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출근시간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예전에 같이 일했던 PD님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반갑게 인사드렸다.
"아 맞다, 나 다음에서 예지님 글 봤어."
회사 직원들과 높은 상사분까지 많은 사람이 탄 엘리베이터. 유독 침묵이 짙은 것 같은 그 곳에서 PD님이 말을 꺼냈다.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순간 얼어버렸다.
"아하핫... 그거 저 아니에요."
"그 뭐더라? MD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내용으로 쓴 거지? 아이디가 '쯔'였던가, '찌'였던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PD님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홀연히 사라졌다.
그 날 많은 고민을 했다. 내 글을 읽었다니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내 얘기를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써 내려가도 좋을지 걱정이 됐다. '내 얼굴이 나온 프로필 사진을 없애고 실명을 지우면 괜찮을까?' 혹시 실수 한건 없는지, 이상한 내용은 없는지, 몇 편 쓰지도 않은 글들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PD님 말고도 또 내 글을 읽은 사람이 있을까? 그분의 한마디에 나의 비밀스러운 취미를 800명 전 직원에게 들켜버린 심정이었다.
남을 의식하는 건 사실 나의 착각에서 비롯된 거다. 모두가 날 주시하고 있다는 착각.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뭘 하는지 눈여겨본다는 착각. 잘 보여야 할 것 같고, 항상 단정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은 바로 그런 착각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나란 사람에 대해 그렇게 크게 관심 갖지도, 나무라지도 않는다는 사실. PD님 또한 내 글을 '봤다'고만 했지 못썼다고 비난하지도, 잘 썼다고 칭찬하지도 않았다. "봤다"라는 한마디로 나는 혼자서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던가!
다른 사람을 의식하느라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이 참 많다. 반대로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해 포장하는 일도 셀 수 없이 많다. 자기 PR에만 과열된 요즘, 솔직한 나의 모습을 내비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제 막 시작한 일기 쓰기 취미를 이런 식으로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들이 내가 하는 일에 관심 있을 거란 착각을 버리고 나를 위해 글을 쓰기로 마음 먹는다.
나 같은 착각쟁이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