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같은 아빠에게
어떤 가보지 못한 곳은 늘 마음속에 '언젠가는'을 품게 하지만 일본은 나에게 그런 곳은 아니었다.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는데 너무 금방 도착해 버리는 거리에 특별히 꽂혔던 애니메이션도 없었고 유명한 스트릿패션 브랜드들도 내겐 별로 안 어울렸다. 네온사인이 현란한 거리의 이미지와 유수의 스페셜티 커피도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 보니 매번 다른 여행지에 밀려 첫 일본을 3년 전, 서른여덞에야 경험하게 되었다. 별 기대 없이 갔던 여행에서 꽤 여러 순간 예상치 못한 만족감을 느꼈는데 그중 제일은 '하코네 はこね'의 료칸이었다.
하코네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유황이 흐르는 오와쿠다니 화산을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고 어쩐지 영험해 보이는 아시노 호수를 ‘해적선’ 유람선을 타고 건너보고 덜컹덜컹 비탈을 오르는 산악열차를 탔다. 처음 보는 일본의 숲은 바다 하나 건넜다고 우리나라와 식생이 달라서 명도가 훨씬 낮게 느껴졌다. 나무의 짙푸른 잎들은 햇빛을 잠식했고 잿빛이 감도는 그루터기 아래는 축축하고 푹신한 이끼가 몇 겹으로 덮여 있었다. 마치 테라리움 속에 들어와 있는 듯 신비로웠다. 그 산골의 수십 년 된 전통 료칸이 주는 감성은 특별했다. 삐걱대는 다다미 바닥을 디디는 감촉, 검게 세월이 삭아든 목재 건물이 채 막지 못한 웃풍을 이겨내는 코타츠의 후끈함, 천연수 그대로의 온도인 뜨거운 노천탕에 몸을 담갔을 때의 저릿함이 모두 여기에서만 누릴 수 있는 귀한 유산처럼 느껴졌다.
아빠는 엄마의 하나 더
그렇게 하코네는 내 마음속에 '다시 한번 더'로 기록되었다. 이번에는 남편과 함께였으니 다음번에는 부모님과 함께 와야지 하면서. 사실 나는 부모님과의 여행을 계획할 때 무던한 아빠보다는 까탈스러운 엄마 위주로 생각하는 편이다. 엄마가 좋아하면 아빠도 그걸로 된 사람이라 내 입장에서는 일거양득인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략의 맹점은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아빠도 같이 흥미를 잃는다는 데에 있다. 작년 3월, 5박 6일의 일정으로 부모님과 다시 가게 된 도쿄와 하코네 여행은 애석하게도 음식에 있어서는 일거양실의 케이스였다.
엄마는 초밥을 좋아한다. 일본의 초밥은 밥알도 고슬고슬하고 사리도 큼지막한데 종류도 훨씬 다양했다. 게다가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초밥은 계란초밥인데 일본의 타마고는 달큰하고 보드라워 꼭 맛 보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도쿄의 유명한 스시집에서 대망의 본토 초밥을 처음 맛본 엄마 아빠의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일본의 회는 대부분 숙성회인데 부모님은 평생 먹어온 활어회 스타일에 더 익숙한 것이었다. 2시간 넘게 웨이팅 하면서도 일단 먹기만 하면 그 노고가 상쇄될 것이라고 믿었던 기대는 허무하게 꺾여버렸다. 그럴 수 있어. 그럼 야끼니꾸로 만회하자 싶었지만 엄마 아빠는 특상 우설의 비주얼에 이미 먹기도 전에 질색을 했다. 그나마 등심을 몇 점 먹으면서 양평의 숯불구이집이 더 맛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솥밥과 야끼도리를 잘하는 집에 갔을 때는 엄마가 아빠에게 여행 내내 술을 마신다고 타박해서 맥주 한 잔을 아끼고 아껴가며 먹으려니 가뜩이나 닭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빠가 많이 드시질 못했다. 이상했다. 전에 내가 왔을 때 여긴 분명히 우리 엄마 아빠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곳들이 하나같이 두 분에게 불통이었다. 두 분이 일본여행 동안 가장 맛있게 드셨던 건 하코네 시장에서 파는 가마보코였다. 어육의 함유량이 높아 쫄깃쫄깃한 식감이 좋고 짭조름해 맥주와의 궁합도 최고였다. 때문에 그날 저녁 하코네 료칸에서 융숭한 대접과 함께 먹었던 가이세키는 한낱 가마보코와 비교당하며 최악의 식사로 꼽혔는데 식사 내내 엄마는 아기자기한 도자기와 일본 특유의 장식적인 담음새를 감상했고 아빠는 따뜻한 사케 한 잔에 기대 두 분 표현을 빌면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음식들을 먹어냈다.
