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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제주도다운 제주도

운전 베테랑 아빠를 뒷좌석에 태운 초보운전자

by 바다기린
신혼여행 때 왔던 허니문하우스를 다시 찾다


지난 5월 중순, 남편이 독일에 있는 본사로 열흘 간 출장을 떠났다. 주중 5일은 근무를 하고 뒤로 5일은 동료들과 하이델베르크, 베를린,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처음에는 남편의 업무 일정이 끝나는 날에 맞춰 나도 독일에 가서 함께 여행을 하고 돌아오려고 했다. 유럽을 못 간 지 8년 째라 향수병에 단단히 걸려 있었기 때문에 이번이야말로 오랜만에 내 사랑 유럽을 다시 만날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저것 각을 재는데 거리낌 없이 탁, 하고 마음이 먹어지질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유럽 여행을 그것도 몇 년 만에 다시 짜봐야 하는 나도 그렇고 일단 남편이 현지에서 해야 하는 일이 꽤나 프레셔가 높은 프로젝트였다. 돌아와서 정리해야 할 내용도 많았다. 내가 가면 휴가를 못해도 일주일은 더 붙여야 하는데 그의 체력도 시간도 여유롭지 않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이번엔 남편에게 자유시간을 주기로 했다. 동료들과 어울리는 기회도 내가 양보하지 않으면 스스로 계획하지 못하는 사람이니.


뜻밖에 남편 없는 긴 시간이 주어진 나는 문득 이 참에 부모님과 여유롭게 제주도에 다녀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이렇게 오래 집을 비우면 사위 걱정에 손사래부터 치는 엄마 때문에 좀처럼 마음먹기가 힘든 일정이었다. 엄마 아빠에게 제주도 여행은 내가 중학생일 때 가족여행으로 다녀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기회에 두 분이 알고 있던 제주도와 전혀 다른 제주도를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유럽을 떠올릴 때만큼이나 설렜다. 날씨 좋은 5월이라지만 그래도 제주도 날씨의 변덕은 불안해서 일정을 넉넉하게 7박 8일로 잡았다. 떠나기 전에는 웬만한 해외여행만큼 긴 일정이 괜찮을까 싶었지만 계획을 세울수록 시간이 남는다는 느낌은 없었다. 함께 가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을 모두 체크하다 보니 어느새 나의 네이버의 제주도 지도는 수많은 별표로 빼곡하게 뒤덮였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이 모든 별표를 내가 직접 운전해서 찾아가게 줄은.


두 분과 함께여서 더 빛났던 제주의 바다



백업이었는데 라인업 되어 버렸다

여행 첫날, 제주도에 도착해서 렌터카를 인수했다. 차량은 신형 쏘나타였는데 우리 집 차는 SUV라서 아무래도 세단은 어색한 데다 내 실제 운전 경력은 후하게 쳐도 이제 막 초보를 벗어났다고 할 정도라 운전대는 당연하게도 아빠에게 맡겨졌다. 하지만 운전 경력 40년 동안 사고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는 자타공인 ‘베스트 드라이버’는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여러 번 멈칫했다. 아빠는 1세대 제네시스를 10년 넘게(어쩌면 그 보다 더 됐을지도) 몰고 있다. 아무래도 현대자동차에서 실수로 너무 잘 만들어버린 차 같다고 당최 고장이 나질 않아 바꾸지도 못한다면서도 승차감과 주행감은 어떤 차보다 만족한다고 했다. 그렇게 애정으로 의리로 함께해 온 세월 동안 현대자동차의 후세대들은 부지런히 진화해 있었던 것이다. 핸들 옆에 달려 있는 다이얼식 기어변속기 위에서 오른손은 우왕좌왕했고 광활한 크기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전방위적 정보를 펼쳐 보이는 내비게이션 화면 위에서 눈동자는 흔들렸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에서 직접 운전을 하는 것도 아빠에게는 처음이었다. 신혼여행으로 왔을 때는 가이드의 인솔 하에 제공되는 교통편을 이용했고 우리와 왔을 때는 하루 단위로 택시기사에게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고 가이드와 이동을 맡겼던, 당시에는 꽤 성행했던 택시관광을 했다.


