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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 바닷속에서 아빠 안경 찾기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 가끔 초인이 된다

by 바다기린
늘 시선은 바다로 향했다


삼고초려 끝에 가게 된 ‘니스(Nice)'였다.

한 번은 파리에 있는 동생에게 갔다가 동생이 며칠 휴가를 내 함께 라벤더를 보기 위해 프로방스 지역에 갔었지만 일정 상 코트다쥐르 지역까지 방문할 수는 없었다.

또 한 번은 남편과 동생, 부모님과 함께 가기로 미리 계획을 세웠지만 갑작스러운 홍수로 파리에서 기차부터 타지 못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엄마 아빠와 포르투갈에서부터 스페인 남부를 거쳐 프랑스 남부를 여행했던 3주 간의 여정에서 나는 드디어 니스에 올 수 있었다.

세상 어느 곳에도 같은 모습의 바다는 없다지만 니스의 바다와 마주 선 감정은 뭐랄까. 남녀불문하고 세상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미모의 누군가가 있다면 그와 어떤 인연을 맺지는 않더라도 실제로 본 것만으로도 황홀한 기분이 드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크, 이 맛이지!


2018년 7월 초, 바캉스 기간이었고 월드컵은 4강전으로 치달았다. 프랑스는 이미 우승후보로 유력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 사람들도 들떠 있었고 거리는 활기와 약간의 광기에 취해 있었다. 건조한 공기에 드센 햇빛이 오븐처럼 달구어 기온은 30도 후반까지 치솟았다. 이 모든 열기를 등지고 니스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등을 비탈 삼아 모든 소음과 분주가 기어오르다가 땅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망대한 수평선으로부터 광대한 해안선으로 밀려오던 파도가 자갈에 부딪쳐 하얀 포말로 툭툭 끊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나와 바다 사이에는 파도 소리만 맴돌았다. 바다를 오래 보고 싶어 해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영국인의 산책로(Promenade des Anglai )‘를 걸었다. 19세기 영국 사람들은 휴양지로 니스를 즐겨 찾으면서 급기야 구두를 신고도 산책하기 좋은 평편한 길을 만드는 데 상당한 비용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들보다 즐길 것이 많은 시대에, 그들보다 날씨가 좋은 곳에 살고 있지만 니스를 향한 그 마음을 이해할만했다. 이런 곳에선 어쩐지 ‘코로나’ 맥주를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를 벤치에 앉혀두고 근방 마트에서 코로나 두 병을 샀다. 점원에게 병마개를 따 달라고 해서 양손에 들고 잰걸음으로 해변으로 향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엄마에게는 음료수를 드리고 아빠와 풍경을 안주 삼아 맥주를 들이켰다. 부서지는 파도 덕에 눈으로도 탄산이 보글보글 이는 듯했다.


니스 바다를 탐한 죄

니스에 있는 5일 간 근교의 여러 곳을 들렀다. 에즈빌리지, 생폴드방스, 앙티브, 모나코. 택시나 버스를 타고 언덕을 넘을 때마다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니스 바다의 모습은 오고 가는 길 마저 목적지에 버금가는 감동을 선사했다. 이렇게 눈으로만 봐서는 안 되겠다! 저 바다에 몸을 담가야겠어.

바라만 봐도 황홀한 사람 곁에 머물 기회가 생기면 친밀해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듯, 자연스럽게 니스 바다를 겪고 싶어졌다. 이동 없이 니스에만 머물던 날, 우리는 낮 한때를 해변에서 보내기로 하고 간단히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그날은 웬일인지 네르하에서 소극적이었던 아빠도 바다에 들어가 보겠다고 했다. 여행의 막바지여서 그랬을까, 아님 아빠 눈에도 니스의 바다는 거부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었을까.


짧았던 혼자만의 여유


먼저 한바탕 물놀이를 즐긴 내가 짐을 지키고 앉아 있고 엄마와 아빠가 바다로 향했다. 아빠가 제 발로 물에 들어가는 광경이라니 신기해서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여느 연인들처럼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 발 한 발.. 엄마가 아빠를 이끌고 내딛음에 따라 종아리, 허벅지, 허리춤까지 바다에 잠겼다. 엄마가 무어라 말하는 입모양이 보였고 아빠가 물속에 머리를 담갔다. 수영을 해보려고 그러나?


...???!!!!


