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이별하는 여행
'안시 Annecy'는 파리에서 기차로 3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프랑스 남동부의 작은 도시다.
알프스 산맥을 끼고 스위스와 접경해 있으며 빙하수가 모인 호수와 도시를 관통하는 작은 운하를 끼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나지막한 건물들이 사랑스러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어쩌다 안시, 어쨌든 여행
2018년 6월 1일에 시작한 세 달간의 유럽여행이 끝을 향하고 있었다. [남편과 여행했던 암스테르담을 시작으로 잠시 들렀던 파리, 동생의 결혼식이 있던 스트라스부르, 부모님과 남편과 함께한 스위스, 남편이 돌아가고 부모님과 함께했던 포르투갈의 포르투, 리스본, 신트라, 스페인의 세비야, 론다, 네르하, 그라나다, 바르셀로나, 남프랑스의 아비뇽, 고르드, 베르동, 니스, 생폴드방스, 에즈빌리지, 모나코, 다시 파리로 돌아와 부모님을 보내고 혼자 이탈리아 피렌체를 갔다가 베니스에서 부장님과 만나 로마, 이태리 남부투어를 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 긴 여정의 마지막 일정인 파리 한 달 살기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3주 차에 접어든 참이었다.
문득 예전에 동생이 '안시'가 참 좋더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이렇게 긴 여행에서가 아니라면 일부러 일정을 빼서 가기에는 애매한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곳을 파리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 여행지로 삼기로 했다. 1박 2일로 일정을 잡으면서 여유 있게 여행하기는 어렵겠다 싶었지만 한 달을 빌려놓은 집을 이틀 이상 비우는 건 아까웠으니 어쩔 수 없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전날 미리 싸 둔 여행용 배낭을 들처 업었다. 캠퍼들이 매고 다니는 그 배낭이다. 이 배낭은 ‘맨다’고 표현하기엔 너무 크다. 뒤뚱거리며 리옹역에 갔다. 아침 일곱 시, 기차는 희미하게 남아있는 연무를 걷으며 출발했다. 안시에 다녀오면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는다. 여행의 막바지에 다시금 새로운 여행지로 떠난다는 것이 멜랑꼴리한 기분을 다독여주었다. 출발한 지 2시간쯤 지났을까. 창밖의 풍경으로 지역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차 곁으로 끝없이 호수가 따라붙었다. 분명 호수인데 TGV의 속도감 때문인지 물결이 이는 듯 보였다. 여름의 풀들이 소다색 호수물에 반사된 햇볕에 봄으로 다시 돌아간 듯 연둣빛이 되었다. 프랑스는 정말이지, 축복받은 땅이구나.
잔잔한 외로움
안시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을 맡기고 구시가지로 향했다. 구시가지, 신시가지 나눠봤자 도보로 반나절에 몇 번이고 돌만큼 작은 곳이었다. 안시를 상징하는 호수가 운하와 맞닿아 있는 곳에 요트와 보트들이 정박해 있었고 야트막한 둑이 둘러져 있었다. 그곳을 발견하자마자 나는 건너편에 보이는 ‘서브웨이’에 가서 샌드위치를 샀다. 둑에 걸터앉아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샌드위치는 맛있었다. 하지만 한 입 베어 물때마다 포만감 대신 뭔지 모를 헛헛함이 차올랐다.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곳에서 먹는 완벽한 자유 속에서 해방감 대신 외로움이 느껴졌다. 이상했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호수가를 산책했다. 청량한 푸른빛의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과 초록이 끝까지 돋아난 잔디밭에서 피크닉 중인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신기할만큼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한국이었다면 유원지로 조성되어 복작복작한 분위기에 호숫가를 따라 분명 닭백숙집이나 카페가 줄지어 있을텐데 생각하니 재밌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을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여기에서 털어내 보자는 생각이 들어 액티비티 센터에 갔다. 알프스 산맥에 호수까지 조망하며 내려올 수 있으니 스위스 못지않게 근사한 스팟이었다. 성수기였지만 다행히 내일 오전 예약이 가능했다.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어 한참을 망설이다가 왜인지 모르겠으나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아 그냥 나왔다.
