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현 Aug 19. 2015

젊은 남자 PD가 외박한 이유

첫방의 악몽

"PD님,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네요?"

"올~ 집에 안 들어간 거야?"

"젊은 사람이 외박도 하고 그러는 거지 뭐~"

"그래, 싱글일 때 즐겨!"


 같이 방송을 끝낸 피디에게 던진 한마디에 우리 팀 선배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씩 거든다. 다들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괜히 내가 미안해진다.


 30대 초반의 남자 PD. 나보다 6개월 뒤에 입사하여 우리 상품파트에 배치되었다. 10년 차 이상 높은 직급의 피디님들과 일하다가 같은 연차의 피디와 일하게 되니 나도 그가 편했나 보다.


 젊은 피디는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외박은 맞지만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오늘 첫방 때문에 회사 수면실에서 자고 출근했단다. 새벽 6시에 시작하는 '첫방'. 직전 미팅은 새벽 5시에 진행되며, 그때까지 회사에 오기 위해선 새벽 4시엔 일어나야 하는 스케줄이다. 그는 라이브 방송에 투입된지 얼마 되지 않아 첫방 출근이 불안하다며 아예 회사에서 잠을 청한 것이다.


 나도 그 불안감을 잘 안다. 첫방을 위한 내 알람 세팅은 기본 5개다. 3시 30분부터 10분 단위로 정각 4시까지. 그리고 4시에 못 일어 날 경우 최후의 안전장치로 4시 10분에 한번 더. 지금은 웬만하면 한 번에 일어나지만, 처음 하는 새벽 방송을 위한 알람장치는 이 정도였다.


'잘 일어날 수 있겠지? 떨린다 첫방.'

긴장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학창시절 늦잠 자고 눈 떴을 때 싸한 느낌을 경험해 본 적 있는가? 뒤척이며 서서히 잠에서 깨는 것이 아닌 '탁'하고 불현듯 떠지는 눈. 방안은 이상하리만큼 밝고, 주위는 고요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린 느낌. 상황 파악하기에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다.


'망했다..'


울고 싶었다. 이미 울고 있던 거 같기도 하다. 이렇게 한심한 인간이 또 있을까?

한숨을 쉬며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침대에서 일어나니 주변은 다시 어두웠다. 급하게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3:15 AM

꿈이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헛웃음이 나왔다. 꿈도 이런 꿈을 꿀 수가 있을까?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회사에서 이 얘기를 팀원들에게 들려줬다. 독특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나도, 나도 라며 맞장구 친다.


"첫방에 늦잠 자는 꿈. 많이들 꿔본 꿈이지!"


누구라도 부담스러운 새벽 5시 출근.

젊은 PD의 외박이 전혀 스캔들거리도 되지 않는, 홈쇼핑살이들의 이야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싹한 스튜디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