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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Jan 10. 2020

무화과깜빠뉴

스핀오프, 빠뜨렸던 이야기 채우기

우리 동네에 유기농 재료로 빵을 만드는 집이 하나 있다. 주변에 많은 빵집이 생겼다가 사라지곤 했지만 여기는 장사가 잘 되었다.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다가다 보면 가장 손님이 많은 빵집은 큰길가에 있는 유명한 프랜차이즈 빵집이다. 그에 비하면 이 가게에 손님이 많은 경우는 없다. 늘 없지는 않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은 무화과깜빠뉴이다. 밤늦게 배가 고프면 아주 얇게 썬 것을 서너 개 먹는다. 아니면 오징어먹물식빵 한 장을 먹거나. 양으로 치면 둘 다 비슷할 것이다. 카모마일 차와 함께. 카페라테를 마시고 싶지만 잠을 잘 자야 하니까.

무화과깜빠뉴 하나를 일주일쯤 먹는다. 그 빵집에도 일주일에 한 번쯤 들렀을 것이다. 요즘은 책과 노트북을 가지고 간다. 아, 물론 처음 이 동네에 이사 왔을 때는 그저 빵 하나를 사서 나오곤 했다. 이 년 정도는 그랬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어느 날부터인가 거기에 앉아서 책을 읽고는 했다. 그래도 일하는 여자분은 내 얼굴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내가 뭘 사는지, 뭘 좋아하는지도 알았다. 대화는 이랬다.

“오늘도 같은 걸 드시는 건가요?”

“예.”

카드를 건네주고 계산이 끝나면 나는 늘 창가에 앉았다. 조금 있으면 빵과 함께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어느 날 갔더니 낯선 사람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대화가 바뀌진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도 같은 걸 드시나요?”

“예.”

늘 앉는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면역에 관하여≫, 놀라운 글솜씨가 돋보이는 백신 이야기다.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깊이와 넓이, 읽는 즐거움까지 만끽할 수 있는 논픽션이다. 빵과 커피를 기다리는데 조금 늦어지는 것 같았다. 카운터 쪽을 보니 아무도 없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조금 뒤 빵과 커피가 나왔다.

“고맙습니다.”

“전해드릴 말씀이 있어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럴 게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을 것이다.

“점장이셨던 언니가 다른 곳으로 가시면서 손님이 오면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어요. 보고 싶으니 옮긴 곳으로 꼭 한 번 들러 달라고요.”

펼쳐 보았더니 간단하게 무슨 동 무슨 카페, 그리고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보고 싶으니까’라는 말이야 언제 들어도 좋지만 그이는 너무 어리다. 그렇잖아도 언젠가 한 번 짚었던 적이 있다.

“내가 몇 살쯤 되어 보이나요?”

금방 웃으며 대답했다.

“오십대 후반요.”

잘 맞추죠? 하는 장난스러운 얼굴이었다.

“그쪽은 몇 살이에요?”

“삼십대 초반요.”

나는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아요. 그렇죠? 그런 메시지를 서로가 잘 이해했다고 믿었다. 내 생각은 이랬다.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하면 삶의 감각, 언어 감각도 너무 다를 것이다. 당연히 즐겁고 행복한 대화가 쉽지 않을 것이고. 연애 상대가 되긴 어렵다. 연애는 섹스가 아니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하는데 언어감각이 너무 다르면 그것도 어려울 것이다. 아주 드물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아주 드물다는 건 말 그대로 아주 드문 일이다. 그 빵집을 나서면서 쪽지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뜻밖의 반응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아들과 오래된 제자님이 비슷한 말을 했다. 우연히 아들과 서로의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 ‘아빠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어’ 하며 말했더니 아들 반응은 이랬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어? 만나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 생각할 건 뭐 있어?’ ‘니 나인데?’ ‘그러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요.’ ‘그런가?’ 오래된 제자님도 같은 반응이었다. ‘일단 한 번 만나보고 결정하셔도 늦지 않잖아요.’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글쎄...... 내가 너무 고리타분한가? 그랬지만 잊었다. 아직 그쪽으로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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