일, 깜빡했다. 오랜만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요즘은 중국음식기행을 따라다녔고, 중국음식을 자주 해 먹었다. 아주 다른 냄새를 풍기는 다른 맛이었다. 그래서 그 향기를 잊었을 것이다.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설 때 향수를 뿌리는 것처럼 스파게티를 접시에 담고는 언제나 트러플 오일을 살짝 뿌렸다. 조금이지만 엄청난 존재감을 느낀다. 냄새는 맛있는 기억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나도 향수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아내가 ≪성공하는 남자의 옷입기≫(1993년)를 쓰면서였다. 향수는 사치스러운 습관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그때 처음 들었다. 사람마다 모두 냄새가 다르고, 그건 알몸만큼이나 매우 사쩍인 것이다. 그 냄새가 어떤 사람에게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역겨울 수 있다.


어린 시절에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고등학생인 나를 무척 귀여워했던 대학생 누나가 있었다. 그 누나 집에는 늘 문학잡지가 있었다. 그걸 보려고 그 집에 가고는 했다. 그밖에는 앞뒤 맥락이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전이라. 그 누나와 키스를 했다. 첫 키스였지만 조금도 달콤하지 않았다. 누나의 몸 냄새가 싫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한 번 그랬다. 한 여자 동료에게서 나는 냄새가 너무 역겨웠다. 머리가 아플 정도였는데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그런 낌새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피하기만 했다.


“그러니 알몸을 가리는 옷 입기는 향수로 마무리해야 하는 거야. 남자든 여자든.”

아내가 하는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 몸에서 나는 냄새도 누구에겐가 역겨울지 모른다. 나는 라벤더 향을 좋아했다.


투병을 시작하면서 아내는 집안의 모든 향기를 없애 달라고 했다. 향기 때문에 두통이 난다는 것이었다. 남은 향수는 모두 비닐봉지에 담아 밀봉해서 서랍에 넣어두었다.      

트러플 오일을 뿌린 스파게티를 먹다 말고 향수를 담아두었던 비닐봉지를 찾아 뜯었다. 오래된 내 향수를 손목에 뿌리고 코밑에 대어보았다. 라벤더 향기가 가슴 깊이 파고든다.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얼마 전에 갔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데이지가 떠올랐다. 나는 알리오 올리오를, 그녀는 타르투포를 주문했다. 타르투포는 탈리올리니 면을 쓰고 블랙 트러플(검은 송로버섯)을 얇게 저며 올린 것이었다. 음식이 나오자 그녀는 잠깐 일어나 나를 스쳐 지나갔다. 바로 그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라벤더 향기가 연기처럼 나를 감쌌다. 그날은 그 향기의 정체가 궁금했을 뿐 아무래도 기억해낼 수 없었다. 이제야 그날의 묘한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다.


라벤더 꽃말은 ‘대답해 주세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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