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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Nov 07. 2019

아들 애인과 만찬

스핀오프 27

아들이 애인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조금 들떠 있었다. 전에도 아들 애인과 저녁을 함께한 적이 있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달랐다. 시작하자마자 알려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아들은 좋은 일이 생기면 금방 알려주곤 했다. 그 소식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들은 잘 안다.

“연애 시작했어요.”

“축하한다. 이번에는 좀 다른 느낌인데?”

“그런 것 같아. 조만간 소개할게요.”

그러더니 금방 날을 잡은 것이다.

“게장하고 게우젓이 내일쯤 도착할 거예요. 제주도 특산물인데 우도에서 사서 보낸 거래요.”

아들 애인이 가끔 선물을 주긴 했지만 얼굴도 보기 전에 무엇인가 받기는 처음이었다.

“세상에, 고맙다고 전해라.”     


토요일 저녁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메뉴는 봉골레였다. 이상하게도 집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봉골레를 주문한다. 아, 아니구나. 파티마와 데이지는 까르보나라와 푸타네스카였다. 잠깐 파티마와 데이지 생각을 했다.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 페북을 열어 보았다. 여전히 낯설었다. 나는 사람을 사귀는데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몇 번 만난 사람이라 해도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자주 곤혹스럽다.   

   

한번은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조용히 앉아서 기다렸다. 십오 분쯤 뒤에 그이가 나타나 인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면서 그이가 말했다.


자기는 약속 장소에 오 분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 분쯤 지나서 내가 나타났다. 주변을 스윽 둘러보더니 그냥 빈자리에 앉아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못 본 것일까, 못 알아보는 것일까? 자존심도 상하고 기가 차더라고 했다. 그냥 일어나 가버릴까 하다가 조금 기다려 보았다. 오 분쯤 뒤에 내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그제야 못 알아본다는 것을 깨달았고 먼저 인사를 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면서 화를 냈다.

미안했다. 또 그랬구나. 나에게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남자든 여자든 몇 번 만나 길게 이야기를 나눈 뒤에도 못 알아보는 일이 잦다. 내가 그렇다는 것을 열심히 설명했다.

“저는 상대가 누구든 대화 내용에만 집중해요. 얼굴을 보아도 대화 내용과 관련된 표정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몇 번 만난 사람이라고 해도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곤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모두를 기억 못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겠죠...... 저는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깊어져야...... 우정이든 애정이든 생겨야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그 사람을 잘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도 괴롭답니다. 사람을 사귀는 게 어렵기도 하고 세월도 많이 필요하거든요. 그 전에는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욕을 먹기도 해요.”

“그런 분이 두 시간 세 시간씩 강의를 잘도 하셔요.”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도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는 내가 그렇다는 걸 잘 몰랐다. 여러 번 겪은 뒤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고 나서는 얼굴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페북은 크게 도움이 된다. 거기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그날은 페북에서 굳이 얼굴을 찾아보지 않았다. 나도 보면 알겠지, 했던 것이다.

 

봉골레는 좋은 조개만 있으면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아들과 애인이 오기로 한 날에 맞추어서 칼조개와 백합조개 큰 것를 충분히 주문해 두었다. 뭔가 하나 더 맛있는 걸 해주고 싶었다. 양파 수프가 적당하겠어. 두 시간쯤은 걸려야 만들 수 있는 것이어서 다른 곳에서는 먹어보기 힘들 것이다. 물론 칼조개나 백합조개 큰 것으로 봉골레 스파게티를 해 주는 곳도 없지만. 양파 수프를 만들고(레시피는 앞에 있어요. ^^) 그 위에 올릴 빵을 굽고, 치즈를 갈아 덮어 두었다. 내놓기 전에 오븐에서 데워주면 된다. 그러고도 아이들이 올 시간이 세 시간은 남아 있었다.


갈 때 싸줄 걸 만들어 두자. 오이와 파프리카를 넣어 피클을 만들었다. 오이 세 개와 빨간 파프리카, 노란 파프리카, 무를 썰었다. 적당한 크기로. 이것들을 큰 냄비에 넣고 감식초와 설탕, 물을 일대 일대 일로 섞어 넣고 불을 켰다. 그 옆 불에는 물을 안치고 유리병을 거꾸로 세웠다. 이렇게 소독한 유리병에 피클을 넣으면 일 년도 괜찮다고 한다. 대개 며칠 안에 다 먹어 치우겠지만. ^^ 피클은 물이 끓기 전에 꺼야 한다. 불 옆에서 기다렸다. 책을 읽으며.