익숙하지 않은 신형 자동차에 처음 운전해 보는 길까지. 신경이 예민해진 아빠는 아슬아슬한 실수를 할 때마다 상대 차나 제주도 신호체계 등 남 탓을 하며 구겨진 자존심을 챙기느라 급급했다. 그래도 선수는 선수라 내비게이션에서 예측한 시간보다 더 빨리 첫 번째 목적지인 식당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도 파킹을 찾을 때까지 변속기를 돌리다가 뒤늦게 파킹은 가운데 버튼을 누르는 거라는 걸 기억해 냈다. 그리고는 애초에 없는 사이드 브레이크 버튼을 찾는다고 시트를 더듬더듬하다 포기하고 내려서는 스마트키로 잠금이 안된다고 의아해했다. 알고 보니 시동을 안 끄고 내린 거였다. 이 모습을 쭉 지켜보던 엄마는 아무래도 아빠가 계속 운전하면 본인과 싸울 일이 생길 것 같다면서 네가 운전하면 안 되겠냐고 했다. 초보가 운전하는 차는 돈 받고 타줘야 한다고 놀리던 아빠도 별말 없이 뒷좌석으로 향했다. 아빠가 술을 드시거나 너무 피곤해하시면 한 번씩 내가 운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운전대를 잡게 되다니. 나 역시 이 차가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쩌다가 핸들히터를 켜버려서 손바닥이 후끈후끈한데 주행 중에 버튼을 찾을 정신이 없어 차를 세울 때까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기도 했다. 엑셀과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저항감이 우리 차와 달라서 차는 자주 꿀렁꿀렁거렸다.


차에 익숙해지고 나자 제주도의 길은 내 걱정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특히 3일 차까지는 유명 관광지를 가지 않아서 그런지 통행량도 많지 않았고 식당이든 카페든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곳이 대부분이라 주차 걱정도 없었다. 아, 전면주차는 좀 어려웠고 평행주차는 아빠가 대신해주기도 했지만. 사실 아빠가 운전을 하면 끝까지 평온하게 가는 경우가 드문데 아빠가 생각보다 운전을 터프하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운전을 안 할 때는 몰랐는데 이것저것 좀 아는 상태로 아빠 차를 타니 아빠의 운전 습관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깜빡이를 차선 변경 직전에 켠다든지 한 번에 몇 차선을 이동한다든지 조금 기다리면 될 것을 무리하게 추월을 한다든지 하는 것들. 그래서 엄마는 늘 잔소리를 하고 아빠는 핑계나 변명을 대고 결국 둘이 투닥거리고. 초보 딸에게 운전을 떠맡긴 것이 조금 미안했는지 아님 요령 피울 실력이 안 되는 내가 착실하게 FM으로 운전을 해서 그런지 엄마는 나에게는 별소리가 없었다. 엄마 역시 운전 경력이 꽤 되고 나보다 운전을 잘하는 편이지만 간혹 차가 오른쪽으로 너무 붙었다, 커브를 너무 길게 돈다 등 훈수를 두면서도 운전대를 잡지는 않았다. 아빠가 버벅거리는 걸 보고 이 차에 적응해 보려는 마음을 빠르게 접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셋이서 차를 타고 다녔던 중 가장 평화로운 차 안이었다.


“살다 보니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관광을 다 해본다?”

“이건 뭐 회장님이 따로 없구만.”


아빠는 약간의 허탈감과 뿌듯함을 함께 느끼시는 듯했다. 늘 나와 동생을 뒷자리에 태우고 다니던 입장이었는데 본인이 딸이 모는 차의 뒷자리에 앉아 가다니 격세지감이셨겠지.


