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을 앞두고
내가 유명인과 결혼하지 않은 이상, '누구누구의 아내'라고 불리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내가 재벌가에 시집가지 않은 이상, '누구누구의 며느리'라고 불리는 일도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하루 차이로 날 '누구누구의 어머니'라고 불리게 만든 너. 네가 찾아온 뒤의 나의 인생은 정말이지 내 이름 석자 빼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불어난 몸뚱이, 적어진 머리숱까지도 말이다.
출산하기 한 달 전, 휴직 첫날은 아기를 만나는 날 만큼이나 설레었다. 그 누구도 내게 선물해주지 못했던 긴 휴가를 시작한 첫날.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이미 세계여행을 떠난 것 같았다. 사랑하는 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날은 3일. 하나뿐인 인연을 만나 신혼여행을 다녀온 날은 1주일. 그 모든 것보다도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날들은 더욱 소중하고 잘 준비되어야 했다보다.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누구는 짧다고 말하고, 누구는 그 마저도 쉬지 못한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짧고도 긴 1년 3개월을 온전히 '엄마'라는 이름으로 지낼 수 있었다. 상사 없고, 출근 없고, 야근 없는 행복한 백수생활. 대신 월급 없고, 퇴근 없고, 상사보다 말 안 통하는 분과 함께한 생활이었지만, 이 시간을 더없이 소중하게 보냈다.
늘 같은 생활을 하던 1년은 변하는 것 없이 똑같은 하루였는데, 휴직 기간 동안의 1년은 달라진 것이 너무도 많다. 우선 나는 더 이상 20대가 아닌 30대의 무리에 들어왔다. (친구는 혹시 사고가 나면 뉴스에 이젠 '30대 박모씨'라고 나오게 된다며 서글퍼했다.) 요리에 소질이 없는 내가 야채를 다지는 일이 엑셀을 다루는 일보다 쉬워졌고, 운전이 능숙해졌다. 여느 아줌마들처럼 모르는 사람에게도 쉽게 말을 붙인다. 청소는 청소기로만 하는 줄 알았지, 걸레로 방바닥을 이렇게 박박 닦고 있을 줄이야. 30년이 되도록 콩나물 한번 씻어보지 않은 내가 아기 저녁 반찬으로 콩나물무침을 만들었다. 이렇게 나는 내 이름 석자 빼고 모든 것이 달라져있었다.
엄마. 직업이라 불릴 수 있다면 그 역할은 참 평범하다. 하지만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그렇기에 고귀하고 애틋하고 감동적이다. 이렇게 멋진 역할을 원래의 나의 직업과 동시에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 세상에서 엄마가 되어본 사람들은 모두 이해할 거 같다. 온전히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지 못할 때의 미안한 마음을. 엄마라는 이름 외에, 때론 일하는 여자, 때론 야근하는 여자가 되는 것은 매일매일의 힘든 선택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참 아이러니한 것은 모든 엄마는, 꼭 직장에 다니지 않더라도, '때론 어떤 여자'이길 꿈꾸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여자들을 응원하고 싶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과장님이라 불리는, 또는 헬스클럽 회원님이라 불리는 우리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는 나부터 응원해야겠다...