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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Aug 24. 2019

오늘 아침에 나는 뭘 먹은 걸까?

-스핀오프 13 : 돌고 돌아 도착한 곳

어제 아침에는 짬뽕 라면을 만들어 먹었다. 그거 생각보다 아주 쉽다. 재료도 간단하다. 돼지고기, 양배추나 배추, 양파, 대파, 고춧가루, 마늘 다진 것. 그리고 당연히 라면.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달궈지면 돼지고기를 볶는다. 냉동 대패삼겹살이 가성비 짱이다. 돼지고기 안심이나 등심, 뒷다리살처럼 기름이 적은 것을 써도 상관은 없다. 값도 싸니까. 다만 ‘기름이 적은 부위’라면 식용유를 좀 더 써야 한다. 그냥 구워 먹기만 해도 맛있는 목살이나 삼겹살은 좀 아깝고. 그렇다고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돼지고기를 볶을 때는 썰어둔 양파와 대파를 함께 넣고 볶는다. 양파가 투명에 가까운 블루가 될 때쯤 양배추를 넣고 볶다가 진간장을 프라이팬 둘레로 돌아가면서 조금씩 뿌린다. 간장의 향이 불 맛을 받아 들고 음식재료에 스며든다. 뒤섞고 흔들 때 재료는 간장의 향과 불 맛을 만나는 것이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넣고 다시 볶는다. 고춧가루가 타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프라이팬의 ‘물끼’를 잘 확인해야 한다. 혹시 너무 ‘건조’해졌다면 기름을 조금 치도록 하고.


이제 물을 붓고 라면 프레이크와 스프를 넣는다. 양념들이 모두 잘 어우러져서 깊은 맛을 내는 국물이 되는 것을 보고 나서야(적어도 삼사 분은 끓인 뒤), 라면 사리를 넣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라면은 쎈불에 익혀야 한다. 집개로 조금 뒤적거리면서. 조금 덜 익었을 때 꺼낸다. 그래야 쫄깃한 면빨을 즐길 수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지체되어도 퍼지지 않고. 퍼진 모습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참고로 맛있는 국물을 만들고 싶다면 마법의 양념을 좀 쓰는 것이 좋다. 치킨스톡, 굴쏘스, 표고버섯 가루, 한우 가루, 생강가루 등등 다양한 마약이 있다. 급하게 음식을 만들어야 하거나 뭔가 이프로 부족할 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어디나 조금씩 넣어 보라. 맛이 달라진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치킨스톡, 굴쏘스다. 


맞다 어느 정도는 페이크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우리 입은 진짜가짜를 구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듯한 것을 더 그렇다고 느낀다. 마법이라고 이름 붙은 것들, 비법이라고 이름 붙은 것들은 다 가짜다. 모두가 가짜를 좋아하면 잠깐은 진짜가 되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도 이걸 먹었다는 것은 아니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짜장밥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춘장이 없었다. 채소도 좀 사 와야 하니 잠깐 나갔다 오지 뭐. 오이 세 개, 가지 두 개, 당근 세 개, 숙주나물, 참나물, 쪽파 한 묶음을 샀다. 시장에 들르면 늘 몇 가지 더 사게 된다.


그나저나 춘장을 사려고 보니 재료가 거의 대부분 미국산이다. 미국산 밀가루로 만든 건 아무래도 문제가 많다. 망설이다가 사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우리밀 춘장을 주문했다. 짜장밥, 뭐 급하지 않아.


집으로 돌아와서는 맨 먼저 오이를 꺼내 씻고 썰어 소금에 절였다. 십오 분 정도 절여두어야 하니까. 그런 다음 장본 것을 냉장고에 정리해 넣고 가지만 남겨 두었다. 오늘은 이 두 가지 나물을 하자. 맛있는 열무김치가 있고, 장조림이 있고, 땅콩조림이 있으니. 그것들과 달걀프라이 두 개쯤 해서 나물비빔밥을 해 먹자. 국물은 맑은 된장국을 끓이고.


어긋나기 시작했다. 안쪽 냉장고를 열어 보았더니 어제 남긴 짬뽕국물이 있었다. 꺼내 보니 고기 건더기도 아주 많이 남아서 한 끼 밥반찬이 될 것 같았다. 일단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웠다. 이 분. 맛을 보니 아주 괜찮다. 그냥 이걸로 먹자. 가지나물 한 가지만 더 만들어서.


가지를 씻어서 동글동글하게 잘랐다. 너무 두껍거나 너무 얇으면 안 된다. 가지는 물끼를 많이 품고 있어서 그것부터 빼야 한다. 소금에 절여도 되지만 나는 기름을 두르지 않은 프라이팬에 올려서 굽는다. 구워서 물끼를 빼고 양념에 무치는 것이다. 그게 더 맛있고 확실한 방법이다.