엄마의 팔이 바닷물에 빨랫감을 헹구듯 분주하게 펄럭였다. 그 동작에 맞춰 아빠의 등이 떠올랐다 잠겼다 했다. 순식간이라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곧 아빠가 물 위로 건져내 지듯 올라왔다. 엄마는 일그러진 표정 끝에 웃음을 터뜨렸지만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 아빠를 보고 카메라를 껐다.


“아빠, 왜 벌써 나와?”

“그.. 있잖아.. 안경을 빠뜨렸어.”


이게 무슨 소리지.

뒤따라 온 엄마가 상황을 설명했다.


“아니, 아빠한테 수영 알려준다고 하다가 늬 아빠가 냅다 머리부터 물에 담그는 바람에..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말야, 그래놓고 당황해서 혼자 버둥거리지 뭐야. 첨엔 장난인줄 알았는데 진짜 물에 빠진 거더라고. 그냥 다리 딛고 일어서면 허리 밖에 안 오는 데를.. 그럴 생각도 못하고 완전 패닉이 돼서는. 내가 겨우 일으켜 세웠는데 난리 피우는 통에 안경이 떨어진 거야. 너네 아빠 죽을 뻔했어..! 못살아 진짜!”


아빠는 고등학교 야구부 출신이다. 훈련차 바다에 갔을 때 하필이면 아빠가 디딘 곳이 바닷속에서 급하게 경사가 진 깊은 곳이었고 수영을 할 줄 모르던 아빠는 허우적대다가 겨우 구출되었다고 한다. 그날 부로 아빠는 웬만하면 물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운동신경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 물속에서는 뜨지도 못하는 것은 모두 그때의 트라우마 탓이다. 엄마 표현대로 아빠는 “접싯물에 코 박고도 빠져 죽을 사람”인데 니스 바다에 홀려 세이렌처럼 둘이서 아빠를 꼬신 것이다. 그 대가로 엄마는 본인보다 20센티나 큰 장신을 곧추세우느라 진땀을 뺐다. 아무래도 내 업보는 잃어버린 안경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부모의 불편은 자녀의 불안이 된다

아빠에겐 안경이 여러 개 있다. 일반 렌즈의 안경은 텔레비전을 볼 때나 일상생활에서, 다초점 렌즈의 안경은 핸드폰이나 책 등 가까이 있는 걸 볼 때, 카멜레온 렌즈의 안경은 운전하거나 야외 활동을 할 때, 여기에 선글라스도 따로. 이번 여행에는 선글라스 대신 카멜레온 안경(어두운 곳에선 투명해지고 빛이 있는 곳에서 색이 생기는)을 가져왔는데 바로 그 안경이 꼬로록 한 것이었다. 아빠와 마주 선 채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당장 그 안경이 없다고 해도 다른 안경이 있으니까 아빠가 눈이 안 보이는 불상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선글라스를 새로 살 수는 없었다. 아빠는 선글라스도 도수를 넣어 맞추어야 하는데 여행지에서 며칠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남은 여행 기간 동안 아빠는 내내 투덜거릴 게 뻔했다. 햇빛을 싫어하는 아빠는 늘 선글라스에 모자에 양산까지 쓰고도 덥다, 눈이 부시다 했기 때문에.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바다로 튀어갔다. 아빠는 등 뒤에서 그걸 어떻게 찾을 거냐고 포기하라고 소리쳤지만 나를 잡으러 오진 않았다. 어쩐지 아빠가 나를 믿(고 싶어하)는 것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뒤따라 온 엄마가 아까 아빠가 빠졌던(?) 지점을 떠올리며 나를 이끌었다. 물은 투명했고 모래 바닥이 비치긴 했지만 물결로 일렁이는 표면 때문에 눈이 어른거려 오래 집중하기 어려웠다. 마침 옆에 한국인 모녀가 수영을 하고 있었는데 딸이 물안경을 끼고 있었다. 저거다...!


“정말 죄송하지만 물속에 뭘 빠뜨려서 찾아야 하는데 물안경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안경을 내밀었다. 그녀의 인내심이 허락할 동안 재빨리 수색을 해야 한다. 나는 해녀처럼 최소한의 날숨만 쉬며 머리를 처박고 모래바닥을 미친 듯이 눈으로 훑었다. 물 속도 일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멀미가 없는데, 멀미가 날 것 같았다. 파도는 자꾸 몸을 떠밀고 좌표도 없으니 여기가 저긴 지 저기가 여긴 지 봤던 곳을 또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른 채로 간절하게. 물안경을 빌려준 친절한 그녀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괜스레 뒤통수가 따가워 얼마 못 가 그녀에게 물안경을 반납했다. 함께 찾던 엄마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짐을 지키느라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고개만 쭉 빼고 나를 지켜보던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엄마를 아빠 곁으로 돌려보냈다.


