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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할배를 찾아 떠난 경주

내겐 이미 떡두꺼비 같은 남편이 있다

by 바다기린



하루하루 놀라움을 갱신하는 더위가 지독한 이 여름에 떠올리기엔 실감조차 나지 않는 작년 12월의 매섭게 추운 날이었다. 나와 남편은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고민 끝에 경주에 있는 유명한 한의원에 진료를 보러 가기로 한 것이다. 아이가 잘 생기는 한약으로 입소문이 난 그곳은 지금은 네이버예약이 가능하지만 올 초만 해도 오픈 한참 전에 줄을 서야만 그날 진료를 볼까 말까 할 정도로 웨이팅이 대단했다(후기를 보니 네이버 예약도 눈치게임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주말에는 전날부터 텐트를 치고 기다린다는데 차마 그렇게까지 할 엄두는 나지 않아 평일 진료에 도전해 볼 요량이었다.



아직 만나지 못한 너를 위해


평소 한약의 효능에 대해 별로 신뢰하지 않는 남편이 새벽부터 장거리 운전을 감수하며 경주에 있는 한의원까지 가기로 결심한 것은 나에 대한 배려였다. 우리는 햇수로 4년째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고 있는데 두 번의 화학적 유산 이후에는 PGT 테스트(5일 배양 수정란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병행하고 있다. 4번의 난자채취 후 가까스로 얻은 단 하나의 정상 배아를 이식했을 때 우리는 임신을 확신했었다. 그렇게 동그랗고 예쁜 배아가 착상조차 되지 않고 내 몸 어딘가에서 사라져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언제 또다시 정상 배아가 나올지 알 수 없지만 다음번 이식할 때는 적어도 착상이 더 잘 되는 몸 상태를 만들어두고 싶었다. 한약을 먹어보고 싶다는 내 말에 기왕 먹는 거 유명한 데서 먹자고 먼저 제안한 것도 남편이었다.


전날 내린 비로 블랙아이스가 있을 수 있다는 예보에 뻥 뚫린 고속도로를 조심조심 운전했지만 남편의 앙다문 입꼬리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다른 곳에서 기인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험관을 하는 내내 남편이 나에게 하는 말들이 있다.


"나는 여보랑 둘이 살아도 괜찮아. 아이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전혀 상관없어."

"네가 주사 맞고 약 먹고 고생하는 거 보는 게 너무 힘들어. 그만하면 안 될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직 포기할 용기가 없는 나의 마음을 헤아리느라 결국은 또 이렇게 하자는 대로 따라나선 그의 머릿속은 온통, 혹시 오늘 진료를 못 받게 되면 내가 좌절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신나는 노래를 틀어 두었지만 바깥의 적막이 차 안까지 스며들어 오는 듯했다. 일부러 가벼운 농담을 하며 여느 때 여행을 가는 것 같은 기분을 내보려 했지만 차분하다 못해 무거운 새벽의 공기에 괜히 어깨가 뻐근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한 번 들렀다. 차 문을 여는 순간 추위가 깨진 유리 파편처럼 얼굴을 찔렀다. 소스라치게 놀라 화장실까지 뛰어갔다 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 문을 열고 시트에 앉아 연결동작처럼 '엉뜨'를 켜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터졌다. 도착해서 한의원이 예약 접수를 받을 때까지 노상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이 잠깐의 추위에도 죽겠다고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라니.


"와 씨, 우리 어쩌지? 망했다."


한바탕 자조한 덕일까, 히터 기운이 빠져나가고 환기가 된 덕일까, 한결 가벼워진 차 안의 공기에 경주까지 남은 절반 정도의 거리가 이미 달려온 길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이제 막 어스름이 걷힌 시각 도착한 한의원 앞에는 역시나 먼저 온 팀이 꽤 있었다. 남편은 나더러 차에 있으라고 했지만 여태 운전하고 온 남편 혼자 세워둘 수 없었던 나는 여벌로 챙겨 온 패딩을 담요 삼아 두르고 간이의자를 펼쳐 앉았다. 우리 뒤로도 속속 줄이 늘어났다. 바로 뒤에 있던 커플은 우리보다 예닐곱 살은 더 어려 보였는데 보이는 모습도 그렇고 기다리는 내내 대화가 멈추지 않는 것도 그렇고 부부라기보단 연인 같이 보였다.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벌써 이런곳(?)에 와 있구나.. 아닌가, 우리가 되려 안일했던 건가. 대화 내용도 임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경주의 맛집과 볼거리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커플 덕에 나도 우리가 한의원을 핑계로 경주 여행을 온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 또한 오늘내일의 일정에 대한 계획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경주 여행을 염두에 두었으면서 내려오는 내내 한의원 생각만 하느라 그렇게 마음이 무거웠나 보다.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접수는 빠르게 시작되었고 다행히 우리는 오전 진료를 예약할 수 있었다. 11시 30분에 맞춰 다시 오라는 안내를 받고 근처에 있는 교리김밥 본점에 가서 김밥과 잔치국수를 먹었다. 뜨끈한 국물로 속을 채운 데다 해가 뜨고 나자 날씨도 많이 풀려서 산책 삼아 대릉원을 한 바퀴 돌았다. 남편은 이렇게 이른 아침 시간에 경주의 능 사이를 걷고 있다니 신기하다며 잡고 있던 손을 흔들었다.