“와, 저기 메밀꽃 핀 것 봐라.”

“저기 말 있다!”


엄마는 시종일관 바깥 풍경을 브리핑했지만 나는 전방이 아닌 풍경은 돌아볼 수 없었다. 혼자도 아니고 부모님까지 태우고 제주도에서 내 차가 아닌 차를 운전하는데 한 눈을 팔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며칠 혹독하게 운전을 하고 나자 엄마 아빠가 나더러 그새 운전이 훌쩍 늘은 것 같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렌터카를 인수할 때 가득이었던 기름은 반납을 위해 다시 채워 넣기 전에 빨간 등이 켜질 정도로 완전 소진한 상태였다. 정말이지 사명감과 긴장감으로 쌓아 올린 일주일 특훈의 결과였다.


대신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



“너는 제주도에 운전연수하러 왔네. 우리 덕분에 운전 늘어서 가니까 고맙지?”


익살맞은 아빠가 나를 놀린다.

그런데 나도 내가 운전을 했던 게 결과적으로 이 여행의 만족도를 훨씬 높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식사 메뉴에 따라 내킬 때마다 운전 걱정 안 하고 반주를 하실 수 있었고 엄마랑 함께 차창 밖을 보며 대화도 많이 하셨다. 엄마는 창 밖으로 보이는 제주도의 나무와 꽃들이 육지와는 확실히 다르던데 가로수까지 예쁘다고 감탄을 했고 아빠는 차로 다니니 제주도 구석구석 볼 수 있어 좋다고 이전에 왔을 때와 느낌이 달라 새롭다고 했다.


두 시간을 달려 와 영접한 돌돔


우도에 다녀오던 날, 동선이 안 맞아 포기할까 했던 꼭 가고 싶었던 횟집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우도에서 빨리 나오게 되어서 혹시나 하고 전화를 해봤더니 예약 취소가 된 자리가 하나 있다고 해서 기회다 싶은 마음에 2시간 가까이 달려 기어이 갔었다. 아마 아빠나 엄마가 운전했더라면 그렇게까지 힘들게 가지 말자며 대충 근처에서 먹자고 하셨을 거다. 역시나 가는 내내 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겠냐는 원성이 있었지만 운전자가 괜찮다고 우기는데 별 수 있나. 결국 그날의 식사는 지금까지 먹은 회 중에 가장 고급스럽고 맛있었다고 평가받았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 조식은 부담스러웠던 어느 아침, 혼자 차로 10 분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와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를 사 와 객실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던 것도 내가 운전을 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피곤해서 숙소에서 쉬고 싶다는 두 분을 태우고 드라이브 삼아 해안도로를 달려 수산시장에 가 회를 포장해 온 것도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 내가 마련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저녁 식사였다.


부모님을 여행 내내 이동에 있어서만큼은 편안하게 모실 수 있었다는 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보람이었다. 비로소 내가 생각했던 가족여행지로서의 제주도를 온전히 누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쩌면 조금쯤 서글프게도 이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예전만 못한 아빠가 뒤로 물러난 것도 있지만 동시에 더 이상 피곤한 일을 아빠에게 미루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내가 앞설 수 있게 된 발전적인 모습도 있다. 이렇게 또 하나, 내가 엄마 아빠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늘었다. 더 세월이 지나 어느 시점이 되면 그러한 책임의 이양 중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일들도 있을 것이다. 아빠 대신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주거나 엄마 대신 아빠의 식사를 챙기거나 하는 것들. 이렇게 두 분이 함께 계실 때 그리고 나와 함께할 체력과 시간이 남아있을 때 더 적극적으로 두 분이 기꺼이 미룰만한 책임을 찾아낼 작정이다.




+ 그리고 나는 제주도에서 갈고닦은 운전 실력으로 자신감을 얻어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던 날 용감하게 인천공항으로 픽업을 갔다 올 수 있었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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