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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Oct 30. 2019

큰 혹이 만져지다

-스핀오프 26

오후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 먹었다. 단지 마늘과 페페론치노를 넣고 올리브 오일로 볶은 것이라 소화가 잘 된다. 까르보나라를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염장 베이컨과 달걀이 들어가는 것이라 밤에 먹기에 조금 부담스럽다. 더욱이 어제부터 위염 증상이 시작되었다. 희한하게도 봄이면 꼭 한 번 거친다.


내일은 병원에 가서 약을 좀 지어 달래야지. 아내가 호스피스 병동에 있을 때 알게 되었다. 소화장애가 위염 증상이라는 것. ‘지금 상황에서라면 소화가 잘 되는 게 이상한 일이죠.’ 위로하듯 말하는 의사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의사가 이어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약을 좀 지어드릴 테니. 드시면 괜찮을 겁니다.’ 의사가 지어주는 약을 먹는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그제야 깨달았다. 그 약을 먹고 속이 편해서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겨우 세 시간 강의를 했을 뿐인데...... 전에는 하루 여섯 시간을 사흘 동안 한 적도 있다. 그러고도 집에 돌아와 아내를 돌보았고 음식을 만들었고 밤늦게 잠이 들었다. 무척 피곤했다. 일주일 내내 이어진 강의 때문일 것이다. 부엌을 대충 치우고 텔레비전을 잠깐 켰다.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던가? 그럴 수는 없으니까. 리클라이너에 앉아 보다가 졸다가. 침대에 누우면서 보니 여덟 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다.

 

꿈을 꾸었다. 아내와 아들을 보았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슬펐다. 시계를 보니 겨우 네시다. 일찍 자면 일찍 깬다. 깨면 욕실을 거쳐 부엌에 간다. 지난밤에 못한 설거지를 하고 밑반찬을 조금 만들었다. 오이피클과 소고기 장조림을 만들었다. 아들과 아들 친구에게 주려고. 아들 친구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다.


아침 일찍 다니던 내과에 갔다. 의사에게 소화가 안 된다고 설명했더니 배를 좀 눌러보다가 위염 약을 일주일치 지어주었다. 일어서려는데 의사가 잡았다.

“잠깐만요.”  

다시 앉으니 내 목에 만지면서 묻는다.  

“이거 언제부터 생긴 건가요?”     

“뭐가요?”

나도 만져보았다. 꽤 큰 혹이다. 왜 몰랐을까?

“통증이 없으면 모를 수도 있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면서 잠깐 누워보라고 했다.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추는 게 느껴졌다. 간단한 초음파 검사라고 했다.

“혹이 꽤 큽니다. 소견서를 써 드릴 테니 대학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셔야겠어요.”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도 암인가?

“조직검사를 해 보아야 정확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어요. 어쨌든 소견서를 가지고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대학병원에 가보셔야 해요. 제가 여기서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암일 수도 있나요?”  

의사가 빠뜨린 말을 내가 챙겼다.

“예.”  


처방전과 소견서를 받아 들고 병원을 나섰다. 약국에서 위염 약을 받아 들고 일어서는데 조금 어지러웠다. 아내가 암 치료를 받고 결국 떠나야 했던 그 병원에 다시 가야 한다니. 이제는 내 문제로.


맨 먼저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안 돼. 엄마를 암으로 보낸 지 얼마나 지났다고...... 아직은 아들에게 말하면 안 돼. 마음 추스르기가 힘들 거야. 암이 아닐 수도 있는데 괜한 걱정을 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아닐지도 몰라. 물론 모르지만. 설사 암이라고 해도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은 감당해야지. 다시 아들을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아.


병원 풍경이 떠올랐다. 검사받는 아내 곁을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챙겨주던 장면들. 그때는 그래야 했다. 나는 혼자 가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날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대학병원에 전화하는 것도. 아무 결정도 못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들을 만나지도 못했고, 만들어둔 반찬도 전해주지 못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그냥 몸이 좀 안 좋아. 다음에 보자.”

약속은 모두 취소했고 톡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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