 

다 만들어서 병에 넣고 보니 좀 빈약해 보였다. 한 가지만 더 만들어 두자. 시간도 충분한데. 땅콩조림을 만들었다. 고소한 국산 땅콩으로 만든 땅콩조림도 밖에서 먹기는 쉽지 않을 테니. 물에 넣고 이십 분을 끓여내고 다진 마늘과 설탕, 간장으로 조린 다음 조청으로 빛나게 했다.

맛을 보았다. 둘 다 특별히 맛있다. ^^ 담아 두고 나니 피로했다. 부엌에서 다섯 시간쯤 음식을 만들었나 보다. 칼조개를 씻어두고 침실로 갔다.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들었다.

깊이 잠들었던 모양이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 벌떡 일어나 뛰어나갔다. 아드님은 예의를 차리신다. 독립한 뒤에는 늘 와도 되냐고 묻고 온다. 오더라도 직접 대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다. 비밀번호를 알고 있을 텐데도.


아들은 안아주었고, 아들 애인에게는 웃으며 말했다. 어서 와요. 반가워요. 스파게티 삶을 물을 올리고 양파수프를 내어 놓았다. 둘은 맛을 보더니 탄성을 냈다.

“와~ 맛있어요. 이게 뭐예요?”

아들 애인은 밝았다. 얼굴에서는 그림자를 볼 수 없었고. 내 마음이 다 개일 정도로.

“양파 수프.”

“아, 이게 그 유명한 어니언 수프구나.”

“그래 참 이상하지. 양파 수프보다 어니언 수프가 더 고급스러운 것 같네?”

“파리지엔 스타일 어니언 수프!”


피클과 함께 봉골레 스파게티를 내놓았다. 커다란 조개를 많이 올렸더니 스파게티 면이 아주 적어 보였다. 아이들은 피클도 맛있다며 잘 먹었다. 세 번은 다시 채워왔을 것이다. 함께 저녁 먹는 시간이 참 즐겁고 행복했다. 아들과 그동안의 영화나 문화적인 사건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신기해요. 아버지와 이런 주제로 대화할 수 있다니.”

아들 애인이 말했다.

“전에 말했잖아요, 아빠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고.”

이건 아들의 말. ^^


역시 조금 많이 만들길 잘했다. 내가 먹는 양하고 다를 거라고 짐작했다. 봉골레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릇을 치우려 하기에 내가 말렸다. 내 부엌이야.

게이샤 콜드 브루가 조금 남아 있어서 카페라테를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맛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제 너희들 이야기해 줘.”

하이볼을 만들어 주면서 말했다. 아들의 애인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들과 만나게 된 과정에 대해. 밝고 거침없는 성격이 무척 맘에 들었다. 참 많이 웃었다. 그러면서 다시 떠올랐다. 낯설어.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할 수 있다니. 아이들에게도 말했다.

“아빠는 오늘 너무 좋은데 이 순간들이 너무 낯설어.”     


열한 시쯤 되어서 아이들은 일어섰다. 아침 일찍 일이 있다고 했다. 나는 만들어둔 반찬을 작은 쇼핑백에 들려주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아들 애인이 말했다.

“아버님, 제가 가본 곳 가운데 최고의 맛집이었어요.”

“그래, 맛있게 먹어 주어서 고맙다. 생각나면 언제든 와라. ^^”

아들은 흐뭇한 얼굴이었다.

“잘 가라. 다음 볼 때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도록 하고. ^^”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지난밤부터 고민했던 이야기.

‘아빠 병원에 가서 검사해 봐야 할 것 같아.’

별일 아닌 것처럼 그냥 가볍게 하자. 그랬던 것인데 못했다. 너무 행복했던 모양이다.

‘다음에 해도 되지, 뭐.’

급할 건 없다. 암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고, 암이라고 해도 하루가 급한 건 아니다. 그보다는 아이들이 떠나자마자 보고 싶었다. 아들과 아들 애인이 함께 활짝 웃는 사진을 한 장 찍어둘 걸.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아들 애인의 얼굴은 기억나질 않았다. 다음에 보고서도 못 알아보면 어쩌나. 둘이 함께 찍은 사진 하나 보내 달래야겠다. 집에 들어와서는 부엌부터 정리했다. 그러고 톡한다는 걸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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