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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에 빠진 마음을 바다에서 건졌다

혼자 부산에 간 진짜 이유

by 바다기린



작년 4월, 혼자 부산으로 떠났다. 그 무렵 나는 모든 것이 힘겨웠다.

우리 부부는 1년 가까이 전에 없던 갈등을 겪고 있었다. 평소에는 변함없이 사이좋게 지내다가도 갑자기 크게 다투는 일이 자주 반복되었다. 물론 결혼 생활 10년 동안 여러 번 싸웠지만 이때만큼 본격적으로 ‘전쟁’을 치른 적은 없었다. 그 시기에 나는 화해를 한 후에도 마음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싸우면서 들었던 모진 말들과 남편의 화내는 표정, 몸짓이 잔상으로 남아 문득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의 싸움은 보통 내가 실수로 남편의 트리거를 건드리고, 같은 실수를 또 하는 내가 본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라 믿는 남편이 총알처럼 분노를 튕겨 내며 순식간에 벌어진다. 나는 남편이 왜 화가 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남편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머물고 싶은 집, 머물 데 없는 마음

우리에게 그 전쟁의 서막은 10년 살던 집의 ‘리모델링’이었다. 결혼할 때 무리해서(그래도 그때 무리하길 잘했지) 자가로 시작하면서 도무지 인테리어 비용까지 마련할 여력이 없었다. 20년이 넘은 아파트의 주방에는 강렬한 빨간색의 하부장과 상부장이 있었고 두꺼운 체리색 몰딩은 작은 집을 더 좁아 보이게 했다. 빡빡한 알루미늄 샤시는 웃풍이 감돌았고 화장실 바닥의 타일은 군데군데 어긋나 있었다. 그래도 곧 더 큰 평수로 이사 갈 거라고 생각하며 참았는데 몇 년이 지나도 도무지 각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사는 동네는 서울 강서구의 조용한 주거 지역이다. 사무/ 상업 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마곡지구와 오래된 교육 인프라가 갖춰진 목동 사이에 끼어 있는 위치이다 보니 투자 목적의 부동산 시장에서는 소외되어 있는 곳이지만 살기에는 호젓하고 평온하다. 마트나 주민센터, 도서관, 체육시설 등 생활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있고 우리 아파트 바로 앞은 한강이라 산책하기에도 올림픽대로를 타기에도 좋아 입지도 괜찮은 편이다. 그럼에도 집 값은 많이 오르지 않아 우리 집을 팔고 서울 내에서 평수를 키워 이사를 가기에는 무리였다. 대출을 최소한으로 받으려면 이번에도 인테리어는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리모델링을 선택했고 나는 꾹꾹 참아왔던 인테리어 로망을 맘껏 펼쳤다. 시공을 하면서 이미 예산을 초과했지만 새 가구와 소품을 채워 인테리어를 완성하고 싶었던 나는 남편과 상의 없이 물건들을 사들였다. 여유자금을 모두 소진했지만 마이너스는 아니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한 나와는 달리 남편은 간당간당한 잔고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더욱이 인테리어 컨셉은 전적으로 내 취향에 따른 것이었으니 공감대가 없었던 것도 컸다. 이 일을 계기로 결혼생활 내내 서로 달랐던 경제관념이 화두로 떠올랐고 싸움이 길어지면서 점점 서로에게 쌓여왔던 불만을 하나씩 수면 위로 길어내어 철저히 따지고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부부싸움에는 표면적 이유와 심층적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세 살 위인 남편은 자기 확신이 강한 타입이다. 양육자의 풍족한 지원과 밀착된 관심을 받고 자란 나와는 다르게 독립적(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자란 그는 뭐든 스스로 계획하고 판단하는 데 익숙했다. 운 좋게도 그 결과는 ‘자수성가’라고 말할 법한 성과를 내어 왔다. 반면에 나는 이름 대면 아는 서울 4년제 대학교 나온 것 외엔 뾰족히 이룬 것 없이 남들 하는 만큼만 딱 하고 살아왔으니 우리 부모님 입장에서는 본전도 못 찾은 투자였다. 결혼 후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준 남편 덕분에 나는 변함없이 ‘믿을 구석’이 있는 삶을 살아왔다. 어딘가에서 본 글에 따르면 우리 남편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믿음직스럽고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일수록 신뢰에 기반한 좋은 관계를 만나면 ‘정상적 퇴행’을 하게 된다고 한다. 바깥에서는 아주 어른스러운 척하고 돌아와서 중요한 대상자에겐 어리광을 피운다는 것이다. 나는 그 어리광을 ‘애교’로 받아들였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재밌게도 이야기하고 내 품을 파고드는 강아지 같은 남편을 맘껏 귀여워하면서도 남편이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남편에게 의지했다. 하지만 남편에게도 배우자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본인이 조금 허술해도, 실수해도 우리 가정에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믿을만한 아내였으면 하고 바랐다. 지금이야 그 지난한 싸움을 거치고 회복하며 헤아리게 된 마음이지만 그때는 남편이 두렵기만 했다. 언제 또 화를 낼지, 얼마나 또 나를 상처 줄지 몰라 남편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도 겉으로만 함께 웃을 뿐이었다.


