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로트도 기똥찬 요리가 되는 곳
부다페스트에서의 하루하루는 모든게 신기했다.
에어비앤비 숙소의 높은 천고,
유리창문 밖으로 나있는 나무 블라인드,
3개의 키로 잠궈야 하는 철장 달린 현관문,
내 손만한 열쇠 뭉탱이,
영화에서나 보던 유럽식 건물들,
삐뚤 빼뚤 비스듬하게 대충 박혀있는 버스정류장 이정표,
귀에 족히 열댓개는 되어보이는 피어싱을 꽂고 지나가는 남자,
모든게 설레임으로 느껴지던 시린듯 차갑지만은 않은 공기
그리고 Lidl.
우리는 첫 숙소부터 운이 매우 좋았다.
집이 예쁘고 깨끗한것은 물론이며 창문부터 창 밖 모습까지 유럽냄새가 폴폴나는 집이였다.
우리의 호스트였던 Judit은 인상이 너무 좋은 유럽 어머니였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우리를 기다려주었고
3룸의 제법 큰 집에 대해 약 한시간가량 이것저것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다.
체크인이 한 시간이면 지겨울 법도 한데,
해외에서의 에어비앤비 이용은 처음이였던지라 '외국은 이렇게 다 만나서 설명해주나봐' 하며 그 설명조차 신기해했었다.
어떻게 보면 반갑고 어떻게 보면 아쉬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호스트와의 만남.
헤어지기 전 우리의 세계여행 시작을 기념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또 운이 좋았던 한가지.
우리 숙소 1분거리에는 Lidl 이라는 마트가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찾아본 여러개의 여행기에서 하나같이 하는말은
'유럽은 사먹는것보다 해먹는게 저렴하다' 라는것이였다.
이제 막 도착한 나로서 아직 체감은 안 되지만 마트가 집 앞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이 되었다.
호스트와의 만남을 끝내고 나니 어둑어둑 해가 지고있었다.
오늘은 첫날이고, 유럽은 밤에 위험하다고 했고,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니 일단 눈앞에 보이는 마트를가자!
그렇게 우리의 첫 끼는 마트로 정해졌다.
이때는 마트조차 별거였는지 하나하나 모든게 새롭고 신기했다.
하나하나 예쁘게 쌓아올려진 과일과 야채들, 냉장 쇼케이스 안에 다닥다닥 나열되어있는 다양한 치즈와 베이컨들, 빵집보다 더 많은 종류의 빵을 낱개로 살 수 있는 시스템. 심지어 가격도 저렴해!
이게 여행인가보다, 일상도 다르게 보이는 마법.
그렇게 첫날 저녁은 익숙한 냉동피자와 맥주 몇캔을 사들고 숙소로 들어왔다.
그리고 며칠 뒤,
햇빛이 주방 창문을 향해 쨍쨍히 들어오던 대낮,
우리는 낮 술을 하기로했다!
우리는 낮 술을 좋아한다.
한참을 즐겨도 아직 늦은밤이 아니라는 사실이 참 좋다.
집 앞 마트에서 헝가리에서 유명하다는 토카이 와인과 라자냐, 감자칩 등을 사왔다.
치즈 코너 옆으로 각종 레트로트 라자냐와 파스타가 즐비해 있었는데
유럽은 유럽인건지 오븐에 돌리기 전의 모습조차 맛있어 보였다.
유럽의 숙소에는 오븐이 99.9%의 확률로 구비되어있고 난 이게 참 좋았다.
어떤 요리도 그럴듯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랄까.
고작 3유로짜리의 레트로트 라자냐였지만
오븐에서 나온 뒤의 모습은 여느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냄사와 자태를 풍겼다.
3유로짜리 라자냐는 기대이상이었다.
'아마 가로수길 어느 레스토랑을 갔다면 족히 3만원은 넘게 내야할 걸?!'이라는 말이 절로나오는 맛이였다.
8,100포린트, 한화 약 26,000원의 가득한 행복이였다.
헝가리에 도착해 숙소를 찾기 전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의지할 것은 핸드폰에 있는 구글 지도와 서바이벌 영어 실력 뿐이었다.
안전을 위해 택시를 선택했고 헝가리 공항에서의 택시는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었다.
대중교통 보다는 훨씬 비쌌지만 안전이 최우선 순위기에 후회는 없었고
오히려 가는 동안 처음으로 유럽의 거리들을 편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숙소는 대사관들이 몰려있는 곳이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나중에 산책을 다니는데 전부 대사관들이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을 했고 호스트가 올려놓은 찾아가는 법을 보며 차근차근 찾아갔다.
호스트는 할아버지 할머니셨는데 정말 친절했다.
한국에 비해 많이 아날로그했다.
건물 문, 복도 들어가는 문, 집 현관문이 전부 열쇠로 되어 있어서 다 다른 열쇠로 열어야 하는 방식이었다.
문마다 2바퀴 반? 정도를 돌려야 하는데 처음이기에 이마저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효율 적이라는 생각도 여러번 했다.)
유럽 여행이 처음이라는 말에 집 주변에 갈 곳들, 집에 대한 설명 그리고 우리에 대해 궁금한 점까지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어로도 1시간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데 그걸 영어로 하다니 내 인생 첫 영어 대화를 제대로 했다.
호스트분들과 헤어지고 나니 허기가 밀려왔다.
이미 밖은 어두워졌고 식당을 가기엔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때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데 에너지가 정말 많이 필요했다.)
이미 많은 대화를 나눈 터라 더 이상 영어로 무언가를 하기엔 내 에너지가 부족했다.
그래서 집 앞에 마트에 가기로 했다.
지금은 너무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언제나 처음은 두렵다.
LIDL은 유럽에서는 유명한 마트인데 처음가는 우리에겐 신세계 였다.
저렴한 맥주, 빵, 그리고 이태리 음식들 등이 즐비했다.
우리는 매일 들락거리며
김치 대신 피클과 할라피뇨를 사고 레토르트 찌개 대신 레토르트 피자와 라자냐를 구매했다.
물인줄 알고 샀는데 알고보니 탄산수였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와인은 우리의 눈을 바쁘게 만들었다.
매일 장을보고 들어와선 테이블에 셋팅하기 바빴다.
물론 영상을 촬영해야 하고 짝궁이 사진을 찍어야 한 것도 한 몫 했다.
덕분에 우리의 식사 테이블은 그럴 듯 했고 그 맛은 현지의 맛이었다.
이게 정말 맛있는지 아닌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만큼은 우리들에겐 유럽이었다.
우리가 유럽에서 요리를 해서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은 성공이라고 말했다.
헝가리에서의 집은 우리에게 3,000원 짜리 라자냐도 그럴듯한 요리가 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