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래 Oct 04. 2019

까르보나라와 남아 있는 나날

-스핀오프 24

대나무 숲으로 꾸민 식물원 같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티마를 만났다. 나는 까르보나라, 파티마는 해산물 토마토 파스타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자 나는 습관적으로 까르보나라를 접시에 덜어서 주었다. 

“베이컨을 많이 넣어 주었군요. 조금 느끼해요. 그래도 맛을 좀 보셔요.”

파티마는 베이컨을 골라냈다. 

“비계 붙은 고기는 싫어요.”

골라내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다. 내일모레면 오십이 될 텐데. 

“작가님은 좋아하시죠?”

골라낸 베이컨은 내 접시에 도로 담아 주었다. 파스타만 조금 맛을 보더니 말했다.

“너무 느끼해요.”

“좀 그렇죠. 마늘과 페페론치노를 넣으면 느끼하지 않은데...... 크림도 넣을 필요가 없고.”

파티마는 조금 덜어 준 까르보나라를 더 이상 먹지 않았다. 마음이 쓰였다.

“까르보나라는 아마도 미국 군인들을 위해 만든 음식이었던 것 같아요. 2차 대전이 마무리될 때쯤 이탈리아에서. 여러 가지 썰이 있긴 하지만요. 기본 재료는 베이컨, 치즈, 달걀, 후추예요. 그러니 한국 사람 입맛에는 느끼할 수밖에 없겠죠. 그렇지만 제가 만든 건 파티마도 잘 드실 거예요. 좋은 재료와 적당한 조리방법을 선택하면 느끼하지 않게 만들 수 있어요.”

“어떤 재료를 쓰시는데요?”

“오리지널 레시피를 보면, 베이컨은 염장해서 만든 관찰레나 판체타를 쓰는데요. 한국에서는 관찰레를 구할 수 없어서 판체타를 씁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보통 먹는 미국식 베이컨하고는 맛이 다릅니다. 훈연하지 않은 것이라 향도 없고 달콤하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색다른 맛이 나죠. 치즈는 좀 다릅니다. 양유로 만든 페코리노 로마노를 쓰는데요, 조금 달고 호두 향이 납니다. 소스를 만들 때 신선한 달걀과 페코리노 로마노 간 것을 듬뿍, 그리고 흑후추를 넣고 뒤섞습니다. 그러니까 파스타를 삶아서 베이컨과 함께 볶은 다음 소스로 버무리는 거죠. 베이컨을 굽고 파스타를 볶을 때 마늘 편을 듬뿍, 매운 고추를 쫌 넣으면 느끼하지 않아요.”


파티마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들었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는 것일까.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어서 말하다가 말고 나는 가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곤 했다. 말을 끝내고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파티마도 커피 한 모금, 그리고 해산물 스파게티를 마저 다 먹었다. 고요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손님들도 아무도 없다. 카운터 쪽에 두 사람이 서 있을 뿐이었다. 마치 누군가 얼음 땡이라고 소리친 뒤 얼음이 된 것처럼. 파티마가 깨뜨렸다.


“언제 만들어 주실 건데요? 느끼하지 않은 까르보나라. 판체타와 페코리노 로마노를 써서 만든 스파게티요.”

빨리 대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집으로 초대하는 일이다. 

“일주일쯤 뒤에요. 지금은 페코리노 로마노가 없어요. 주문해 두었는데 그때야 배달이 됩니다.”

“예, 그러면 일주일 뒤에 만들어주셔요. 저는 좋은 포도주 한 병 가지고 갈게요. 맛난 초콜릿 조금 하고요.” 

    

파스타 삶을 물을 안치고 소금을 조금 넣었다. 일쩜삼 퍼센트쯤 되도록. 파스타를 골랐다. 펠리체티 유기농 삼색Tri-colour으로 하자. 물이 끓을 때 넣고 9분을 맞추었다. 쿠킹타임이 10분이라니까. 그러고 통마늘을 두 개 꺼내서 깠다. 편으로 얇게 썰어두고, 판체타를 듬뿍 잘라내어 적당한 크기로 썰었다. 이제 쏘스 만들 준비만 하면 된다. 달걀 세 개를 꺼내 하나는 깨어 담고, 두 개는 노른자만 썼다. 거기에 페코리노 로마노를 듬뿍, 후추도 꽤 많이 갈아 넣고 잘 뒤섞어 두었다. 


판체타를 충분히 굽고, 기름이 나오면 대부분은 버린다. 거기에 올리브 오일을 좀 넣고, 마늘 편은 꽤, 으깬 붉은 고추는 쫌, 면수는 반 컵쯤, 그리고 파스타를 넣고 볶는다. 센 불로 격렬하게 흔들어대면서. 물끼가 사라지면 불을 끄고 조금 식힌 다음 쏘스를 붓고 버무리면 된다. 식히는 이유는 쏘스의 베이스가 달걀이라 뜨거울 때 부으면 버무려지지 않고 스크램블이 되기 때문이다. 너무 뻑뻑하면 면수를 조금 부어주면 된다.