그 싸움에 지쳐버렸을 때 나는 잠시라도 집을 떠나 있고 싶어졌다. 이 집 때문이야, 모든 게 다 리모델링 때문이야. 여기 있기 싫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남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분명히 그는 ‘나도 참고 있는데 네가 왜 그래?‘ 라거나 ’ 넌 네 잘못을 생각 안 하는 거야?‘라고 몰아붙일 것 같았다.


“H네 남편이 출장을 가서 집이 빈대. 하루 와서 자고 가라고 하던데?”


때마침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남편은 예상했던 대로 별다른 이견 없이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웬만하면 말리는 법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나는 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김포공항이 가까워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친구는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카페로 오기로 했다. 오랜만에 혼자 여행이라니 조금 설레기도 했다. 해리단길에 있는 좋아하는 카페에서 진한 라떼 한 잔을 마시며 점심 먹을 식당의 오픈 시간을 기다렸다. 어플로 예약하기가 안 되는 곳이라 미리 가게 앞에 가 줄을 섰다. 남편이 싫어하는 일인데, 남편 없이 혼자 오니 눈치 볼 일 없어 좋았다. 부산에 사는 친구도 여기는 처음 와 본다며 너는 서울 사람이 어떻게 나보다 부산을 더 잘 아냐고 혀를 찼다. 식사를 마치고 함께 산책을 한 뒤 친구는 나더러 계획한 일정 마치고 집으로 오라고 하고 딸을 데리러 갔다. 혼자 남은 나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창 밖을 내다봤다. 해변과 맞닿아 있는 잔디밭에서 리트리버 한 마리가 주인과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공을 물고 주인을 향해 달려가는 리트리버의 몸짓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주인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만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왜인지 왈칵 눈물이 났다.



가끔 머릿속 생각의 흐름은 꿈과 같이 맥락 없이 펼쳐지곤 한다. 나에게는 저런 존재가 있을까? 소울메이트인줄로만 알았던 남편은 내가 혼자 부산에 가고 싶었던 이유조차 눈치 채지 못한다. 친구처럼 살뜰히 챙겨야 할 딸도 내게는 없다. 내가 뭘 하든, 어떤 사람이든 내가 자신의 우주인 것마냥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줄 누군가가 내 인생에는 없는 것 아닐까. 순간 몸서리치게 외롭고 서러웠다. 사람이 많은 카페에서 대놓고 울 수도 없어 창가를 향한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턱을 괴는 척 손바닥에 조용히 눈물을 받았다. 바람을 좀 쐬야겠다 싶어 밖으로 나갔다. 일 년에도 네다섯 번은 오는 부산이라 해운대는 나에게 정말 친숙한 곳이다. 하도 힙하다고 해서 두어 번 가보았지만 우리 집과는 아무래도 너무 멀다며 기피하게 된 성수동 보다 오히려 더 가깝게 느껴지는 곳. 하지만 언제나 남편, 부모님, 친구와 함께 했던 곳이라 그런지 혼자 마주한 바다는 낯설었다. 처음으로 말없이 오랫동안 해운대 바다를 음미했다. 포말의 모양과 물 색을 살피고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주 멀리서부터 밀려왔을 파도는 해변에 닿아서야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모양을 갖춘 파도는 돌까지 깎아낼 힘을 가졌다. 굳건하다고 믿었던 신뢰와 애정을 야금야금 파먹는 마음의 소리처럼. 몇 시간이나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친구 집에 가기 전에 할 일이 있었기에 정신을 차렸다. 백화점에 가서 친구 딸아이에게 줄 수영복을 살 계획이었다. 아무리 격의 없는 친구 사이라도 하룻밤 재워주는데 공짜로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아까 만나 대화할 때 친구의 딸이 요즘 수영 배우는 재미에 흠뻑 빠졌는데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서 수영복을 또 사야 하게 생겼다는 말을 들었던 게 기억이 났다.


같이 미쳤으면 괜찮은 거 아냐?

