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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Feb 06. 2020

취나물 볶음

-다시 쓰는 사랑이야기 02

아들에게 애인이 생긴 뒤 가끔 그 아이를 생각한다. 여러 애인이 있었지만 이렇게 생각나는 아이는 처음이다. 웃으면 눈이 모두 없어진다. 딸이 있었으면 이럴까 싶다. 장 보러 갈 때 자주 생각난다. 뭘 만들어주면 그 아이가 좋아할까 싶어서다. 경험으로 보면 남자는 남자들대로,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입맛이 비슷한 데가 있다. 여자들은 대개 기름진 것보다 깔끔한 맛을 좋아한다.

내가 만든 잡채도 그렇지만 중국음식들도 기름기가 적다. 비교적 깔끔한 편이고. 아들의 애인은 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 이건 중국음식 같지 않아요. 개운하고 깔끔하잖아요. 조금 우아하기까지 한 맛인데요. 제가 중국에서 먹어본 것들은 너무 기름졌어요. 여행 갔다가 먹을거리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맛있다는 칭찬을 그렇게도 할 수 있구나. 고맙다.”

“아버님 집은 맛집으로 등록해 둬야겠어요.”

그때가 잡채와 팔보채를 만들어줬던 두 번째였을 것이다. 세 번째 온다고 했을 때 뭘 해줄까, 물었더니 아들이 알려줬다. 한식을 좋아해. 나물 같은 것. 그날은 나물을 열 가지 했다. 잘하지 않던 고사리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무래도 말린 것으로 만든 나물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건가지, 건취나물, 건 곤드레, 건표고 같은 것들. 

사랑했던 그 사람도 나물을 좋아했다. 여자들은 아무래도 좀 비슷한 데가 있다. 고정관념일지 모르지만 내가 경험해본 바로는. 나물을 할 때는 생물 병어를 구워주었다. 아주 큰 것으로. 부드럽고 달콤하다.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살 수 있는데 한 마리당 400그램이 넘는 것은 쉽지 않다. 320그램 정도만 해도 먹을 만하다. 좀 비싸지만. 병어는 그저 오븐에 넣어 구워내기만 하면 된다. 

가지나물과 취나물, 시금치나물, 당근 나물, 오이나물, 숙주나물과 맛있는 김치, 갓 지은 밥에 병어 한 마리를 상에 올린다. 두부와 애호박을 조금 썰어 넣고 멸치다시로 조금도 짜지 않게 끓인 된장국과 함께. 

남자들이라면 취나물에 소고기를 볶아 섞은 취나물 볶음을 더 좋아한다. 나는 그것 하나로 한 숟갈 뜬다.

취나물은 잘 씻어서 삼분쯤 데친다. 거친 편이라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는 없다. 찬 물에 씻어서 적당한 크기로 썰어 조금 세게 조물조물 무친다. 간은 된장과 고추장을 삼대일 정도로 섞어서 하는 게 좋은데, 마파된장을 써도 된다. 마파된장이 된장과 고추장을 조금 섞인 맛이다. 불고기처럼 간해둔 다진 소고기를 볶아서 무쳐둔 것과 뒤섞어 한 번 더 볶으면 된다. 

가끔 이런 밥상을 받고 행복해 할 얼굴을 떠올리며 장을 본다. 그렇게 시작하면 두어 시간 만들어서 언제든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둔다. 그러고는 모두 냉장고에 정리해 넣고 서재로 돌아온다. 읽던 책을 읽고, 쓰던 글을 쓰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을 때가 있다. 음식을 만들어 두기만 하고. 오후 네시쯤 되면 산책 나가고 싶은데 그제야 배가 고프다는 걸 안다. 

부엌에 서서 허기를 메꿀 정도로 조금 떠먹고 산책을 나선다. 나설 때는 듣게 될 책을 고른다. 오늘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듣기로 했다. 요 며칠 자크 라캉에 대해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라캉이 <도둑 맞은 편지>에 집착했던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게 아니면 누군가의 편지를 받고 싶거나 보내고 싶어서일 것이고. 지금이 정확하게 네시다. 나서야겠다. 가끔 이렇게 우연이 필연 같을 때가 있다. 아니구나. 필연이 아닌 우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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