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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Jan 16. 2020

도대체 뭘 믿고 그러세요?

해수로 삼 년이 지났다. 혼자 살기 시작한 지. 아침에 일어나면 여전히 김유신의 말처럼 애인 집에 가듯 부엌에 들어선다. 먼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켠다. 대개 사람 목소리를 느낄 수 있는 재즈 명곡이다. 나는 보컬이 좋다. 식탁 위에 놓인 ‘아침 약’을 먹고 찬 물을 한 잔 마시고 둘러본다. 잠깐 정리를 하면서 생각한다. 그러고 나면 깨닫는다. 뭘 좀 먹는 게 좋겠어. 아침 약이 위장을 깨운 것이다.

채소를 많이 먹는 편이다. 자주 해 먹는 건 이런 종류다.  

양파를 채 썰어 감식초에 담가 두고, 소고기 다진 것을 조금 꺼내서 전분, 위에 굴소스, 달걀흰자를 다 조금씩 뿌려 뒤섞어 재운다.

이제 피망과 파프리카를 채 썬다. 초록색과 빨간색이기도 하고, 노란색이기도 하다. 초록색 없이 빨간색 노란색 가끔은 주황색만 섞이기도 한다. 아무래도 초록색이 섞이는 게 보기에 좋지만. 팽이버섯도 조금 꺼내놓고.

무쇠 웍을 데우고 기름을 조금 친 다음 다진 마늘 넣고 향을 낸 다음 소고기부터 볶는다. 잘 익었다 싶으면 채소를 때려 넣는다. 쉐낏, 쉐낏. 채소의 뻗치는 기운이 사그라들 때쯤 접시에 부어둔다. 그 위에 식초에 담가 두었던 양파를 섞는다. 식사는 대개 이걸 먹는 것으로 끝난다.

밥은 반 공기쯤 먹을 것이다. 한 공기 먹을 때도 있다. 아, 땅콩조림과 시금치나물도 곁들여서.

그제야 집안 공기가 답답하다는 것을 느낀다. 식사 준비를 했으니 음식 냄새와 불기운도 뒤섞였을 것이고. 환기를 한다. 상쾌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정신이 좀 들었다. 어젯밤에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임이 있었는데, 다들 헤어지기 전에 한 분이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나이가 좀 많으신 분이라 불편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외롭지 않으세요?

대뜸 이렇게 물었다. 속으로는 조금 놀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글쎄요. 그동안에는 거의 그런 느낌이 없었어요. 요즘은 조금 느끼긴 합니다. 모두가 떠난 지 이 년이 넘어가니까. 그런데 그런 걸 왜 물어보셔요?

선생님은 지금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무슨 현실......?

언제까지 그렇게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으세요?

글쎄요. 죽기 전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건강을 잘 관리하면.

언젠가 누군가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면 누가 그렇게 해줄 수 있겠어요? 아드님이?

아뇨, 아이에게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게 뭐 마음먹은 대로 되나요? 아무튼 그렇다 치고, 그러면 어떻게 하실 작정이세요?

글쎄요.

글쎄요, 글쎄요는 그만 좀 하시고요.

아, 미안합니다. 어려운 질문만 하시니까.

그동안 제가 선생님을 보면서 느낀 건데요, 아무래도 이 말을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슨......?

선생님도 이제 나이가 꽤 되셨잖아요. 노년을 함께할 분을 찾을 수 있는 햇수가 얼마나 남은 것 같으세요?

글쎄요.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생각해 보셔야 한다고 제가 말씀드리는 거예요. 기껏해야 이삼 년, 길어야 오 년일 거예요. 그렇잖으면 그 사이에 벼락부자가 되시거나. 그런 현실을 직시하여야 해요.

아, 그런가요. 저에게 남은 시간이 겨우 오 년 정도......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세요?

글쎄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질문만 하시네요.

지금처럼 그렇게 도도하게 구시면 안 돼요. 누가 곁에 와서 관심을 보이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셔야 하고요. 그런데 너무 관심이 없으시잖아요. 그동안 제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래요. 도대체 뭘 믿고 그러시는 거예요?

마지막 말이 가슴에 콱 와서 박혔다.

믿는 건 없는데요.......

그래서 제가 좀 답답해서 작심하고 말씀드려야겠다 싶었던 거예요. 선생님은 지금 적당한 상대이기만 하면 ‘나 외로워’ 하면서 꼬리를 치고 다니셔야 할 판에 꼬리를 치는 상대가 나타나도 무관심하니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세요?

윽! 역시 속으로 내지른 비명이다. 잘못 걸린 듯. 정말 심각하고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이 분의 얼굴을 보는 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냥 그런 건 운명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서요.

선생님 생각이 맞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모든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 미소 짓는다. 그런 말 못 들어 보셨어요?

그건 그렇겠죠.

그러니 한 번 생각해 보셔요. 그런 쪽으로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셔야 해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속으로는 ‘아 씨......’

그 뒤로는 예의를 차리고 마무리하는 말들이었다. 이런 말,

마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헤어지고 나서 혼자 말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거나 토론 비슷하게 될까 봐 참았던 것.

‘잘못짚으신 것 같아요. 제가 아직은 매우 건강하고요, 할 수 있는 것도 많고요, 집안일도 잘하고요, 그런 걸 귀찮아하지도 않아요. 음식도 잘해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요리를 날마다 맛보게 해 줄 수 있어요. 이십 년은 거뜬할 겁니다. 저랑 같이 지내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시겠지만, 보기하고 달리 얼마나 부드럽고 따뜻하고 달콤한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생기면 그 사람 일이 느는 게 아니라 제 일이 느는 거죠. 그래도 맞는 말씀이 하나 있긴 하네요. 저도 그렇게 해주고 싶은 상대를 만나야 일이 늘든 말든 하겠죠. 근데 그런 상대를 만나려면 ‘나 외로워’ 하면서 꼬리를 치고 다녀야 한다고요?’

그 대목에서 웃음이 툭 터졌다.

‘ㅎㅎㅎ 그나저나 꼬리가 도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 거야. 어떻게 해야 그게 튀어나와 흔들리지? 해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마음이 변해서 하고 싶어도 몰라서 못하겠네. 아, 그걸 물어봤어야 하는 거구나.’


운전해 돌아오면서는 연재해야 할 원고와 관련된 참고도서를 들었고, 돌아와서는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여전히 듣던 책을 들으며. 만 보가 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들어와 샤워했다. 카모마일을 베이스로 블랜딩한 ‘나이트 타임’ 차를 마셨고.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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