파스타를 꺼내서 볼에 담고 올리브 오일을 넣고 비비는데 벨이 울렸다. 파티마의 기찬 타이밍. 앞치마를 입은 채로 나가 문을 열어 주었다. 파티마는 들어서면서 붉은 방패, 에스쿠도 로호와 고디바 초콜릿 작은 상자를 건네주었다. 

“제가 조사해 보았는데, 이게 까르보나라와 잘 어울리는 포도주라고 해요. 레드와인이에요.”

“아, 좋은 궁합이군요. 잠깐 앉아 계세요. 음식은 오 분 안에 마련됩니다.”

포도주를 따서 미리 와인 잔에 따라두었다. 바람을 좀 쐰 뒤에야 맛과 향이 산다. 한 시간쯤 걸려 만들어 둔 양파수프*, 샐러드, 스파게티를 순서대로 냈다. 포도주는 스파게티와 함께. 


“이 양파수프는 프랑스식이죠? 전에 프랑스 식당에서 먹어 본 건데, 그때보다 더 맛있어요. 이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맛있다고 하던데.”

“음식이 다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좋은 재료와 정성스러운 시간이 맛을 만들어 내는 거죠.”

스파게티를 조금 먹은 뒤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뒤끝이 조금 매웠고 가볍게 톡 쏘는 느낌, 그러면서도 부드러웠다. 나는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진다. 오래지 않아 다시 원래 색으로 돌아오지만. 

“세상에, 얼굴이 너무 빨개요. 술을 잘 못하시나 봐요.”

“예, 그렇기도 하고 마실 기회도 없으니 익숙해지질 않아요. 이럴 때마다 저도 궁금해요. 이십 대에는 어떻게 술을 많이 마실 수 있었는지.”

“그때는 얼마나 마셨는데요?”

“군대 생활할 때였어요. 토요일에 가끔 외출하면 소주를 두세 병 마셨죠. 그 다음날도 아침부터 마셨고요. 다시 부대로 돌아갈 때쯤이면 온 몸에서 술이 찰랑거리는 느낌이었어요. 구름 위로 걷는 것 같았죠.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요.”

“장교였어요?”

“아닙니다. 사병이었지만 테니스 코치였어요. 고위 장교들을 가르쳤죠.”

“예에? 테니스 코치요?”

“ㅎㅎ 보기와 다르죠? 이 몸으로 어떻게 테니스 코치를 했을까? 지금 그런 말이죠?”

“운동선수 몸매는 아니시잖아요.”

“다들 그래요. 그럴 때마다 굳이 설명을 해요. 허리 이십칠 인치에 몸무게 육십 킬로였던 아름다운 몸매를 망친 것은 일 때문이었다고요. 책을 읽고 만들고, 쓴다고 너무 오래 의자에 앉아 있었던 거죠. 삼십 대에는 앉은 채로 며칠씩 지내기도 했어요. 이십 년을 그렇게 살았죠.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낯선 사람이 있더라고요.”

“ㅎㅎ 과장이 심하셔요. 잠도 안 자고 어떻게 그러셨어요?”

“앉아서 잤죠.”

“힘들었겠어요.”

“그랬죠. 제가 좋아하는 일이어서 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행운아인 셈이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잖아요.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포도주가 아주 맛있었다. 한 잔을 더 따라서 한 모금 넘기고 말했다.

“파티마는요?”

“저도 싫어하는 일을 한 건 아닌데 이런저런 이유로 경력이 단절되었고, 지금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랍니다.”

우리는 지나온 삶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를 조금 더 잘 알게 된 것 같았다. 

“저는 아직도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에요. 소설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작가님은 소설을 잘 안 읽으실 것 같아요.”

“잘 아시네요. 젊을 때는 많이 읽었죠. 인문학 세계에 들어서고 나서는 자주 읽게 되지는 않았어요.”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시구로 작품은 보셨겠지요?”

“아 예. ≪나를 보내지 마≫는 앞부분 오십 쪽 정도 읽었을 거예요. 언젠가 다 읽게 되겠죠. ≪남아 있는 나날≫은 영화부터 보려고 해요.”

“저는 소설을 읽었어요. 영화는 언제 기회가 되면 봐야지 했고요.”

“아, 그럼 지금 같이 볼래요? 파일은 받아놓았는데 이상하게 보게 되질 않더라고요.”

“그러죠 뭐.”


파티마는 일어나면서 식탁을 치우려고 했다. 

“그대로 두세요. 나중에 파티마가 가고 나면 내가 정리할게요. 그게 좋아요. 내 부엌이니까요.”

파티마는 리클라이너에 가서 앉았다. 나는 등에 댈 쿠션과 무릎담요를 가져다주었고. 카페라테를 두 잔 만들고 거실의 불을 껐다. 커튼도 다 내리고. 나는 조금 떨어진 소파에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달링턴의 저택에서 열린 국제회의 마지막 날 많은 인사들의 숙식을 책임지고 있는 집사 스티븐스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메시지다. 그 소식을 듣고도 스티븐스는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일을 마치고서야 가겠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전한 하녀장 캔튼은 집사 대신 아버지의 눈을 감겨드리겠다고 한다. 