그렇다면 저녁에 스위스에서 못 먹어본 ‘라끌렛’이라도 먹어보자는 생각에 미리 레스토랑을 물색해 보기로 하고 구시가지를 살폈다. 라끌렛을 파는 레스토랑이 밀집한 골목에는 테라스에서 식사하는 사람들 사이로 꼬릿꼬릿한 치즈 냄새가 들어차 있었다. 어쩐지 식욕이 당기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런가 싶어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잠시 쉬었다. 숙소 내부는 아기자기했다. 방은 생각보다 컸고 바닥과 벽면이 모두 나무로 되어 있어 통나무집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욕조도 있었지만 몸을 담그면 그대로 풀어져버릴 것 같아 물을 받진 않았다. 혼자 돌아다니는 데 초라해 보이기 싫어 차려입었던 원피스가 거추장스러워 벗어던지고 반바지로 갈아입고 다시 나섰다. 구시가지는 노란색 조명에 흠뻑 젖어 있었다. 볼거리가 많지 않은 작은 마을에 호수가는 드문드문한 가로등으로 산책하기엔 어두워 사람들은 온통 식당 안에만 모여 있었다. 혼자라면 유럽은 어딜 가나 낮보다 저녁에 더욱 외롭다. 저녁에는 현지인들도 모두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느긋한 식사를 즐기기 때문에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라클렛처럼 먹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을 주문하는 것은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결국 크게 먹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던 그 메뉴를 포기하고 은신처가 되어줄 식당을 물색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메인 골목을 지나 한산한 곳에 아기자기하면서도 허름하지 않은 식당이 보여 들어갔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은데 애피타이저만 먹어도 괜찮겠냐고 양해를 구하고 로마에서 맛있게 먹었던 생모짜렐라 치즈 샐러드를 주문했다. 모짜렐라라고는 하지만 부라타치즈처럼 향미가 풍부하고 촉촉한 왕만두같이 생긴 커다란 치즈 한 덩이가 각종 야채, 견과류와 신선한 올리브오일, 발사믹 드레싱과 함께 나왔다. 와인 한 잔과 천천히 음미하는 동안 지난 여행들에서 혼자였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적막한 피날레
남편이나 부모님, 부장님과 함께하는 일정에서 혼자 마트를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카페를 다녀오던 잠시의 자유시간은 오히려 다시금 일행과 함께할 때 안정감과 활기를 더할 수 있는 윤활유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피렌체를 혼자 여행했던 3일, 파리에서 한 달살이를 하며 보냈던 기간에는 순간순간 사무치게 외로운 시간들이 있었다.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으면서도 아무도 함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숙소에 돌아가도 혼자라는 사실이 힘들었다. 다행히도 피렌체의 여행 끝에는 부장님과의 만남이 있었고 파리에서는 동생을 보러 가면 되었다. 그래서 그 외로움은 결국 그 순간의 감정일 뿐이었다. 어쩌면 외로움보다는 심심함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안시 여행은 하나가 더 빠진 여행이었다. 바로 남은 여행 시간. 이제는 이 여행마저 나를 떠나고 있었다. 나는 안시에서 ‘누군가’가 아니라 아직 헤어지지 않은 ‘이 여행’을 이미 격하게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자유롭고 긴 여행의 기회를 인생에서 다시 갖기는 어렵거나, 아주 오랜 뒤에야 가능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파리에서 한 달 살기의 여운은 여행에서 다녀온 많은 새로운 곳들에 대한 감탄을 다 재치고도 남았다. 10년 전 두 달 머물렀던 파리를 여행지로 수차례 더 오고 다시 한 달을 지내게 되었지만 여전히 매일매일이 환희였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파리 시내 곳곳에 나만의 아지트와 ‘또 간집’들이 있고 관광이 아닌 일상이 있었다. 나는 파리와 이별 중이었던 것이었다. 저녁 시간이 깊어갈수록 사무치게 파리가 그리웠다. 얼른 파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안시가 너무 자그마해 하루 동안 돌아보니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비가 쏟아졌다. 깜깜한 길을 한 손엔 우산을, 한 손엔 핸드폰을 들고 길을 찾는데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골목길이라 그런지 구글맵이 정신을 못 차렸다. 어두우니 분명 낮에 지나갔을 길인데도 낯설기만 했다. 무턱대고 구글맵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외곽으로 빠지는 고가도로 같은 곳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인적도 전혀 없고 차들만 쌩쌩 달리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 핸드폰을 껐다 켜고 다시 검색을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그제야 우산을 들어 길 끝을 유심히 응시했다. 기억을 더듬어 조금이라도 눈에 익는 곳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혼자만의 사투를 끝내고 호텔 앞에 도착했을 때, 홀딱 젖은 몸이 추위에 덜덜 떨렸다. 기껏 갈아 입었던 반바지 때문에 체온이 더 떨어진 듯 했다. 우산을 접으며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괜히 울컥해 입꼬리가 출렁였다. 청승이었다. 방에 들어가 옷에서 물기를 짜내 걸어두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어떻게든 이 감정을 털어내고 싶었지만 축축한 옷처럼 꿉꿉했다.