"우리 오늘 점심도 맛있는 거 먹고 재밌게 놀자!"


남편은 천진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한의원 얼른 찍고 신나게 놀고먹자!



시간 맞춰 다시 한의원에 갔고 드디어 현재 이 한의원의 대표인 5대 원장님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4대 원장님인 현재 원장님의 아버지가 소위 '삼신할배'로 유명해서인데 그분은 이제 연세가 많아 주말에만 진료를 보신다고 한다. 어차피 한약의 레시피는 전수되는 것일 테니 삼신할배까진 아니더라도 삼신아저씨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손목을 내밀었다.


"특별히 안 좋은 데는 없는데 그냥 노화 때문이에요. 나이가 제일 문제죠."


시험관을 하면서도 들었던 이야기를 똑같이 들을 줄이야.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약봉투엔 39세라고 찍히는데도 임신을 하기에는 '문제인' 나이인가 보다. 나는 서른이 될 때도, 마흔이 될 때도 나이에 대한 체감으로 우울했던 적이 없는데 임신을 계획하면서부터는 내가 너무 늙어버렸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진료를 보고 나오면서 아까 뒷줄에 있던 그 커플을 또 마주쳤다. 저 커플도 5분도 채 안 되는 진료를 보고 비슷한 약을 지어가겠지. 그래도 나보다는 오래 고생하지 말고 얼른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으면, 하고 속으로 바랐다.


이미 내 곁에 있는 너를 위해


"이제 한약 먹으면 커피도 못 마시고 술도 못 마시고, 돼지고기, 닭고기, 밀가루도 안된대."

"... 그럼 뭐 먹고살아?"

"그러게. 그런 의미에서 점심은 화덕피자 어때?"

"콜!!"


남편과 나는 그날 원 없이 먹고 마셨다. 내가 찾아둔 피자집, 카페, 고깃집까지 실패 없이 맛있어서 단순한 우리는 한의원 따위 새까맣게 잊고 신이 났다.


"난 있지, 여보랑 이렇게 함께 있는 게 제일 행복해."

하루의 끝에 남편이 고백처럼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눈앞에 '동궁과 월지'의 야경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백 년 전 이곳은 왕족의 소유였다지. 그 후손들이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그들이 머물렀던 공간이다. 내가 만약 아이를 갖지 못한다고 해도 두고두고 감상할 유산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내가 남길 수 있는 유산은 무엇일까?


지금은 아이를 갖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느라 일도 쉬고 있는 입장에서 어떤 커리어적인 업적을 꿈꾸는 것은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유산이라고 하기엔 거창하겠지만 우리 둘의 기념비 정도는 될 것 같은, 부부라는 이름으로 세운 동고동락의 유대. 때로는 치열하게 싸우기도 하지만 어떤 날엔 이렇게 똘똘 뭉쳐 서로를 독려할 수 있는 마음. 그저 서로가 있어 안심이 되는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겨낼 수 있으리라. 무한히 사랑할 누군가를 결국 만날 수 없게 되더라도, 그 기다림 역시 곁에 당신이 없더라면 애초에 없었을 바람이라는 걸 떠올린다.


3주 뒤, 한의원에서 배달된 약을 다 먹고 또 한 재를 추가로 주문해 먹었지만 아직 우리에게 삼신할아버지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겪지 않은 명현현상을 두 번 모두 혼자 겪고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약을 먹어 준 남편이 기특하다. 그 겨울 경주에서 느낀 남편의 온기가 내내 가슴에 머물러 이후로는 시험관의 과정에 전보다 초연해졌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단념을 하는 과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때. 이미 나에겐 사랑하고 싶은만큼 사랑할 수 있는 남편이 있는 걸. 계속 이렇게 사랑스럽기만 하다면, 덜 아쉬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남편, 계속 잘하자?


결혼 13년 차,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자녀처럼 여기는 경지에까지 이르며 아프고, 아쉽고, 안도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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