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현실적인 사람의 낭만적인 순간
‘네르하 Nerja'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에 속한 작은 도시로 ‘유럽의 발코니‘가 있는 곳이다. 실제로 네르하 어느 곳에서 바다를 보든 마치 오션뷰 호텔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이다. 지도상으로도 바다와 맞닿은 유럽대륙의 최남단이기도 한 이곳은 눈에 걸리는 것 없이 지중해의 수평선을 마주할 수 있다.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들를 곳을 정할 때 말라가 대신 네르하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엄마 때문이었다. 말라가만큼 유명한 관광지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라 엄마의 취향에 더 맞을 것 같았다.
네르하의 샌드 색 벽돌 건물들은 나지막하고 반듯했다. 바다 건너 가까이에 바로 아프리카 대륙이 있어서인지 언젠가 여행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모로코의 정취도 느껴지는 듯했다. 어쩌면 따갑기까지 했던 6월 말의 햇살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포르투, 리스본, 세비야, 론다를 거쳐 당도한 이곳은 여행 중 만난 첫 지중해 바다였다. 마침 해수욕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계절이었고, 마지막 여행지인 니스를 가기 전까지는 또다시 해변 도시에 머무를 일이 없었다.(바르셀로나에도 해변이 있지만 어쩐지 휴양지 느낌은 아니므로)
“유럽의 지중해에 몸 한 번 담가봐야지!”
내 성화에 못 이겨 수영복을 꺼내며 엄마가 망설였다.
“난 수영복 입는 거 창피한데. 동양인이라고 더 쳐다보면 어떡해? “
“에이, 엄마. 아무도 우리한테 관심 없어. 여기 사람들은 홀딱 벗고도 들어가는데 뭐 어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 역시 비키니 위에 커버업을 걸쳤지만. 아빠는 한술 더 뜬다. 숙소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축구나 보겠다고. 하필이면 그때는 2018년 월드컵 기간이었다. 기다리다가 겨우 마음먹은 엄마까지 주저앉을 것 같아 서둘러 엄마와 둘이 숙소를 나섰다.
우리만의 놀이터가 되어 준 작은 해변
막상 도착한 해변은 사람들로 빼곡했다. 네르하의 해변은 여러 곳이 있지만 대부분 백사장의 규모가 작은 편이라 사람들의 밀도는 높았다. 이런 곳에서는 둘이 함께 바다에 들어갈 수가 없다. 한 사람은 소지품을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 유럽은 어디든 그렇다. 종종 내 손에 있는 것도 뺏어가는 곳이라 짐을 두고 자리를 뜬다는 것은 기꺼운 헌납의 표시나 다름없다.
엄마는 역시나 내키지 않는 듯 나에게 먼저 다녀오라고 했다. 바다에 몸을 담그고 바라본 해변에 남겨진 엄마는 유독 작아 보였다. 본인보다 덩치가 훨씬 큰 서양 아주머니들이 엄마 옆을 지나다닐 때 마치 애견 카페에 처음 온 작은 말티즈가 대형견 눈치를 보듯 괜히 흠칫흠칫거렸다. 언제인가부터 나는 엄마가 짐짓 귀여웠다. 어디선가 말티즈같은 소형견이 앙칼진 이유가 겁이 많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엄마의 짜증이나 잔소리가 우리 집안 최고 결정권자로서의 위협이 아니라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면서도 으르렁 거리는 가짜 공격성처럼 생각되었다. 엄마는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가질 수 없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척했고, 결국 안 할 거면서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고, 잘하는 것은 남들도 다 할 줄 아는 거라고 가볍게 여겼다. 제 영역에서만 기세등등한 작은 강아지처럼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의 엄마는 처량 맞았다. 어디를 갈 지, 무엇을 먹을 지, 얼마를 쓸 지도 전부 딸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우리집 보스는 자못 갑갑해 보였다.
안되겠다 싶어 물에서 나와 주변을 탐색했다. 멀지 않은 곳에 움푹하게 들어가 외진 아담한 해변이 있었다. 커다란 바위가 파티션처럼 막고 있어 바로 옆 메인 해변과 격리되어 있었다. 현지인인 듯 한 몇 명의 청년만이 한가로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 데리고 여기로 다시 오자. “
축구도 슬슬 끝날 무렵이었다. 우리는 숙소에 가서 여전히 나오기 싫어하는 아빠를 연행해 왔다. 보는 눈이 없는 그 곳에서 엄마는 드디어 용기를 내어 겉옷을 벗었다. 엄마는 늘 새로운 경험에 아빠보다 열려있는 편이었다. 나를 따라 바다에 들어온 엄마는 신나게 웃어 보였다. 배운 적 없지만 우리가 어릴 적 함께 놀아주며 스스로 터득한 수영 솜씨를 뽐내며 아빠를 향해 손짓했다. 물을 무서워하는 아빠는 겨우 몸을 담갔다가 빠르게 퇴진했지만 대신 수영복만 입은 채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겼다. 등에 어루러기가 생긴 이후로 강한 햇살만 보면 등을 지져 세균을 박멸하겠다면서 윗옷을 벗어재끼는 아빠다. 소금기 묻은 등에 모래가 붙은 채로 뜨거운 햇살을 받으니 타닥타닥 오븐에 생선 굽듯 금세 살이 그을렸다. 아빠도 아빠 나름의 필요로 이 시간을 활용하고 있었다. 그래, 계속 숙소에서 텔레비전만 붙들고 있어 봐야 뭐가 남아. 엄마 아빠를 보채 기어이 모두를 여기에 데려다 놓은 나 스스로를 칭찬했다.