“아빠, 여기 근방이 맞지?”

“응, 거기 주변이야! 멀리 가지 마. 이미 떠밀려 갔을 거야. 그만 찾고 이리 와.”


나는 뭐 하나에 꽂히면 지독하게 집요하다. 아빠를 닮았다. 아빠도 그걸 알면서, 저런 의미 없는 말을 한다.

엄마 말마따나 ‘죽을뻔한’ 아빠를 대신해 죽을 각오로 바다와 맞짱을 뜨기로 했다. 이제 나는 전략을 바꿨다. 잠수를 한 상태로 눈을 뜰 수는 없으니 물 밖에서는 눈으로, 물 안에서는 발로 더듬기 시작했다. 발 끝의 촉감에 집중하면서 지뢰를 탐지하듯 건너뛰는 지점이 없도록 한 발 앞에 한 발을 꼼꼼히 내디뎠다. 그러면서도 점점 이미 안경이 저 멀리 지중해 중턱까지 넘어갔을 것을 인정해야 하나 싶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 금방 곱디고운 모래가 빠져나간 자리에 가느다랗고 단단한 이물감이 집혔다.

선득한 직감에 이걸 놓칠세라 발가락에 꼭 힘을 주었다. 그대로 다리를 들어 올려 손으로 받아낸 그것은 세상에, 아빠 안경이었다!!


나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 못했다. 망망대해에서 안경 찾기라니. 바늘귀에 낙타 통과하기만큼이나 무모한 도전이었지 않은가. 하지만 안경은 어디 부러진 데도 없이 온전히 내 손아귀에, 아니 발가락에 들어왔다!


“찾았다아아아아!!!!!!!”


그 해변의 모든 사람이 돌아볼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쳤다.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유레카!!”라고 외치던 순간처럼 허공에 안경을 휘날리며 아빠와 엄마를 향해 웃어 보였다. 두 사람이 나를 보는 표정은 진정 놀라움이었다. 하지만 나를 압도한 것은 안도감이었다. 이제 남은 여행 기간 동안 불편해하는 아빠를 보며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렇게 기를 쓰고 안경을 찾아 헤맸던 것은 어쩌면 아빠가 아닌 나를 위해서였을 지도 모른다. 아빠가 안경이 없다고 툴툴대는 것쯤은 누구나 할 법한 수준의 불평이었을 거다. 그렇지만 그 여행을 주도한 것이 나였기에, 성공적인 여행의 마무리를 위해 이 해프닝을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그 안경을 포기한다고 했어도 아빠는 나를 탓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여행 내내 스스로를 탓했을 테지. 나는 그게 무서웠다. 아빠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수영은 시도도 못해보고 안경만 잃어버린 곳으로 니스의 바다를 기억하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나이를 들수록 부모님의 작은 불편도 나에게는 불안으로 확대되어 다가오는 듯 하다. 진짜로 부모님이 나에게 원하는 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내가 해주고 싶은 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더 집착한다.


아빠의 안경 찾기 에피소드는 지금까지도 우리 집안의 전설처럼 나의 무용담이 되어 간간히 회자되고 있다.

지중해 바다에 몸을 던진 심청이 같은 딸 덕분에 태양 아래 두 눈을 번쩍 뜰 수 있었던, 심봉사가 될 뻔한 아빠는 그때마다 웃음 섞인 타박의 대상이 된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렇게나 생색을 냈던 것이 조금 머쓱하다. 그래도 아직까지 아빠가 그 안경을 잘 쓰고 계시니, 누구의 공과 탓을 따질 것 없이 잘 된 일이다.

바다가 아빠의 안경을 멀리 가져가지 않고 그 자리에 놓아줘서 고맙다. 그날 우리의 옆에서 수영을 즐기던 모녀분들도 고맙고, 거슬러 올라 어릴 때 수영을 배우다 포기하려던 나를 포기하지 않았던 엄마 아빠에게도 고맙다.


니스 바다는 그렇게 나에게 오감으로 깊이 남아 영영 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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