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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Sep 11. 2019

차가운 쏘스의 맛

-스핀오프 19

다시 아침 일찍 일어난다. 몇 시에 잠을 자든. 몸이 어쩔 줄 모르는 모양이다. 일어나면 고혈압 약을 먹는다. 그게 위장을 자극했을 것이다. 배가 고프다. 서재에 앉아 책을 읽는데 부엌에서 소리가 난다. 밥 먹어. 응, 알았어. 물을 한 잔 들고 식탁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세상이 하얘졌구나. 밤새 눈이 많이도 내렸네. 순백으로 뒤덮인 세상을 내려다보며 마음이 설렌다. 그 소리가 들릴 만큼 집안은 고요했다.


냉장고를 열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습관이다. 옛날에는 늘 아내가 먹을 것을 챙겨두고는 했다. 내가 없어도 꼭 챙겨 먹어. 냉장고에서 꺼내 랩만 벗기면 돼. 오래전에 잊었어야 할 습관이 남아 있다. 부엌에 들어서면 냉장고부터 열어본다. 뭘 해 먹지? 생각만으로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음식재료를 보면 떠오른다. 초점이 바뀌었을 뿐이다. 아내가 뭘 해 놓았나,였던 것이 이제는 아, 저걸 해 먹자. 요리나 글이나 다 견물생심이다. 보고 느껴야 길이 보인다. 


며칠 전에 만들어둔 미트볼이 있었다. 저건 오래 두면 안 돼. 요즘은 먹고 싶은 것보다 먹어 치워야 할 재료가 우선순위 앞에 있다. 아내의 목소리도 떠오른다. 숙주나물 하고 시금치나물은 오늘 먹어치워야 해. ^^ 


굵은소금을 반 숟갈쯤 넣고 끓인 물에 통밀 롱파스타를 삶기 시작했다. 이건 7분이다. 삶는 시간은 면마다 다르다. 포장지에 쓰여 있다. 없다면 10분이고. 미트볼 다섯 개를 꺼내 익혔다. 기름을 두르고 골고루 갈색이 날 때까지. 천천히 돌려가면서. 이건 오 분쯤 걸린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꺼내서 갈아두고 얇게 썰어두었다. 올려 먹으면 맛있다. 채소 피클도 꺼내 담았다. 


다 삶은 면을 건져 올리브유에 뒤섞어 두고, 새 프라이팬에 구운(반쯤 튀긴) 미트볼을 넣고 그 위로 토마토소스를 끼얹었다. 면수도 조금 섞고. 조리듯 볶을 거니까. 이건 삼 분쯤. 물론 불의 세기에 따라 다르다. 만드는 동안 간을 보기 위해 조금씩 맛을 보았다. 아, 맛있다. 거기에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래도 맛있다...... 자취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아내가 직장 때문에 서울로 가고 나는 용인에 남았다. 그렇게 떨어져 지낸 세월이 오 년이다. 자주 해 먹던 음식은 된장국수였다. 국수를 된장국에 말아먹으면 맛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돼지고기를 많이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기도 했다. 그냥 넣고 끓인 게 전부였다. 가끔씩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파는 곳은 없었고 그냥 마음을 달래야 했다. 이제는 먹고 싶은 맛이 담긴 음식을 자유자재로 만든다. 맛에 대한 갈증도 없어졌다. 


둥글고 큰 하얀 접시에 스파게티를 담고 초록색 작은 찬그릇에 붉은색을 띤 채소 피클을 담았다. 그 위로 상아색 치즈 조각을 올리고 가루를 뿌렸다. 잠깐 멈추고 차린 음식을 보았다. 아주 그럴듯하다. 사진을 찍는데 또 눈물이 핑 돈다. 


포크로 말아서 한 입 먹어보았다. 감칠맛이 가득하다. 미트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오이 피클도 하나. 꼭꼭 씹었다. 아주 맛있다. 못 먹겠어. 일어나 서재로 왔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두고 오늘따라 유난을 떤다. 기억이 가슴 아프게 한다고는 하지만. 요즘 내가 해 먹는 음식은 아내에게 한 번도 해주지 못했던 것들이다. 이렇게 차려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행복해하는 웃음이 떠올랐다.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창문을 다 열었다. 찬바람이 온 집안을 누비고 쓸고 다니며 슬픈 기운을 다 몰아내 주기를 바라며. 그러는 사이 두꺼운 가운을 입고 스토브를 켜고 서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오늘은 강독하는 날이다. 마음을 다독거리고 강독할 부분을 읽었다. 추워서 벌벌 떨 때쯤 창문을 닫고 시계를 보았다. 삼십 분 뒤에는 나서야 한다. 식탁 위에는 차가운 스파게티가 그대로 있다. 어떡하지? 먹을까? 치울까? 


먹기로 했다. 두 시간 강독해야 한다. 배가 무척 고플 것이다. 뒤풀이도 해야 하고. 아니, 허기가 져서 강독을 제대로 못할 수도 있다. 차가웠지만 엠에스지가 가득 든 재료라 그럭저럭 먹었다. 남기지 않고. 뒷맛이 좀 쓰다. 찬밥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슬픔 때문일까. 장례식장 풍경이 떠올랐다. 그렇게 울고도 밤늦게 육개장에 밥을 말아먹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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