이 장면에는 여러 겹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어긋남, 전통적인 습관에 대한 맹신이 사회적인 실패로 이어지고(달링턴 경),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도 어긋나게 만든다. 영국의 전통이 패배하고 현대의 미국이 승리할 것을 예고한다. 해묵은 관습에 대한 순진한 믿음의 허망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 같은 삶을 이어가는 테크노크라트들을 보면 이 영화는 단단하기 그지없는 제도의 강고함을 보여준다. 다 그랬던 것은 아니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셀리만 해도 제도를 벗어던지고 사랑을 선택하고 세상과 대결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시구로도 어디엔가 그런 균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긴 한다.


아마 그 장면쯤이었을 것이다. 파티마가 잠이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침실에 가서 큰 담요를 가져와 덮어주었다. 찬바람이 들어오는 창문도 모두 닫았고.      


스티븐스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떠나보내야 했던 캔튼을 다시 만나지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어긋나 버렸음’을 깨닫고 다시 집사로 돌아간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행복한가, 나를 원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행복한가, 가난이 두렵더라도 사랑만 믿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으로 가득 찬 영화였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파티마를 보았다. 잘 자고 있는지.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있었다.


“언제 깼어요?”

“스티븐스와 캔튼이 레스토랑에서 재회하는 장면에서요.”

“저는 이런 영화를 보는 게 힘들어요.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집사가 너무 답답하죠.”

파티마는 내 말을 너무 잘 알아듣는다. 

“저런 집사를 사랑한 캔튼도 만만치 않아요.”

“사랑이 뭐 마음대로 되나요.”

“하긴 그렇죠. 상황이 어떻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사랑이 아니겠죠.”


불을 켰다. 텔레비전을 끄고. 시간은 열한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영화가 무척 길었구나. 파티마는 떠날 준비를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잘 먹고 잘 자고 갑니다. 다음에 뵈면 영화 감상을 들려주세요. 저는 보면서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이 세상 모든 소설의 주제는 슬픈 사랑이구나. 다시 한번 더 깨달았어요. 내가 캔튼이라면 스티븐스에게 어떻게 했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파티마는 탔고. 그럼, 안녕히.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대화가 끝났다. 


창밖을 보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금 열린 창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파티마는 전에 이 영화를 보았던 것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보기를 바랐던 것이고. 내 지난날도 남들이 보기에는 답답하기 그지없었을지 모른다. 당신에게도 남아 있는 나날이 많아요. 그걸 잊지 마세요.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비가 그치면 봄이겠구나. 연두색 싹이 나고 꽃도 피겠지. 마음은 들뜰 것이고. 


**양파수프 만들기

기름을 두른 다음 양파를 넣고, 소금을 조금 치고 센불로 10분 정도 볶는다. 양파가 가지고 있던 수분을 날리는 것이다. 양파의 숨이 죽어갈 때쯤 불을 낮춘다. 기름이 모자라 태우는 것보다는 조금 튀겨지는 게 맛있다. 풍미도 좋고. 양파가 타지 않도록 기름을 조금씩 넣었다. 이제 다시 적어도 15분 정도 약불로 볶는다. 20분이 될 수도 있다. 양파가 캐러멜 색으로 변할 때까지. 다 되면 잼 같은 질감이 난다. 맛을 보면 깊은 단맛이 느껴질 것이고. 여기까지가 핵심이다. 


거기에 화이트 와인을 반 컵 정도 넣고 끓이다가 다 졸아들면 마늘을 두세 개쯤 넣는다. 나는 늘 마늘 편을 쓴다.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만 넣거나, 넣지 않아도 상관없고. 꼭 화이트 와인일 필요도 없다. 소주나 청주, 다 괜찮다. 그런 다음 조금 더 볶다가. 발사믹 식초가 있으면 세 스푼 정도 넣고, 설탕과 파슬리가루 조금, 밀가루도 조금 넣는다. 밀가루는 좀 되직해지라고. 


거기에 물을 조금 넉넉히 붓고 끓인다. 맹물도 괜찮지만 소고기 국물이 있으면 최고다. 육수가 없다면 비프스톡이나 야채 스톡을 넣어도 좋다. 대신 간을 하지 않아야 한다. 스톡은 다 좀 짜니까. 나는 표고버섯 육수를 넣었다. 며칠 전에 만들어둔 것이었다. 그걸 붓고 다시 20분쯤 끓였다. 이걸로 끝이다. 

낼 때는 프라이팬에 바싹 구운 빵 한 조각을 올리고 그 위에 치즈를 잔뜩 뿌린 다음 전자레인지에 일 분 정도 데운다. 꺼내서 후추를 조금 뿌려서 낸다. 

작가의 이전글 아름답고 메스꺼운 스파게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