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
1. 쇼호스트
"이거 잘 팔릴까요? 어떨지 모르겠네..."
신상품을 설명하는 중에 쇼호스트가 말했다. 물론 상품이 그 자체로 충분히 좋아서 어느 누가 보기에도 완벽하다면 베스트지만, 사실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같은 동료 MD를 설득하고, PD를 설득하고, 무엇보다 방송으로 내 상품을 팔아줄 쇼호스트를 설득하는 것은 중요한 능력이다.
'아,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내 상품에 늘 1순위로 캐스팅되는 메인 쇼호스트이니 당연히 어느 정도는 호의적일 거라는 착각. 공식 미팅 전 의견만 물어볼 생각으로 달랑 종이 한 장 들고 찾아갔으니 혹평을 들을 만도 하다. 이후 정식으로 1차 미팅을 가졌다. 공들여 준비한 자료와 함께. 그녀 마음을 빼앗을 수 있을까?
2. 협력사 직원
"진정 한 번인가요?"
이번 주 정해진 방송 횟수 1회. 한 번으로 결정된 방송편성 때문에 협력사 차장님이 문자를 보내왔다. 실적이 더 좋은 팀에게 편성을 뺏기는 고단함을 차장님은 아실까? 우리 팀이야말로 편성도 많이 받고, 방송도 많이 하고 싶은 마음인걸 모르는 건가?
"재방송 편성 드릴께요."라고 달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재방 한 개 얻기도 치열할 때가 있다. 그래도 지난달엔 팀 전체 실적 1등을 하며 내 어깨도 펴주었던 고마운 협력사다. 하지만... 이번 달 실적은...?
3. VIP 고객 1호
일 하는 중 걸려온 전화.
'지금 생방송 중인 상품의 가격과 구성이 괜찮은지? 성능은 좋은지? 믿을 수 있는 상품인지?'
휴대폰으로 고객의 문의에 응대한다. 고객이 콜센터가 아니라 엠디한테 직접 전화를 걸었느냐고? 게다가 그 상품은 내 담당도 아닌데? 홈쇼핑에 입사한 뒤로 나의 지정 VIP 고객이 된 아줌마. 바로 우리 엄마다. 딸이 방송하는 상품이나 볼 것이지, 내가 뭘 파는지는 관심도 없다.
4. VIP 고객 2호
일 하는 중 뜨는 카톡 메시지.
위에서 언급한 나의 VIP 고객님의 문의와 비슷한 질문들을 한다. 물론 1호 고객님과 비교해서 횟수는 몇 번 안 된다. 작년 가을 결혼과 동시에 새로 등록된 나의 2호 VIP 고객님. 바로 우리 시어머니다.
2호 고객님은 가끔 내가 방송하는 상품도 재미있게 시청해주시고 인증샷도 날려주신다. 확실히 1호 고객님과는 다른 면이 있다.
5. 경쟁사 친구
친한 언니가 남자를 소개해줬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남자가 나랑 밥 한번 먹고 싶다고 했단다. 이게 무슨 로맨틱 (나는 유부녀이니 '막장'이란 표현이 맞겠다)한 상황일까 싶지만, 내막은 같은 홈쇼핑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였던 것. 그는 경쟁 홈쇼핑 회사에서 나와 같은 상품 카테고리를 맡고 있었다.
"지금 방송 중이지? 콜 잘 나와?"
궁금한 건 서로 즉각 확인할 수 있어 편하고, 같은 업계만의 고충을 나눌 수도 있다. 언니와 함께 셋이서 종종 퇴근 후 맥주를 들이킨다. 아군의 수장(팀장님)보다 적군의 졸병과 더 친한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