오이를 저려 둔 지 십오 분이 지났다. 물이 많이 나와 있다. 꼭꼭 짠다. 그래서 물기를 뺀다. 힘이 좀 들 것이다. 가정용 짤순이를 쓰면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꼭 짜야 아삭아삭하게 맛있다. 짰다면 볶으면 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적당히 넣어서 조금 볶다가 짜 둔 오이를 넣고 볶는다. 마늘이 색이 변할 정도로 오래 볶으면 안 된다. 끝내기 전에 맛을 보도록 하자. 음식을 만들면서 맛보는 것은 아주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다. 혹시 오이 맛의 끝에 쓴 느낌이 남아 있다면 조금 더 볶으면 된다. 그게 끝이다. 나물 그릇에 덜고 그 위로 참기름 한 방울(말 그대로 딱 한 방울), 깨소금을 조금 친다.


가지나물도 금방 만든다. 볶기 전에 양념을 만들어두자. 양조간장, 식초, 굴쏘스를 일대 일대 사 정도로 섞어 둔다. 이때 쓰는 식초로는 발사믹이 가장 좋다는 소문이 있다. 구운 가지가 담긴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조금 두르고 볶는다. 이때 식용유보다 버터나 라드를 쓰면 훨씬 더 맛있다. 아마 일 분 정도 볶으면 될 것이다. 그러다가 앞에서 만든 양념을 프라이팬 주위를 죽 돌아가며 부어준다. 간장의 맛과 향이 불 맛을 품고 재료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나물 그릇에 던다.


옵션이 하나 있다. 대파나 쪽파를 쫑쫑 썰어서 물에 담가 두었다가 꼭 짜서 가지나물 위에 얹어 먹는 것이다. 해 보시라. 풍미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다 만들었다. 열무김치를 꺼내 쫑쫑 썰고 들기름을 조금 뿌려 무쳤다. 다른 밑반찬도 꺼냈고. 전자레인지에서 어제 아침에 먹고 남은 짬뽕 국물을 꺼내고 밥솥을 열었다.

!!!

짐작하실 것이다. 다들. 무슨 문제인지. 그랬다. 밥이 없었다. 늘 대기하고 있던 식은 밥도, 햇반도 없었다. 가장 빨리 준비할 수 있는 건 뭘까? 둘러보니 건면으로 만든 에그누들이 있었다. 물을 올리고 끓기를 기다려 에그누들을 넣었다. 끓는 물에 이 분 에 건져내면 된다.


웍에 짬뽕 국물을 붓고 거기에 삶은 에그누들을 넣고 볶듯이 끓였다. 도대체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음식이다. 좋게 보면 퓨전의 퓨전이다. 퓨전은 짬뽕이라는 뜻이니,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이 다시 짬뽕이다.


에그 누들이 담긴 짬뽕 한 그릇을 들고 밑반찬을 차려 둔 식탁에 앉았다. 가지나물이 아주 맛있었다. 두 개나 되는 양이었는데 다 먹었다. 오이나물도 아주 맛있었다. 들기름에 무친 열무김치도, 땅콩조림도. 먹고 나서 부엌을 치우고 약을 챙겨 먹었다. 꽤 힘들게 아침 식사를 했다. 혼자서 혼자 먹겠다고.

마지막으로 콜드브류 커피와 우유를 일대 이쩜이 비율로 탔다. 카페라떼의 비율은 이게 좋다. 시럽을 조금 넣고 백스물다섯 번을 저은 다음 냉동실에 넣어 두고 안락의자에 앉았다.


부엌에서 일하는 동안 배경음악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었다. 스마트폰 안에서 사는 젊고 힘찬 여자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제 끝났으니, 안락의자에 앉아 종이 책을 들었다. ≪일본제국 패망사≫, 1400쪽 짜리라 꽤 무거웠다.


삼십삼 분쯤 읽다가 냉동실에서 카페라떼를 꺼내왔다. 얼음이 살짝 덮고 있었지만 흔들면 금방 사라진다. 시원했다. 스마트폰 문자와 톡을 챙겨보았다. 대개의 경우 무음으로 설정해두기 때문에 가끔 챙겨보아야 한다. 전화가 한 통, 문자가 하나 있었다. 파티마에게서 온 것이었다.


‘김현의 첫 번째 평론집, ≪존재와 언어≫ 초판본을 구했어요. 어떻게 전해드리면 좋을까, 해서 전화드렸는데 안 받으시네요.’

세상에, 그 구하기 어려운 것을! 그 책은 오백 부 한정으로 찍은 것이다. 천구백육십오 년에. 아름다운 글로 유명한 김현의 '형편없는 글'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내가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나도 문자를 남겼다.

‘아, 고마워요. 다음 주는 너무 바빠서 시간이 안 되고, 그다음 주 목요일에 뵈어요. 그날은 내가 저녁을 살게요. 그날이 안 되면 연락 주세요. 고마워요.’


새로이 만난 사람들의 얼굴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파티마라고 소리낸 그 순간에도 파티마의 모습은 캄캄하다. 지난 날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세상을 떠난 아내와 독립한 아들의 얼굴, 오랫동안 함께한 제자님들, 친구들 얼굴은 선명하다. 꽤 오랫동안 보지 못했지만. 만나기로 하고도 못 알아보는 것 아닐까. 갑자기 조금 걱정스러워졌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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