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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현 Sep 03. 2015

그녀에게 빼앗긴 것

편성 쟁탈전

 협력사 직원 중에 아이가 셋인 집이 있다. 보통 아이가 셋이면 한 명만 공부를 잘하던가, 아니면 한 명만 못하던가 할 텐데, 이 집안은 어쩐 일인지 셋다 공부를 잘한다고 한다. 그것도 1,2등을 다투는 수준으로. 비결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가진 자원 안에서 최고의 보상을 해준단다. 그 보상은 바로 '독방 쓰기'. 여느 집처럼 성별로 방을 나누거나, 나이 순으로 우대해 주는 것도 아닌, 시험등수로 개인 방을 쟁취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좋은 방법일 수도, 아닐 수도 있으나, 이 집안에 맞는 방식임은 분명한 것 같다. 방을 혼자 쓰다가 '잘 나가는' 형제에게 그 방을 빼앗긴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살면서 무언가를 뺏겨본 적이 있는가? 애인? 장난감? 맡아놓은 자리? 돈? 입술? 우리 회사에선 MD들끼리 종종 뺏고 뺏기는 게 있는데, 나도 어제 그걸 하나 빼앗겼다. (아, 다시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김예지님, 다음 주 월요일 둘방(아침 7시 방송) 바꿔줄 수 있어요?"

 극도로 예민해지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방어적으로 대답한다.

 "왜요?"

 그녀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사실 그 이유가 납득이 간다기보다, 내가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있다. 그녀의 상품이 내 것보다 '잘 나가기' 때문이다. 내가 거절하고 말 것도 없이 팀은 효율 위주로 상품들을 운영한다. 있는 편성도 다른 팀에 뺏길세라 팀장님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편성을 뒤바꿨다.

 그렇게 나의 둘방은 그녀에게로 갔다.


 별로 의식하지 않던 그녀를 신경 쓰게 된 건 그때부터 였다. 그녀가 잘 하고 있는지, 그녀의 상품이 여전히 잘 팔리고 있는지. 마치 헤어진 남자친구의 새로운 연애를 염탐하듯, 나의 둘방이 그녀에게로 가서 더 좋은 결과를 냈는지,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엠디들끼리 뺏고 뺏기는 편성. 오프라인 샵이 좋은 위치에 매장을 내고 싶어 하듯이, 홈쇼핑 엠디들은 좋은 편성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매주 편성회의 땐 다들 무언가 조심스러워진다.

"자, 1등부터 불러."

팀장님의 한마디에 주춤주춤 한 명씩 자기 상품의 원하는 시간대를 말한다. 딱히 순위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눈치껏 '내 상품이 이 정도 순서겠지' 생각하고 편성을 점한다.



개인 방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경쟁 하는 세 남매, 목표 달성을 위해 편성 쟁탈전에 온 힘을 다하는 MD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직장인들과 그런 직장인이 되고자하는 취준생들에게도 위로를 건넨다.

빼앗겼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잘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간다는 것은 나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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