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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Nov 09. 2019

두 달

스핀오프 28

대학병원에 전화해서 예약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전화하기 싫었을 뿐이다. 아들과 아들 애인이 다녀간 다음날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등록된 전화번호를 찾았다. 아내가 다녔던 암병원이다. 어디가 아픈지 물어왔다. 

“목에 큰 혹이 있어요.”

그러고는 동네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가 있고 의뢰서를 가지고 있다고 알렸다. 그게 있어야 한다니까. 

“암센터로 돌려드리겠습니다.” 

다시 설명했다. 

“목에 큰 혹이 있어요.”

“담당 의사는 김철수가 좋으시겠어요? 이영희가 좋으시겠어요?”

잠깐 당황했다. 누가 누군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지 않았다. 검산데 뭐 아무려면 어떠랴. 

“날짜에 맞춰 되는 대로 할게요.”

“검사일정을 잡아드리겠습니다.” 

두 달쯤 뒤의 날짜를 말했다.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물었다. 

“그게 가장 빨리 잡을 수 있는 날인가요?”

그렇단다. 조금 혼란스러우면서도 안심이 되기도 했다. 별 일 아니라는 건가? 병원에서 그래도 괜찮다는 거잖아. 그냥 예약했다. 


전화를 끊고 쌀을 씻었다. 찹쌀이 다 떨어져 가네. 주문해야지. 봉투를 찾았다. 강대인 생명의 쌀을 주문했다. 한국 유기농 쌀농사의 개척자였던 강대인의 쌀은 맛도 아주 좋다. 그러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커다란 혹에 대한 생각이 떠난 건 아니었다. 쌀을 씻고 물을 맞추고 소금을 조금 친 다음 들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강황가루를 삼분의 일 티스푼 넣은 다음 휘저었다. 아마도 한참 동안. 필요 이상으로. 전기밥솥 뚜껑을 닫고 찰진 밥 단추를 누르면서 마음을 정했다. 


의사인 제자님에게 전화를 했다. 전공을 다르지만 제대로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겠지.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상태를 보여 달라기에 끊고 다시 페이스톡으로 연결해서 목을 보여주었다. 

“크긴 하네요.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암이 아닐 수도 있고, 암이라고 해도 대개는 수술하면 예후가 좋습니다. 갑상선 암은 거의 전이되지 않거든요.”

“그런데 검사예약을 하니까 두 달 뒤에나 가능하다네요. 그때까지 손 놓고 있어도 괜찮을까요?”

“하루 빨리 하고 싶으시면 제 친구가 있는 대학병원에 소개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나도 특별대우를 받는다거나 새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제 생각에도 꼭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애정이 깊은 제자님의 말이니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조언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른 방법도 있긴 했다. 오래된 인문학 강독 모임에서 눈썰미 좋은 제자님 한 분이 내 목의 혹을 알아보았다. 

“언제 생긴 거예요?”

“잘 모르겠어요.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동네 의사가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데 두 달 뒤에 검사 날짜가 잡혔어요.”

“그 병원은 늘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선생님, 내일이라도 당장 검사받고 싶으시면 아침 일찍부터 그냥 병원에 가셔요.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기다리면 됩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날 검사할 수 있더라고요. 예약이 꽉 차 있어도 안 오는 사람도 있고 병원 스케줄대로 안 되기도 하거든요.”

“아, 그런 방법이 있군요.”

아주 좋은 정보였다. 마음이 편해졌다. 두 달 뒤에 검사받는다고 해도 별일이 아니고 원하기만 하면 아무 때나 검사받을 수 있다니까.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된다.      


이틀쯤 지났을 것이다. 부산에 있는 친구와 통화할 일이 있었다. 별일 없느냐는 말에 별일 아닌 듯이 목의 혹 때문에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그도 가볍게 받았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한 시간쯤 지나서 다시 전화가 왔다. 고등학교 동기 가운데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있으니 통화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 친구 하고도 페이스톡을 했다. 제자님과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 정말 마음 편하게 두 달 뒤의 검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날 밤 내 책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일 책이 입고됩니다. 저자 기증본은 집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홍보는 이번 주 언론 반응을 보고 구체적으로 짜 보려고 합니다.”

나는 <독자와의 만남>이 두려웠다. 눈물이 앞을 가려 퇴고도 못 했는데, 오프라인에서 독자를 만나 울기만 하면 어떡하나. 그런 마음을 전달했다. 담당자는 이해한다고 했다. 


주말이 지나자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언론에서 책을 크게 다뤄 주었고,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다. 신간 홍보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만 역사적인 장면이 겹치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예를 들면 <시사인>과 인터뷰를 했고 기사가 크게 나갔지만 그 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만남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라디오 방송 인터뷰가 있었던 날 역시 온 국민들의 관심은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에 쏠려 있었다. 나도 그 뉴스에 열광하면서 바쁘게 인터뷰를 다녔다(그때마다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유가 앞쪽인지 뒤쪽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마음 내키는 날 검사받겠다고 병원에 가서 떼쓰지도 않았고. 운명이다. 조금 거창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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