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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Jan 12. 2020

아소산

-스핀오프, 이야기 빈틈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아내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다. 듣자마자 지난날이 떠올랐다.

우리는 정말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지독하게 싸웠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은 깊었다. 인간적으로. ^^ 우리는 인간적으로 사랑했다. 삼십오 년 가운데 이십 년 정도는 부부라기보다는 애인 같았다. 둘이서 아주 로맨틱한 장소에 가면 사람들은 우리를 힐끔거리며 보았다. 쟤네들은 부부일 리가 없어. 뭐 그런 눈빛이었다. 대충 이십 년을 넘기면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런 관계는 깨졌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십오 년 정도는 서로를 인간적으로 사랑했다. 함께하는 시간도 적었고 대화도 없었지만.

물론 마지막 삼 년은 처음 만나 사랑했던 젊은 시절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생명의 불꽃이 꺼지려 할 때쯤 우리는 다시 애인 같았다. 아내는 모르핀 주사를 그렇게 많이 맞고 지내면서도 나를 찾았고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가끔은 나를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반가운 얼굴로 맞이하고는 안아주기를 바랐다. 뼈만 남은 몸으로, 얼굴로. 그러던 어느날 평생 못한 말을 속삭였다. 

“사랑해요. 당신. 그리고 고마워요.” 

아내는 천생 경상도여자였다. 좀 웃기는 이야기지만 경상도 부부의 대화는 좀 이렇다. 남편이 “오늘 당신 예쁘네.” 이런 말을 했다고 하자. 대개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서, 우짜라꼬?” 

그런 아내가 어쩌면 평생 처음으로 조용하고 다소곳하게, 조금은 부끄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 말을 듣고 나는 슬픔과 놀라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내를 잠재우고 방을 나와 거리를 걸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거기에서 영화사 대표와 시나리오 작가를 만났다. 오래전 아내와 함께 특별한 저녁을 함께했던 그 식당에서.

경과 과정을 모르는 독자를 위해 조금 설명하자면 이렇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출간되자마자 많은 영화사에서 연락이 왔다. 영화 판권을 사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한 영화사로 결정되었고 곧바로 시나리오 작성에 들어갔다. 오래지 않아 영화감독과 투자사까지 정해졌다. 투자사 대표도 책의 내용에 깊이 공감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열정적으로 바랐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주연 배우를 톱클래스의 누군가가 하기를 바랐고 섭외를 시작했다. 그것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톱클래스 배우 한 사람이 ‘하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조건 협상은 끝나고, 그 배우는 지금 내 책들을 찾아 읽고 있으며, 아내에 대해서도 깊이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그 배우가 누구인지 알려줄 수는 없다. 영화사의 마케팅 계획에 맞추어 적당한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이번 만남은 시나리오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고 ‘주연배우’의 캐릭터에 적절한 장면 설정을 위해 나와 아내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나는 다시 지난날을 떠올리며 ‘책에는 없는 에피소드’들, 그리고 나와 아내의 내면에 대해 설명했다. 상당히 인문학적인 해석이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나의 내면을 잘 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지난날이니까 거리가 조금 있으니 ‘결과론적으로’ 해석해볼 뿐이다. 당연히 아내의 내면도 마찬가지이고.

사람들에 따라서는 굳이 이런 과정이 왜 필요할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도 아닌데. 궁금증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꺼이 나와 아내의 입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내 역할을 맡게 될 주연 배우가 한국 최고의 연기파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내 역할을 충분히 잘하고 싶어 한다. 다들 잘 알지 않은가. 표면을 만드는 것은 내면이다. 그는 현재 다른 영화 촬영을 위해 외국에서 체류하고 있다. 언젠가 그와 만나서 느낌을 주고받는 과정도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당장은 시나리오를 통해 그런 상황이 아주 잘 설정되기를 바랐다.

아내 이야기를 할 때면 눈물이 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아마 두세 시간쯤 눈물을 글썽이며 이야기를 이어갔을 것이다. 전처럼 통곡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인문학 강의 같았을 것이고. 두 분의 마지막 말도 그랬다. 결국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해 강의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고. 질문과 대답이었으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천생 인문학 작가이고 강사이다. ^^


이야기를 마치고 호수공원으로 갔다. 좀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호수와 숲이 있는 곳에서. 두 시간 정도 걸었다. 세상을 떠난 아내를 생각하며. 가끔 뜬금없이 끼어드는 파티마를 떠올리며. 내내 그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주연배우가 결정되었대. 누군지 알아맞혀 봐.”

“설마, 내가 최고라고 했던 그 배우?”

“응. 그 배우가 하고 싶어 했대.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라는데.”

“와~ 정말 잘 되었어. 아빠도 알지만 나는 한국 톱클래스 배우들 가운데 이병헌과 그 배우가 최고의 연기자라고 생각하거든.”

영화사가 결정된 뒤에 제자님들에게 알린 적이 있다. 내가 아내를 돌보는 삼 년 정도, 말없이 응원해주었던 고마운 제자님들이다. 판권 계약금을 받은 뒤 저녁을 사거나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그때 다들 주연 배우는 누구였으면 좋겠다고들 의견을 내놓았다. 아들의 의견은 아주 달랐다. 그 누구도 들먹이지 않은 배우 이름을 댔다. 그 배우가 주연을 맡게 된 것이다. 아들은 애인과 함께였던 모양이다. 애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님, 최고의 영화가 될 거예요. 축하해요.”    

 

집으로 돌아와서는 부엌일을 시작했다. 밤늦게. 파티마의 사고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이상하게도’ 일상의 의욕이 조금 꺾였다. 당연히 부엌이 맨 먼저 엉망이 되었다. 아마 두 시간쯤은 씻고 닦고 정리했을 것이다. 쓰레기도 분류하고 내다 버리고. 그동안 아내와 파티마가 번갈아가며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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