수영복을 사들고 친구네 집으로 갔다. 저녁 메뉴는 배달시킨 곰장어. 이것도 남편이 별로 안 내켜해서 궁금한데 한 번도 못 먹어본 메뉴다. 사실 웨이팅도 그렇고 곰장어도 그렇고 내가 고집했다면 당연히 남편이 따랐을 일이지만 함께 여행하는 상대의 기분이 가장 중요한 내 성향 상 매번 다음으로 미뤘던 것들이다. 남의 집이어도 집에서 노는 것은 바깥에서 노는 것과 다른 편안함과 재미가 있는 법. 곰장어와 함께 마시는 술은 그날따라 달았다. 나는 술기운을 빌어 친구에게 요즘 나의 심경에 대해 털어놓았다. 물론 남편의 잘못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말했던 대로 싸움의 원인은 나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움의 과정에서 남편이 낯설어지는 기분, 끝내 인정받지 못했던 내 상처에 대해 친구가 이해했으면 했다. 친구도 자기 남편과 다투었을 때 가감 없이 나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기에 말을 꺼내기가 더 쉬웠다.


“나도 네 남편이 그렇게까지 화를 낸다는 게 상상이 안 가. 물론 그러면 안 되지. 근데 말야, 너는 지금 네 남편이 미친놈 같겠지만 네 남편 입장에서는 너도 미친년일 수 있다? 오죽하면 그랬겠어.“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건의 전말을 풀어놓은 뒤라 친구의 답변이 머릿속을 댕- 하고 두드렸다. 그 말은 둘 중 누구도 더 잘못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내가 바란대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판결을 내리다니, 역시 내 친구다. 우리의 대화는 새벽 두 시까지 이어졌는데, 나는 두 차례 정도 울음을 터뜨렸고, 그 보다 훨씬 많이 웃음을 터뜨렸다. 남편과 싸울 때는 할 말이 떠올라도 남편의 기세에 눌리거나 이 싸움이 더 커질까 봐 삼켰던 말들도 친구에게는 모두 할 수 있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속이 많이 후련해졌었는데 친구는 때론 현명한 대답을 해주었고 때로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고, 때로는 본인의 더 심하다고 생각되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며 구석구석 마무리 청소까지 해주었다.


친구네 집 앞 연석에 누가 그린 건지 모를 스마일


잠자리에 누워 오늘 오후에 실컷 보았던 해운대 바다를 떠올렸다. 끊임없이 내 안에 울렁대는 물결을 눈치채지 못하는 남편을 원망했는데, 나 역시 남편의 속은 다 알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먼바다에서 풍랑에 배 한 척이 뒤집어졌다고 해서 해변에 있는 사람이 다 알 수가 있을까. 그렇게 화를 내놓고 어떻게 저렇게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다정한 모습으로 나를 대할까 싶어 오싹하기까지 했던 남편의 모습 또한 내가 서 있는 해변으로는 최대한 잔잔한 파도만 밀어 두고 제 혼자 폭풍을 다스린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엄마 아빠와 함께 해운대에 왔을 때 엄마가 말해줬었다. 바다의 색은 하늘색을 따라간다고. 하늘이 흐리면 바다도 잿빛이 되고 하늘이 맑으면 바다도 투명해진다고. 그런데 나는 남편이 애써 구름을 걷고 반짝이는 모습을 보여줄 때조차 혼자서 심연을 따라 더 깊이 침잠했다. 저러다 곧 비를 뿜을 거라고 예단하면서 잠잠해질 생각 없이 요동쳤다.


이렇게 싸워보기 전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위기의 부부들을 보며 ‘저렇게 쉽게 용서하면 안 돼. 사람 본성은 안 바뀌니까 하루라도 빨리 헤어져야 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남편을 의심하고 경계했다. 힘든 마음에 찾았던 심리상담에서 상담사 분께 남편이 원래 인성이 나쁜 사람인데 나를 좋아해서 착한 사람으로 연기하며 살았던 거라면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렇게 노력하는 게 시간 낭비 아니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그분의 답은 이랬다.


“기린님은 사람의 감정 변화에 엄청 민감하고 눈치도 빠른 사람이에요. 남편 분이 그런 사람이라면 3년 연애하는 동안 기린님이 그걸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죠.”


그날 밤 친구의 대답과 그때의 상담사 분의 대답은 내 마음에 큰 방파제가 되어 이후의 몇 차례 더 겪었던 거센 파도를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간 남편도 함께 상담을 받았고, 서로 좋은 대화법을 연습하며, 끝끝내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포기하기도 했다. 우리 둘의 합의점은 ’서로에게 미쳤다‘는 데에 있었다. 서로에게 서로가 미친 사람 같이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여전했다는 게 진짜 미친 일일지도 모른다. 바다의 수온이 오르면 기후가 변화하듯 화를 품은 두 개의 마음은 예측할 수 없는 기류를 만들었다. 하지만 미미해 보이는 아주 작은 노력들이 쌓이다 보면 그 기류를 다시 바꾸거나 적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남편 모르게 내 마음을 다 쏟아내려고 도망쳤던 부산에서 나는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을 얻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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