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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Sep 28. 2019

아름답고 메스꺼운 스파게티

-스핀오프 23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스파게티를 한 입 먹는데 메스꺼웠다. 퍼뜩 오이피클을 꺼내 하나 씹었다.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지만 토할 것 같은 느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야 가라앉을까? 게이샤 콜드 브루가 떠올랐다. 워낙 깨끗한 맛이라.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서 조금 마셨다. 눈을 감고 잠깐 느껴 보았다.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스파게티를 입에 넣고 씹어 보았다. 아직도 좀 메스껍다. 두려웠다. 이유가 뭘까? 되짚어 보자. 잠을 깬 뒤 식탁에 앉을 때까지.


잠을 깨고 누운 채로 페북을 좀 보았다. 뉴스를 보기 위해서다. 절망적인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희망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조금씩 밝아지면서. 포스팅 몇 개를 공유하고 고혈압 약을 챙겼다. 바로 옆에 영양제가 있기에 그것도 하나. 한 움큼의 약도 한 모금의 물로도 잘 삼킨다. 몇 알 정도는 물 없이도. 작은 알약 겨우 세 개를 못 삼켜서 몇 번씩이나 물을 들이켰다. 뭐가 문제지? 순간 머릿속이 헝클어진다. 이건 옳지 않아.

 

서재에 가서 앉자마자 일어섰다. 속이 쓰렸다. 약을 먹어서 그런가? 어제 저녁 식사를 너무 일찍 했기 때문일까? 뭘 좀 챙겨 먹지 뭐. 냉장고 문을 열고 들여다보면서 잠깐 메뉴를 생각했다. 알리오올리오를 만들자. 올리브 오일이 소화가 잘되고 속도 편하니까.

 

소금을 적당히 넣은 물을 안치고 통마늘을 하나 깠다. 물이 끓을 때 타르투포 에스티보를 넣었다. 송로버섯 향이 강하고 넓적하면서도 조금은 두꺼운 파스타이다. 씹는 맛이 좋다. 고소하기도 하고. 쿠킹타임은 얼마? 한참 찾았다. 작은 글자로 바코드 위에 쓰여 있었다. 구 분. 그러면 칠 분만 삶아야 한다. 삶은 파스타를 올리브 오일로 비벼두었다.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종잇장처럼 얇게 썬 마늘을 넣고 약불로 익혔다. 거기에 페페론치노를 여섯 개쯤 부셔 넣었다. 좀 많은 것 같은데...... 너무 맵지 않을까, 조금은 걱정하면서. 마늘 색깔이 변하기 직전쯤에 파스타를 넣고 볶았다. 면수도 조금 넣고. 프라이팬을 심하게 까불어가며 뒤섞으며 볶았다. 요즘 사람들이 쉐낏, 쉐낏이라는 그 동작. 그래야 물과 기름이 섞인다. 따로 놀지 않고.


다 만든 알리오올리오를 큰 접시에 담고 플랫 파슬리(이탈리안 파슬리) 잎을 몇 개 따서 올리고, 그 위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갈아 뿌렸다. 식탁에 놓은 뒤 잠깐 동안 먹지 않고 보기만 했다. 무심코 담아낸 것인데 아름다웠다.


하얀 접시에 아이보리 색깔의 넓적한 파스타가 만들어내는 곡선도 아름다웠지만, 그것을 배경으로 피어오른 연두색 이파리가 몇 개가 아주 잘 어울렸다. 그 위로 하얀 치즈 가루가 안개꽃처럼 흩뿌려져 있다.


아름다운 균형을 깨뜨릴까 조심하면서 파스타 한 줄을 포크에 감아내었다. 입에 넣고 맛을 보았다. 접시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먹는데 속이 뒤집힌다. 조금 놀라며 억눌렀다. 오이 피클을 씹었고, 시골 빵 깡빠뉴를 얇게 썰어 한 조각을 떼어먹었고, 게이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조금 지나니 진정이 되긴 했다. 심해지지 않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기도 하고. 전화기가 켜졌다. 무음으로 해놓기 때문에 빛으로 말한다. 파티마였다.

잘 지내셔요?

예, 파티마도 잘?

예. 그냥 생각이 나서요. 요즘 작가님이 쓰신 책들을 찾아 읽어보고 있어요.

아, 그랬군요. 어떤 걸 보셨어요?

어제는 법의학에 대해 쓰신 것이었어요.

재미있었어요?

예, 아주 재미있었어요.

다행이군요.

다시 좀 메스꺼웠다. 뭘 한 잔 마셔야 하나...... 술을 많이 마신 날 꿀물을 타 마셨던 기억이 났다. 뜨거운 물을 한 잔 만들고 꿀을 조금 타서 저었다.

작가님, 바쁘셔요?

아, 아니에요. 미안해요. 아침에 이상하게 좀 메스꺼워서 꿀물을 마시면 나을까 싶어서 잠깐 왔다 갔다 했어요.

자주 그런 일이 있으셔요?

아뇨. 생전 처음이에요. 어젯밤에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잠을 잘 못 잔 것도 아니고.

그러면 왜 그러실까......? 식재료는 좋은 걸 쓰실 테고...... 평소와 다른 게 뭐 없었나요?

글쎄요...... 그다지...... 보통 때처럼 혈압약을 먹었고, 종합영양제가 눈에 띄기에 한 알 먹었고.

빈속에요?

예.

그러면 아마 영양제 때문일 거예요. 저도 빈속에 영양제를 먹으면 무척 메스껍더라고요.

아, 그래요? 그러고 보니 식전에 영양제를 먹었던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해요. 그게 이유라면 차분히 가라앉히면 되겠군요.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인지 더 빨리 가라앉는 것 같았고.

고마워요. 알려줘서.

고맙긴요. 타이밍이 잘 맞은 거죠. 저도 이제 나서야 해요. 건강하게 잘 지내셔요.

예, 파티마도요.


파티마는 뭐랄까, 조금은 싱겁다. 싱거워서 편하다. 그냥 책을 읽다가 내 생각이 났고, 잘 지내는지 물어보고는 잘 지내라고 인사하고 사라진다. 그게 전부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누군가가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싱거운 음식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싱겁게 먹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맛난 간장도 조금, 매운 고추도 조금 부셔 넣기 시작했다. 오늘 만든 알리오올리오는 고추가 과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매웠고. 다행히 메스꺼웠다. 매울 필요가 있어야 했던 것처럼.


타이밍... 그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이 떠올랐다. 우연은 필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일어난 일은 모두가 필연이다. 우연한 일들이 필연적으로 생겨난다. 멈추지 않고. 싱거운 것은 조금 더 짜고 조금 더 달고 조금 더 매운 방향으로 운동해 갈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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