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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Jan 01. 2020

톡소플라즈마

-스핀오프 35

파티마에게서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뜻밖에 대나무숲에게서 톡이 왔다. 전해드릴 게 있는데, 혹시 저녁 시간이 괜찮으신지요? 토요일이라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죠. 일산 호수공원 카페에서 뵈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고. 찬바람 쐬면서 좀 걷긴 해야 할 것이다.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대나무숲이 연락드릴 거예요.”

“그럴 일이 뭐가 있어요?”

“알 수 없죠.”

언젠가 밑도 끝도 없이 파티마가 한 말이다. 체홉의 말이 떠올랐다. 이야기의 앞부분에서 총이 나왔으면 뒤에서는 발사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거면 앞에서도 총에 대한 묘사는 없어야 한다. 스티븐 킹은 거꾸로 말했다. 이야기의 뒷부분에서 총을 쏠 거면 앞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파티마는 그때 총을 보여준 것이었고, 언젠가 발사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불안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그동안 파티마가 내게 해 준 말들을 곰곰 되새겨 보았다. 그래도 파티마의 결론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알 수 없죠.’ 나중에 소식을 듣게 될 테니 더 생각지 말자. 그렇다고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집안 청소를 해도, 식물들에게 물을 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바둑을 두면 나을까 했지만 집중하지 못하니 초반에 돌을 던져야 했다. 대세도 실리도 생각하지 못했다. 좀 나을까 해서 오늘치 약을 먹어 보았다. 혈압을 낮추는 약이니까. 어쨌든 먹어야 하니까. 당연히 소용없었다. 독서가 구해주었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텍스트의 세계에 몰입해 들어갔다. 알람까지 맞춰두고.

     

“교통사고가 났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아주 비싸고 좋은 오토바이였지만 속도를 너무 높였다고 해요. 오토바이는 다시 쓸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답니다. 조금 높은 데서 떨어졌거든요.”

내 가슴도 펄쩍 뛰어올랐다가 떨어져 내렸다. 중장비가 쿵쾅거리는 소리가 났다.

“많이 다쳤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다리가 부러져 이어붙이고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목발 없이 걸어 다닐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얼굴은 상처가 낫고 나면 성형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예요. 아마도 여러 번. 다른 곳은 거의 다 나아가고 있어요.”

이쯤에서 몸은 굳어지고 눈은 초점을 잃었을 것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날 아들이 그랬다. 아빠, 정신 차려. 응, 아빠는 괜찮아. 입만 움직였던 모양이다. 아들은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제야 깨어났다.  

“꽤 오랜 세월이 필요하겠군요.”

“일 년이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어느 병원인지 가르쳐주지 않을 거죠?”

“가셔도 만나지 못할 거예요.”

“돌봐 줄 사람이나 병원비 문제나 그런 건 없나요?”

대나무숲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예. 더 궁금한 건 없으시죠?”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물어볼까 말까 망설여졌다.

“물어보셔요.”

“혹시 파티마가 고양이를 키웠나요?”

“예, 두 마리가 있었어요. 스코티쉬 폴더.”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예상대로 대나무숲은 좀 뜬금없다는 얼굴이었다.

“파티마가 한 가지만 물어보고 오랬어요.”

“제가 왜 선생님께 이 소식을 전할까요?”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전해드릴까요?”

“모르겠어요.”


대나무숲은 떠났다. 나는 그저 얼어붙은 듯 앉아 있었다. 파티마의 여러 가지 얼굴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더 있다가 일어났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다. 그냥 걸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가구점 거리였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습관대로 손발을 씻고 양치질을 한 다음 침대에 누웠다. 옷은 그대로 입은 채. 불안에 떨었던 하루가 힘들었던 것일까. 살짝 잠이 들었다. 일어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참, 여태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 배가 고픈가? 조금 고픈 것 같기도 하다. 조금은 먹자. 김치찌개를 만들려고 했다. 다 만든 다음 맛을 보면서 뭘 넣었더라 되새겨 보았다. 물을 너무 많이 부었다. 싱겁다는 생각에 양조간장과 굴소스를 넣은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양파도 하나를 썰어 넣고. 마늘 잔뜩, 돼지고기 잔뜩...... 손에 잡히는 대로 버섯도...... 김치를 볶을 때 올리브 오일을 부었다. 삶은 당면에는 참기름을 부었고. 엠에스지도 넣었다. 이거 원 도무지 뭘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는 꼴라주 아닌가. 밥통을 열어보니 밥이 없었다. 바로 그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런, 밥통! 그 카페 주차장에 내 차를 두고 왔다. 옷을 갈아입고 그 카페로 갔다.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돌아오는 길에 초록마을에서 햇반을 샀다. 이렇게 맛이 없을 수가 있구나. 두어 숟갈 뜨다 말고 다시 집을 나섰다. 다시 가슴이 답답해 왔기 때문이다. 한참을 걷는데 오른쪽 다리가 아파왔다. 늘 아팠던 그 통증이었다. 고꾸라져서 한참을 울었다. 참 신기하다. 울고 나면 좀 낫다. 문제가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파악되지도 않고, 그것이 해결된 것도 아니지만.


대나무숲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는 현실적인 욕심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상대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제 삶을 돌아보니까 그랬어요. 그 말을 전해주셔요.

조금 뒤에 대나무숲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럴게요. 그런데 혹시 아까 고양이 키우는지를 왜 물어보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간단하게 답을 썼다.

톡소플라즈마라는 기생생물이 있습니다. 고양이 장에서 살아가는 놈인데요 사람이나 쥐에게 옮기기도 합니다. 쥐에게 들어가면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만든다고 해요. 그래서 잡아먹히게 되는 거죠.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그런 역할을 하나 봅니다. 오토바이 사고가 난 사람들의 경우는 이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된 경우가 아주 많다고 해요. 무모한 모험을 하게 만드는 거죠. 저도 고양이를 오랫동안 키웠습니다. 자동차운전을 험하게 하는 편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그럽니다.


내 인생은 아무래도 영화 같다. 이 영화를 계속 찍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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