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대학교수가 쓴 야한 이야기
-80년대 베스트셀러 :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필자는 마광수를 유명하게 만든 베스트셀러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의 1989년 인쇄본을 가지고 있다(2010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당시 출판 편집자였으니 아마 직업적인 이유로 사 보았을 것이다. 마광수는 유명세에 비해 잘 팔리지 않는 작가다. 그런데 유독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내용만 보면 그리 자극적이지도 않고 재미있는 구석도 없다. 게다가 그다지 야하지도 않다. 서브컬처로밖에 보이지 않는 ‘섹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천재적인 대학교수가 고급문화에서 사용하는 형식으로 썼다는 점이 특별하다면 특별하다. 지적 사치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런 특별함을 파격으로 받아들이면서 열광한 것 아닐까.
출판사의 마케팅 능력도 한몫했을 것이다.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마케팅의 영향력이 컸고 그런 능력이 출중한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천재적인’이라는 형용사에 불만인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연세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으며 학부과정에서 올A를 받았다고 한다. 석박사도 빠르게 획득했다. 대학 강의는 스물다섯에 시작했고,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26살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매스미디어에 등장한 마광수를 보면 스스로도 불운한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한 편 한 편이 짧지만 ‘마치’ 본격 평론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내용은 고정관념에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일차원적이다.
예를 들면, 그는 성Sex에 대해 설명하면서 동양의 오래된 고정관념을 당연한 진리인 것처럼 설명한다. 남자는 불이고 여자는 물이다. 남자가 불을 지펴야 여자는 뜨거워진다. 여자 주도의 성행위에 대해서도 잘 알려진 마당에 무슨 얼토당토않은 일반화인지 알 수가 없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의 주인공인 복녀에 대한 설명도 가관이다. ‘감독관에 의해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섹스를 한 것이 그녀에게 드디어 사람이 된 것 같은 만족감을 안겨준 것이었다.’ 섹스의 기쁨이 순전히 잠깐의 삽입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야만 이런 단순 무식한 해석이 가능하다.
논리적인 파탄의 예를 들자면 이런 것도 있다. 그는 여자도 섹스를 자유롭게 즐겨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말은 예쁜 여자에게만 해당된다. 결국 남자 중심의 섹슈얼리티를 말하고 있는 셈이다. 텔레비전 방송에서 ‘예쁜 여자가 공부도 잘해’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은 적도 있다. 그 이야기의 맥락은 복잡하지만 그는 결국 사랑은 섹스이고, 섹스를 위해서는 외모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신이나 마음의 힘 같은 것들은 아예 위선적인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인다.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92년에 출간된 ≪즐거운 사라≫였다. 조금 음란한 소설이다. ‘조금’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쪽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음란한 축에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작품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 것 역시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라는 작가의 프로필 때문이었다고 봐야 한다.
혹시 비슷한 시기에 ‘야한 소설’들을 썼던 장정일과 비교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지면이 한정되어 길게 쓰지는 못하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이런 것이다. 그 내용이 인간성에 대한 탐구인가, 아니면 이미 유통되고 있는 고정관념을 형상화한 것인가. 장정일은 독자에게 어떤 상황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생각하게 만든다. 마광수의 그다지 야하지 않은 글들은 고정관념을 드러낼 뿐이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를 법정에서 치죄한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마광수에 대한 우호적인 문인들의 제스처는 표현의 자유와 깊은 관련이 있다. 내용에 대한 동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