하지만 아빠는 그 와중에도 엄마가 조금이라도 입맛에 맞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본인 몫도 엄마 앞으로 밀어두었다. 가끔 아빠를 보면 딸인 나보다 엄마를 더 자식처럼 살뜰히 챙기는 게 신기하다. 아빠는 예전부터 엄마가 차려준 식사를 먹을 때 본인이 좋아하는 게 있으면 나와 동생에게 ‘너희 이거 더 먹을 거냐?’라고 물어보곤 했다. 우리가 아빠의 마음을 눈치채고 ‘아니, 우린 다 먹었어!’라고 하면 그제야 마음 편히 음미했다. 하지만 우리는 뒤돌아서 역시 엄마와 아빠는 다르다며 엄마라면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하기 전에 우리 쪽으로 찬그릇을 밀어 두고 아예 먹고 싶다는 뜻 자체를 내비치지 않았을 텐데. 그랬다. 그런 아빠가 마치 엄마처럼 행동하는 경우는 오직 엄마에게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취향을 먼저 파악하고 배려하는 것을 연습하지 못했다. 아빠는 늘 원하는 바를 우리로 하여금 눈치채게 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떠올려보면 아빠는 한 번도 또렷하게 ’ 난 이게 좋아 ‘ 나 ’ 난 이건 싫어 ‘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응, 뭐...‘ 가 다였다. 반면 엄마는 늘 의사가 분명했다. 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좋아하기도 하고 거친 말로 거부를 넘어선 혐오를 표현하기도 한다. 엄마가 주는 당근의 리액션에 길들여진 나는 매번 무언가를 선택할 때 엄마의 반응을 먼저 떠올린다. ’ 엄마가 좋아하겠지?‘라는 생각의 다음에 ’ 아빠는 좋아할까?‘ 가 아니라 ’ 엄마가 좋아하면 아빠도 좋아하니까 ‘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나에게 엄마의 플러스 원이 되어 있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아빠는 원래 사우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이 또한 몰랐다. 늘 가족끼리 사우나를 가면 군소리 없이 함께했던 아빠니까. 추운 것도 더운 것도 싫어하는 아빠에게 사우나는 덥고 습하고 땀나고 귀찮은 일이었다. 그날 하코네 료칸에서도 석식을 먹은 후 온천을 하러 가자는 부추김에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키던 아빠가 생각난다. 그러면서도 유카타를 입고 게다를 신고 객실을 나서기 전에 일본 검객 흉내를 내며 엄마를 자지러지게 웃게 했다. 펄펄 끓는 온천수에 조심조심 하반신만 담그고 있는 아빠를 보며 엄마가 여기까지 와서 제대로 즐겨야지 뭐 하는 거냐며 목까지 푹 들어가라고 한마디 하자 ’앗 뜨뜨‘하면서 겨우겨우 장신의 몸을 탕 안에 욱여넣는 아빠였다.(가족탕을 이용했기 때문에 수영복을 입고 함께 들어갔다) 수온에 적응을 하고 나자 탕 안에 있는 기분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밤공기는 서늘했고 수증기를 머금은 나뭇가지의 향이 짙게 풍겼다. 나는 이미 한 번 와봤던 곳임에도 처음인 듯 생경했다. 료칸이 위치한 산 중턱 아래로 우리가 타고 올라왔을 산악열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엄마는 일본 음식은 입에 안 맞았어도 도쿄를 보니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선진국이었다는 게 실감이 나고 하코네의 자연을 보니 왜 일본의 문화에 신령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지 알 것 같다고 했다. 한 번쯤은 와 볼만 한 것 같다면서. 하지만 아빠의 소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또 별 말 없었던 것일 테다. 다만 아빠의 웃음이 생생하다. 엄마를 웃게 하면서 낄낄 거리던 웃음, 엄마에게 타박받으면서 실실 흘리던 웃음, 엄마가 좋아하는 걸 보면서 혼자 입꼬리를 실룩이던 웃음.
그러다가 문득 이 기묘한 연결고리를 깨닫게 된 것이었다. 나에게서 엄마로 향한 관심이 엄마로부터 아빠에게로 파생되는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내가 그동안의 몇 번의 여행에서 엄마를 위해 신경 썼던 만큼 아빠를 고려한 적이 얼마나 될까?
료칸을 다녀온 뒤 신기한 일이 생겼다. 수년 동안 아빠의 등에 검버섯처럼 피어있던 어루러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엄마는 이게 다 그 온천수 덕이라고 믿었다. 아마 그 물의 어떤 성분이 곰팡이균을 다 소멸시킨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아빠와 살성이 닮아 같은 증상이 있다. 나의 경우엔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 눈에 띄게 생겼다가 겨울이 시작할 때쯤 사그라든다. 무좀균과 유사한 종류라 약을 바르면 금방 옅어지긴 해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두 번이나 같은 료칸을 다녀왔지만 나의 어루러기는 아직 그대로인데, 아빠에겐 효험이 있었나 보다. 아빠는 이것만으로도 일본여행은 제 값을 했다며 좋아하신다.
내가 전혀 의도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본여행의 수혜였다. 온천수가 나 대신 아빠의 등을 쓰다듬어 준 것 같았다. 늘 엄마 등 뒤에서 부스러기처럼 떨어지는 딸내미의 관심을 그러모아 등에 새긴 것처럼 다닥다닥 얼룩을 지니고 있던 아빠를. 못난 딸의 등은 패스하고 오로지 아빠만을 위해 아빠에게 필요한 것을 주었나 보다.
하코네의 솔선수범 이후, 나는 아빠를 +1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빠가 좋아하는 것을 살피고 아빠가 요청하기 전에 먼저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먹는 것이든 가는 곳이든 아빠 위주로 무언가를 할 때 엄마 역시 아빠처럼 당신의 배우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기꺼이 +1의 역할이 되어주었다. 내 입장에서는 여전히 일거양득이었다. 부모에게 자식은 둘이면 둘만큼의 수고가 들지만 자식에게 부모는 둘이어도 하나만큼의 노력밖에 들지 않는다는 걸, 이렇게 또 불공정한 관계라는 걸 깨닫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