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아침 열시까지 여유 있게 지냈다. 여섯시에 일어나 씻고 가볍게 식사한 다음 해변을 걸었다. 들어오다가 한 부부를 보았다. 남자가 조금 무례한 질문을 했다.
‘혼자 다니면 심심하지 않으세요?’
미국에서 산 지 사십 년 되었다는 분인데 이런 이상한 질문을 다 한다.
‘같이 다니면 불편하지 않으세요?’
퍼뜩 목구멍까지 말이 올라왔지만 성공적으로 잡았다. 부인이 무마하려는 듯이 말했다.
‘혼자 다니는 게 좋은 분도 있죠.’
뭐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라 그냥 웃기만 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꽤나 별난 경험을 하고 있구나. 혼자 패키지에 따라온 사람은 없었다. 가이드가 식사 때마다 꼭 내 자리를 잡아준 것도 그런 이유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들 궁금해했다고 한다. 왜 멀쩡해 보이는 남자가 혼자 ‘패키지’에 따라왔을까? 혼자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하건만. ‘무슨 사연이 있겠지. 실연인가? 저 나이에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모양이다.
악어농장이 있는 백만 년 된 바위 공원에 들렀다.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가 그대로 굳어 화석이 된 것들이었다. 이런 농원을 보면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자연의 혜택’이 크다는 걸 느낀다.
열대지방의 정글 이미지가 떠올랐다. 나무들이 너무나 잘 자라고 동물들도 다양하다. 반얀 트리Banyan Tree도 보았다. 제임스 카메룬에게 <아바타>를 만들 때 영감을 주었다는 나무다. 이 나무는 어마어마하게 크게 자라 한 그루가 운동장 하나를 뒤덮기도 한다고 했다. 뻥인 것 같아 검색해 보니 그런 게 있다.
악어농장 쪽으로 갔더니 악어 우리가 여기저기 있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모두가 죽은 것처럼 꼼짝도 않았다. 입도 쩍 벌린 채 그러기도 하고.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악어쇼가 가능한 것은 악어가 어마무쉬하게 게을러 그렇다는 것이다. 웬만하면 꼼짝 하지 않으려 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한 악어가 입을 벌리고 먹이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배가 고팠지만 꼼짝하기 싫었고. 가끔 그렇게 게으르게 지내다가 배가 고파 죽는 악어도 있다. 입을 닫는 게 귀찮아서 먹이가 들어와도 모른 체하다가. 어떤 악어는 입을 벌리고 기다리기만 하다가 배가 고파 죽은 악어를 먹으려고 기다린다. 그런데 그 악어가 너무 오래 버티면, 그 악어를 기다리던 다른 악어도 배가 고파 죽는다는 것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악어에게는 먹이를 주는 것도 쉽지 않다. 아무리 코앞에 먹이를 가져다 대도 먹지 않는다. 아니구나 그냥 꼼짝하지 않는다.
그렇게 꼼짝도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배만 부르게 해주고 나면 벌린 입도 다물기 싫어한다. 그러니 연 입을 벌려두고 머리를 들이밀 수도 있다. 그게 그리 어렵지도 않다는 것이다. 아, 물론 나는 못한다. 어렵든 쉽든. 당신도 하지 마시길.
참 재미없는 악어쇼를 보았다. 악어가 그다지 신경 쓸 일은 없어 보였다. 다행이다. 동물을 괴롭히지 않고도 쇼를 할 수 있어서. 이 악어들은 주로 가죽을 쓰기 위해 사육된다. 한 마리당 칠팔백만 원쯤 가치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악어를 키우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백호를 비롯해 많은 호랑이도 있었는데, 마침 식사 시간이었다. 아마도 사육사인 듯, 우리의 문을 열고 들어가 쇠 지팡이로 탕탕 치자 호랑이들이 물러섰고 먹이를 담은 큰 그릇을 호랑이 수만큼 넣어 주었다. 차례차례 질서를 지키며 받아먹었다. 거대한 고양이처럼.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동물이 있었고, 사육사와 잘 소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렇게 잘 길들여진 동물들은 행복할까? 불행할까?
라텍스 판매하는 곳에 들렀다. 주로 매트리스와 베개, 이불을 팔았다. 사장이 직접 나와서 설명했는데, 듣기 거북한 말도 좀 있었다. 라텍스 판매와 관련 없는 말을 왜 할까? 그건 로열제리와 꿀, 오일을 파는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네들이 파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럭저럭 이해하겠는데(그걸 파는 사람들이니까) 왜 태국을 비하하고 일본을 비하하는 어법을 사용하는 것일까. 그리고 한국의 ‘다른 회사’를 비난하기도 하면서.
이날은 버스가 고장이 나 일정이 좀 늦어졌고, 긴 거리를 옮겨 다녔다. 많이 걸었고, 발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발을 가볍게 만지기만 해도 하품이 계속 나왔다. 한 시간쯤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몸이 마사지를 좋아하는 것 같다.
저녁을 먹고 공항으로 갔다. 까르티에 매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오래전 외국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처음으로 아내에게 시계를 사준 적이 있다. 결혼할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시계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이 년 전쯤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뭘 사지는 않았다.
요즘은 면세품점의 가격이 더 비싸다. 굳이 거기에서 살 필요가 없다. 필요하면 그때 사면 된다. 살 일이 없겠지만. 있으면 좋겠지만.
공항은 무척이나 넓었다. 한참을 걸었고, 목이 말라 생수를 한 병 샀다. 거의 오천 원이었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운이 좋아 또 옆자리는 비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