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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현 Aug 15. 2015

오싹한 스튜디오

오 나의 '홈쇼핑' 귀신님

 살면서 들어온 귀신얘기들이 참 각양각색이다. 초등학교의 화장실 귀신, 중학교의 과학실 귀신, 고등학교의 음악실 귀신. 대학교 다닐 땐 건물이 워낙 신식이어서 귀신 얘기를 잘 하진 않았는데, 오히려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 다시 귀신 얘기를 듣게 됐다.


 밤 늦게까지 일하는 업의 특성 때문인지 불 꺼진 회사 건물 안에서 수상한 기운을 느꼈다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사실인지는 믿을 수 없으나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서 숨죽이며 듣는 귀신얘기가 그렇게 흥미진진할 수가 없다.


 쇼호스트 실엔 어쩐지 비밀스러운 방 2개가 붙어있다. 밤낮 가리지 않고 방송하는 쇼호스트들이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는 1인 수면실이다. 입사 후 처음으로 귀신 루머를 들었던 것도 바로 이 쇼호스트 수면실에 귀신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와 같이 방송했던 쇼호스트도 똑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 방에 십자가 걸어놓은 거야. 자다가 귀신 봤다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볼일이 있어 쇼호스트실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수면실이 열려져 있어 들여다 본 적이 있다. 시간에 쫓겨 대충 훑긴 했지만 십자가 같은 건 걸려 있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오싹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점심시간에 여자 팀원들끼리 지하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깔깔 웃으며 수다를 떠는 중에 여자 과장님이 대뜸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 나 지난주에 막방(새벽 1시 방송)했잖아. 끝나고 주차장 가려고 이쪽으로 지나갔거든. 근데 뭘 봤는 줄 알아?"


자세히 서술하고 싶지 않은 대화 내용이다.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깜깜했던 지하 1층에 사람 형체가 하나 있었는데, 머리가 앞뒤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얘기를 듣다가 동시에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뭔가 찝찝한 기분이었다. 무서운 이야기의 후유증은 이렇게나 크다.


 늦게까지 일하고 사무실을 나오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회사는 1층에서 바로 밖으로 나올 수도 있고, 스튜디오를 통해서 밖으로 나오는 길도 있다. 후자는 세 개의 스튜디오가 붙어있는 길목이어서  이것저것 방송 소품들이 많지만, 조금 더 빠른 길이기도 하다. 나는 보통 스튜디오를 지나치는 길을 택한다.

 늦은 저녁이라서 그런지 나가는 길이 어두웠다. 코너를 두 번 정도 돌아야 하는 길이지만 사람이 없는 저녁시간이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고 걸어갔다. 코너를 돈다. 심장이 덜컹.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저기 앞에 서있는 게 뭐지? 사람들이 얘기하는 그걸 나도 보게 된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사람이 서있었다. 그런데 창백하다 못해 회색 빛을 띈 얼굴에 눈 코 입은 없다. 쿵쾅쿵쾅. 심장이 빠르게 뛴다. 잘못 본거겠지 생각하고 다시 눈뜨면 없어져있길 바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사라져라 사라져라..'


 다시 눈을 뜨고 그 형체에 점점 초점이 맞춰졌다.


'아... 마네킹'


 하필이면 코너를 도는 쪽에 바로 세워져 있던 마네킹이었다. 패션 상품 방송할 때 필요한 마네킹이 그 자리에 떡하니 서있던 것이다. 스튜디오에 갔다가 깜짝깜짝 놀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스튜디오 한구석에 잘려진 팔과 다리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아동복 방송이 있는 날이면 어린이 마네킹이 10개 정도 널브러져 있을 때도 있다.

 있지도 않은 귀신보다 마네킹과 마주칠까 더 두려운 퇴근길. 적응할 때도 됐지만, 마주칠 때마다 놀라게 되는 비주얼이다. 나도 우리팀 신입사원에게 오늘 이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내가 본 게 마네킹이었다는 사실만 빼고.


"어제 저녁 B스튜디오 앞을 지나가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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