혼자가 좋은 것은
실제로는 혼자가 아니어서였다
다음날, 돌아가는 기차는 늦은 오후 시간이었다. 어쨌든 돌아가기 전까지는 내 눈앞에 있는 이 아름다운 도시를 최대한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나를 농락했던 구글맵을 다시 한번 믿고 커피가 맛있는 곳으로 평점이 높은 카페를 찾아가 유럽에서 귀한 진한 라떼를 마셨다. 호숫가 잔디밭에 보자기를 깔고 누워도 봤다. 혼자라서 함부로 졸 수도 없고 가져온 책도 없고 호수를 눈앞에 두고 핸드폰만 보기엔 아쉬워 금방 일어났지만. 내친김에 중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안시성 박물관에도 들렀다. 전시된 유물이나 작품들 보다는 건물 자체와 성곽에서 내려다보이는 안시의 풍경이 정말 예뻐서, 사진 욕심이 별로 없는데 옆에 있던 사람에게 부탁해 한 장 남겼다.
그러면서도 얼른 시간이 가기를 바랐다. 여행의 끝에서 한국이 아닌 파리를 그리워하다니, 역시 파리는 내 마음의 고향이구나 생각했는데 이후 지금까지 7년 간 나는 다시 파리에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때 나는 이 오랜 이별을 직감했었나 보다.
안시에서의 이틀은 여행을 통틀어 혼자임을 즐기지 못한 유일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온통 여유와 평화로 가득했던 안시는 나 빼고 모두가 영원히 거기 머무를 것만 같이 공고해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파리에서보다 더 소외감을 느꼈다.
파리의 ‘내 집’에 들어서며 전에 없던 안락감을 마주했다. 테이블 위에 열쇠를 올려놓는 소리, 물컵에 물을 따르는 소리, 겉옷을 벗어 접는 소리. 집 안에서 들리는 건 오로지 내가 내는 소리뿐이었다. 간접 조명으로만 밝히는 실내는 어두웠고 집 앞 맥도널드에서 사가지고 들어온 햄버거 냄새는 강했다. 티비도 없고 말상대도 없었지만 쓸쓸하지 않았다. 파리에게 돌아온 그날 밤, 나는 피곤함도 잊고 늦게까지 깨어있었다. 창 밖으로 새벽 한 시의 마지막 에펠탑 스파클링 조명까지 챙겨본 후 손가락을 꼽아본다. 파리와 헤어질 날짜를 헤아려보니 안시에 다녀온 이틀이 너무 긴 시간인 듯 느껴졌다.
여행지 중 어떤 곳은 마음속에 또 다른 집으로 남기도 한다. 언제나 다시 가고 싶고, 언제든 갈 때마다 즐겁고, 언제까지나 잊을 수 없는. 오래 머물진 않더라도 언젠가 아끼는 사람과 다시 가고 싶은 곳도 있다. 또 어떤 곳은 한 번 가본 것으로 충분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곳이 나와 어떤 인연이 될지는 가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앞으로 안시같이 풍경이 근사한 곳은 누군가와 함께 가야겠다는 다짐이다. 그 풍경에 대한 감상을 나누며 식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려면 아무래도 일행이 있는 편이 좋겠다. 나에게 있어 안시는 이 여행을 끝내기 전 파리와 헤어지는 연습을 하게 해 준 곳으로 기억되었다. 아름다운 그곳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즐기지 못해 애석하지만 그것대로 충분했던 안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