부모를 모시고 하는 여행에 있어 많은 자녀들이 자주 하는 동기부여의 방법일 테지만, 사실 부모도 따라다니느라 겪는 고충들이 있다. 배가 별로 고프지도 않은데 미슐랭 식당의 코스 요리는 돈 아깝게 왜 먹어야 하는지, 목적지까지 오르막은 얼마나 더 이어지는지, 조금 더 느긋하게 쉬다가 출발하면 안 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 투성이지만 애써서 여행을 준비했을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참는다. 그러다가 예고 없이 마주하게 되는 정말 만족스러운 순간들 역시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엄마 아빠의 리액션은 나에게도 진심 그대로 전달이 된다. 네르하에서 보냈던 시간 내내 우리 셋은 그 어떤 아쉬움 없이 즐거웠다.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웠던 네르하
짧은 해수욕을 마치고 다시 마을로 올라왔다. 해변을 내려다보는 탁 트인 광장에서 버스킹 무리가 연주를 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강강술래처럼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끝없는 칠흑의 물결 위로 커다란 달이 떠올라 있었다. 바다에 달빛이 비쳐 그 부분의 물살 모양대로 황금빛이 밀려오고 있었다. 낮의 햇살만큼이나 눈부신 반영이었다. 그 광경은 함께 한 유럽 여러 도시의 어떤 야경보다 더 아름다웠다. 출발하기 전부터 철저하게 계획했음에도 한 달에 이르는 여행을 빈틈없이 준비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엄마가 분명히 좋아했을 ‘왕의 오솔길’도 예약 시기를 놓쳐 가지 못했고 위시리스트에 있었던 포르투갈의 ‘베나길 동굴’도 막상 동선을 짤 때는 잊어버려 지나쳤기에 아쉬움을 과자 부스러기처럼 남기며 이르른 네르하였다. 가슴이 웅장해졌을 기회들은 지나갔지만 오늘만큼은 그에 견줄만한 뭉클함이 바다거품처럼 심장을 감쌌다. 감상에 젖어 하염없이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엄마가 외쳤다.
“기린아, 저기 가보자!”
엄마는 춤을 추는 무리로 향했다. 아까 낮에 수영복을 드러내는 것조차 망설였던 엄마가 더없이 홀가분하게 몸을 흔들었다. 그날 네르하에서 엄마의 체면을 벗긴 건은 햇살이 아니라 달빛이었다. 소녀같이 웃는 엄마의 어깨를 잡고 뒤따라 합류해 뚝딱거리는 몸을 움직여본다. 엄마의 어깨뼈 사이 보드라운 살이 한없이 여려서 와락 안아주고 싶었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사람이 책임감과 고집에 갇혀 스스로를 속박하며 웅크리느라 굽어 말았던 그 어깨를 악력 좋은 내 손으로 한껏 펴주고 싶었다.
“와, 오늘 정말 최고로 재밌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내내 엄마는 상기되어 있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흔드는 아빠에게 다가가 나머지 손을 잡았다. 나는 아빠가 그날의 달빛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안다. 쨍쨍한 해처럼 기세 좋게 오늘의 일정을 주어진 시간 내에 해내라고 재촉하는 딸을 앞세우고 진짜로 당신이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걸 하라며 저무는 시간 없이 다시 해가 떠오를 때까지 묵묵히 자리를 대신 맡아주는 사람. 아빠는 나의 셰도우 여행 메이트였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의견을 내는 법 없이 그저 엄마가 즐거워하면 그걸로 된 사람. 그 마음을 나도 함께 느꼈던 밤이었다. 네르하에서 마주한 전에 만난 적 없던 사랑스러운 그 소녀를 앞으로도 종종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마치 아빠가 처음 만났을 때 엄마를 보았을 시선으로 엄마의 옆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세 개의 달이 엄마를 감싸고 어루만졌던 밤. 한낯의 열기가 보드라운 훈풍이 되어 오래된 도시의 골목들을 누비던 그날 밤의 달콤함을 나는 두고두고 음미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